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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동 낙가산 보살사(龍岩洞 洛迦山 菩薩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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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

2020. 8. 1.

동부우회도로를 달리다 보면 요즈음 한창 입주가 시작된 동남지구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보살사라는 입간판을 보고 달리다 보면 낙가산 밑에 보살사에 이르게 됩니다

보살사가 위치한 낙가산은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창 입주를 하는 아파트단지와 새로 짓는 아파트 등으로 조금은 어수선 하지만 옛길인 용박골길을 따라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습니다

보살사 밑으로도 이제는 많이 개발이 되었습니다. 전원주택 단지등으로 개발이 되어 여름이면 맛남 포도맛으로 유명한 보살사 포도밭들도 많이 없어지고 몇몇 포도밭이 남아 당도 높기로 유명했던 용암포도밭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보살사는 신라진흥왕28년(567년)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조사가 세웠으며 통일신라 혜공왕14년(778년)진표율사의 제자인 융종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는 유서깊은 고찰입니다.

 

 

이 후 고려시대에 들어 태조6년(918년) 태조의 다섯번째 아들인 증통국사가 세번째로 중창하였으며 예종2년(1107년)에는 자정대사가 네번째로 중창하였다고 보살사 연혁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증통대사는 법주사의 중창에도 관여하고 있는 고려초 법상종승려이므로 보살사 역시 법상종계 사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극락보전의 모습과 현판입니다

 

보살사 경내에 있다가 옮기는 와중 훼손되어 경내에 뭍었다고 전해지는 보살사중수비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때에 토지를 하사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세조4년(1458년)12월에 어명으로 중수하였으며 그 후 인조4년에 벽암대사의 수제자인 경특(瓊特)으로 하여금 다섯번째로 중수하여 관리토록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아쉽게도 조선 숙종9년(1683년)에 세웠다는 보살사중수비는 볼수가 없다. 1982년에 발행된 충청북도지에 의하면 보살사중수비는 비문은 윤심이 찬하고 서하였는데 전체높이 290센티정도로 크기가 제법 큰것으로 보여진다.

 

절 입구의 돌담의 모습이 참 보기좋습니다

 

담쟁이 덩쿨이 이쁜 절입구를 들어서면 깨끗히 관리되여 있는 잔디밭이 보이며 지방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극락보전이 보인다.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신 전각이다.2단의 석축위에 자연석과 원형주초를 초석으로 하였다.

 

사찰에 의하면 극락보전의 기둥의 재질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극락보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왼쪽에서 첫번째가 느티나무 두번째가 싸리나무 세번째가 칡나무 네번째가 박달나무라고 한다.이는 보살사의 역사가 그리 깊다는 것을 표현하는 다른방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극락전의 기둥의 모습입니다.

 

법당에는 삼존불을 모시고 있으며 중앙에 본존불은 앙련대좌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여래상으로 어깨를 약간 움추리고 상체를 약간 앞으로 내밀고있는 정형화된 조선시대의 불상이다. 좌우 보살상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목조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앞으로 약간 숙인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아미타삼존후불탱화입니다
극락보전에 자리하고 있는 아미타삼존불의 모습입니다.

 

본존불 뒤에 아미타삼존후불탱화에는 하단에 묵기에 건릉이십사년기유사월(乾陵二十四年己酉四月)로 명기되어 있어 영조2년(1759년)에 제작된 불화임을 알수 있습니다.후불탱화는 17-18세기 유행했던 아미타후불의 일반적인 양식을 잘보여주고있다.삼존불상과 후불탱화가 같이 조성된것인지는 확실히 알수가 없습니다.

극락보전왼쪽벽에 모셔져 있는 극락회탱은 가운데 주존을 모시고 좌우에 협시불을 배치하였는데 하단의 기록으로 보아 대한제국고종3년(1902년) 당시 군수이던 이희복이 용화사에 봉안한 탱화임을 알수 있으나 보살사에 어떻게 모시게 되었는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극락회탱의 모습입니다

 

1972년 보살사 경내에서 발견되어 극락보전에 있는 이존병립여래입상과 석조지장보살좌상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석불은 보이지 않고 이존병립여래입상만 볼수있다.또한 본존불뒤에 목함에는 1997년 보물 1258호로 지정된 보살사 영산회괘불탱이 보관되어있다.숭정23년으로 기록된것으로 보아 조선 인조27년(1649년)에 그려진 것으로 가로 408 세로 600센티의 비교적 큰규모의 괘불입니다.

 

이존병립여래입상입니다.

 

극락보전앞에는 1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과 상륜을 바치고 있는 조선시대의 석탑이 있다.지대석위에 하대석을 대신하는 3단의 받침이 있고 그 위에 복연화문이 새겨져 있어 중대석이 생략된 단층기단으로 볼수가 있다.

 

탑의 복련의 모습입니다.
극락보전앞에 석주가 1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보살사오층석탑입니다

 

초층옥신의 내면에는 2개의 사각형과 내원을 음각하고 그안에 범자를 음각하였다.

 

"옴 마니 반메흠"

 

이것은 "옴 마니 반메흠"이라는 범어로 된 진언인데 전국적으로 희귀한 예에 속합니다.2층탑신에는 강희계미(康熙癸未)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탑의 조성시기가 조선 숙종29년(1703년)에 건립하였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강희계미(康熙癸未)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명부전 내부입니다.

 

보살사는 청주시민들에게는 약수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낙가산의 맑은물을 사시사철 음용할수 있도록 약수터가 있습니다.여유있게 주차도 할수있는 널은 주차장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맛좋기로 소문난 보살사약수입니다 음용적합성적서도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보면 작은 언덕에는 근래에 세워진 부도와 사적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운당기원비와 부도입니다

 

보살사에서 100여미터 내려와 오른쪽에 산능성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명 보살사부도밭이 있습니다.조선조때의 부도인 석종형부도로 모두 세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전문적인 조사가 필요한 듯 합니다.

 

석종형 부도3기가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습니다

 

마침 찾는날이 장마뒤라 그런지 산에서 흘러내린 빗믈로 진입도로가 모두 진흙으로 메워져 진입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