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소수서원 경자바위(紹修書院 敬字바위)

댓글 0

전국방방곡곡/여기저기

2020. 5. 19.

소수서원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매표소를 지나 송림을 즐기며 걷다보면 우측으로 당간지주가 반긴다

 

 

당간지주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가 눈에 띠며 정자를 지나 조금 걷다보면 개천변 자연암반에 새겨진 글씨를 볼수있다. 개울 건너편에서 잘 볼수 있다

백운동(白雲洞) 경(敬)자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서원은 성균관이나 관학인 향교와 달리 16세기 이후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이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은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사립대학이었다. 사진은 서원을 끼고 흐르는 죽계천 경자 바위. 주세붕이 쓴 '敬'과 이황이 쓴 '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세조에 의해 순흥부 주민이 학살된 정축지변때 주세붕이 수장된 원혼을 달래기 위해 '경'자에 빨간 칠을 한 후 제를 올렸다고 한다.

주세붕이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첫 글자를 새긴 것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유교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전설이 하나 서려있다. ‘정축지변’으로 이곳 죽계천에 수장된 많은 영혼들이 밤마다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바위에 새긴 ‘경(敬)’자에 붉은 칠을 해 원혼을 달래니 그로부터 소리가 그쳤다고 한다. 그리고 당간지주 건너에 있는 취한대는 서원 원생들이 풍광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여가를 즐기던 정자이다.

소수서원 가까운 곳에 금성대군 신단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금성대군 신단

 

정축지변(丁丑之變)은1457년 금성대군, 이보흠의 단종복위운동 거사가 실패하면서 세조에 의해 순흥부 주민이 학살된 사건을 말한다.

내부 고변으로 단종의 복위 거사가 실패하자 세조는 영월 청령포에 유배중인 단종을 사사한다. 이후 역모를 주도한 혐의로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려 사사하고 모의에 가담한 순흥부사 이보흠을 참형에 처하였다. 이후 순흥부의 주민들을 처형한 뒤 순흥을 폐부하고 현으로 강등시켰으며, 순흥 인근 30리 지역 주민들에게도 혐의점을 뒤집어 씌워 처형하였다.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하여 순흥부를 가로지르던 죽계천은 온통 피로 물들어 오랫동안 핏물이 10여리를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취한대에서 바라보는 죽계천풍경.

 

취한대와 더불어 경자바위가 냇가에 자리하고 있다.
경자바위에는 정축지변과 관련되어 많은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