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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東鶴寺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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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방방곡곡/여기저기

2020. 5. 10.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각승 각민이 제작한 불상과 복장유물.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중 복장유물은 2010년 8월 동학사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의 개금불사(改金佛事)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조성 발원문, 개금 중수 발원문, 개금불사 원문을 비롯해 후령통(喉鈴筒)과 사경(寫經), 각종 경전류와 갓끈, 거울 등 78건 136점이다. 복장유물 가운데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 발원문을 통해 1605년(선조 38) 음력 10월 조성을 시작하여 1606년 음력 3월 완성되었으며 공주 계룡산 청림사(靑林寺) 대웅전에 봉안되었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수 개금 발원문을 통해 1883년(고종 20) 동학사 대웅전에서 삼세불상의 개금 중수가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어, 1883년 이전 청림사에서 인근에 위치한 동학사로 불상이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9월 5일 보물 제1719호로 지정되었다.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로 구성된 불상 3구와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로 이루어져 있다. 여래상 세 구는 수인과 착의법에서만 조금 차이가 있을 뿐 신체 비례, 얼굴, 옷 주름 표현 등은 거의 유사하다.

본존불인 석가여래 좌상은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을 하였는데, 상체가 길고 무릎은 넓고 낮아 길쭉하면서도 안정된 형태미를 보인다. 머리에는 정상 계주와 중앙 계주를 표현하였고 턱으로 올수록 좁아지는 작은 얼굴에 반개한 눈과 오뚝한 코, 끝이 살짝 들린 입술 등에서 위엄이 있으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풍긴다. 착의법은 변형된 편단우견식(偏袒右肩式)의 법의(法衣)를 입었으며 가슴 위로 수평의 승각기가 있으며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옷 주름 표현이 특징이다.

 

 

본존불의 왼쪽에 자리한 약사불은 왼손을 어깨 부위 정도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설법인을 하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 거의 닿을 정도로 둔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오른쪽의 아미타불은 두 손의 위치가 반대인 점만 제외하면 약사불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석가모니불과 달리 두 협시 여래상은 편삼(偏杉)을 입고 그 위에 대의를 걸쳤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과 수인이 달라 옷자락의 형태 등에서 차이는 있으나 비례니 옷 주름, 얼굴 표현 등은 삼존불이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복장유물 물목은 일반적인 복장유물과 형식적인 면에서 거의 비슷하지만 남자 갓끈의 일부와 작은 손잡이 거울은 조선 후기 복장물에서는 간혹 등장하는 물건들이다. 경전류는 모두 93권 55책으로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에 간행된 불서들이다. 그중 『묘법연화경』 권4, ‘대공덕주(大功德主) 효령 대군(孝寧大君)’ 묵서가 적힌 『지장보살본원경』 권하 등이 주목되는데, 그 중요성이 평가되어 불교 전적 중 8책은 별도로 보물 제1720호[공주 동학사 목조 석가여래삼불좌상 복장 전적]로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넓은 어깨, 상체가 길고 무릎이 낮은 신체 비례에서 균형감과 조화가 돋보인다. 머리를 앞으로 숙인 자세에 얼굴은 작은 편이며 측면의 두께감이 얇아 전체적으로 길쭉하고 마른 편이다. 간결하게 표현된 옷 주름이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이 중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 발원문에 불상을 만든 사람이 상화원(上畵員) 각민(覺民)이라고 적혀 있다. 조각승 각민의 작품으로는 동학사 대웅전 불상 외에 한국 불교 미술 박물관 소장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1614년(광해군 6) 순천 송광사 대웅전 비로자나불 삼존상 등이 있다.

 

 

한국 불교 미술관 소장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원오(願悟)의 차화승으로 각민이 등장하는데, 덕기(德奇), 청허(淸虛)와 함께 조성한 작품이다. 1614년 순천 송광사 대웅전 비로자나불 삼존상은 각민의 주도로 행사(幸思), 청허(淸虛), 보옥(寶玉), 희순(熙淳), 심정(心淨), 응매(應梅)가 참여한 불상이지만 6·25 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각민의 작품은 동학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좌상이 유일한 것으로 확인된다. 현존 작품만으로 보면 각민 불상의 특징은 신체에 비해 작은 얼굴에 당당한 신체 표현 그리고 조화미가 돋보이는 조형성이라 할 수 있다.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중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각민이 수화승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현존 작품이며 균형 있는 안정감, 위엄 있는 귀족적인 얼굴 표현 등 조형성이 우수한 작품이다. 각민은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활동한 조각승이다. 동학사 불상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6년 조성되어 17세기 초기에 제작된 불상 사례가 많지 않아 자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 발원문과 개금 중수기는 불상 조성, 이안, 개금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으며 많은 수량의 복장 전적(腹藏典籍)은 조선 전기 인쇄사와 서지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복장 유물 가운데 남성의 갓 끈이나 거울 등을 납입한 사례는 드물어 더욱 주목되는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