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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면 삼항리 숙옹유선생유허비(加德面 三項里 塾翁柳先生遺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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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2020. 7. 18.

 

 

가덕면 삼항리에 자리하고 있는 유흥룡의 유허비입니다.유허(遺墟)란 유지(遺址)·유적(遺蹟)·구기(舊基)와 같이 ‘남긴 터(자취)’·‘옛터’의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현들이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임시 머물렀던 곳, 또는 순절(殉節)하거나 귀양살이하였던 곳을 가리킵니다.

유흥룡[ 柳興龍 ]은 조선전기의 학자입니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치운(致雲)이며, 호는 숙옹(塾翁)이다. 아버지는 유지정(柳之程)이며,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이로(利老)의 딸이다.

 

 

평생을 고향인 문산(文山)[현 충청북도 문의(文義)]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이괄(李适)의 난과 병자호란과 같은 난국에 처하였을 때, 국가를 보위하려 하였으나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하였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신 학문적 성취를 통하여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의 시문에는 사회의 여러 모순에 대한 비판 의식과 내면적인 자기 성찰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대부 의식 자체를 비판하거나 포기하지는 않고 유가적(儒家的) 지식인으로서의 입장을 지켰다. 그의 학문적 성향은 도학을 기반으로 당시의 훈고학적인 연구 성과를 수용하였다.

끊임없는 연구 생활을 통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당시 그의 덕행과 학문을 높이 인정받았으며, 이른바 ‘문산부자(文山夫子)’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자연암반석위에 유허비를 세워놓았습니다.

 

죽은 뒤 사헌부 감찰에 증직되고 덕천사(德川祠)에 배향되었다.

『숙옹유고(塾翁遺稿)』4권 3책이 있다.

 

유흥룡을 모신 덕천사의 전경입니다

 

 '덕천사우(德川祠宇) 숙종 갑술년에 세웠다. 유희령 호는 몽암(夢庵)이며 호조참의를 지냈다. 유흥룡 호는 숙옹(塾翁)이며 감찰을 증직하였다. 우신언 호는 묵재(默齋)이며, 찰방을 지냈다. 정응창 호는 유항(柳巷)이며 공조 좌랑을 증직하였다.'-<연려실기술>

유희령에 관한 기사내용입니다.

https://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170165

 

덕천서원 앞에 자리한 유흥룡의 비각입니다.
유허비의 전면과 후면의 모습입니다.

 

전면에는 숙옹유선생유허비(塾翁柳先生遺墟碑)라고 적혀 있으며 후면에는 하마비(下馬碑)라는 말이 있는것으로 보아

유허비와 하마비의 역할을 겸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허비 뒷쪽으로는 커다란 바위에 쐐기의 흔적이 보입니다 돌을 떼어내려한 흔적입니다.

 

길가에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안내판이라도 세웠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