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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면 미륵리연화문당간지주(水安堡面 彌勒里蓮花紋幢竿支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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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향기/충주시

2020. 9. 29.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 입구에 있는 고려 전기 당간지주.


충주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멸망함에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당시 누이인 덕주공주(德周公主)는 월악산에 덕주사(德周寺)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으며, 태자는 석굴을 창건하여 불상의 방향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충주 미륵대원지에는 석굴 형식으로 조성된 석불입상과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귀부 등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현재 사찰은 소실되었지만 많은 유물들로 보아 대규모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간지주는 파손되어 한쪽에 눕혀져 있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다듬었으며 바깥쪽 면에 연화문을 새겨 상당한 정성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미륵리 연화문 당간지주는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 당(幢)을 걸기 위하여 세운 조형물이었다. 사찰에서 입구에 당을 거는 목적은 사찰의 대외적인 위상과 종파적 성격을 분명히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또한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고, 수호하여 널리 불법(佛法)을 전파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찰 입구에 당간지주를 세우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통일신라 초기부터 크게 성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려시대 들어와 대부분의 사찰들이 당간지주를 세워 사찰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미륵리 연화문 당간지주도 이러한 경향에 따라 사찰이 창건된 이후 고려 전기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간대석(竿臺石)은 긴 사각형의 큰 돌을 대강 치석하여 상면 중앙에 이중의 원좌와 그 가운데에 사각형 구멍(1변 16㎝, 깊이 7㎝)을 시공하였다. 이러한 간대석 수법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나 중초사지·용두사지·홍성 동문동 당간지주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당간지주의 간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남아 있다. 

그러나 사찰의 입지 조건과 석재를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충주 미륵대원지에 2기의 당간지주가 세워졌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간대석으로 추정되는 2개의 석재가 전혀 다른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는 점도 의문점이다. 돌을 다듬은 수법이 당간지주에 활용된 간대석과 유사하지만 다른 용도에 사용되었던 석재로 보인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간이나 지주가 파손되자, 보수나 중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간대석을 보강하여 끼웠을 가능성은 있다. 

 

 

당간지주는 석불과 사지의 방향으로 보아 원래는 입구에 동서로 마주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지주는 동일한 치석 수법으로 하단부가 절단되어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지만 지주부의 너비와 폭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원래는 높고 웅장한 지주였을 것으로 보인다. 

외면 외곽 모서리는 각을 부드럽게 깎았으며, 지주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부드러운 호선(弧線)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지주 정상부 호선을 그리는 부분에만 높게 돋을새김한 세로띠를 양각하였다. 특히 지주 외면에서 주목되는 장식 수법은 연화문을 조식하였다. 연화문은 6엽으로 큼직한 선문대(線紋帶)를 돌리고, 연판은 둥글게 조각하였다. 

연화문은 지주면에서 5~6㎝ 높이로 높게 돋을새김하였다. 연판 사이에는 간엽이 있고, 간엽의 끝부분은 살짝 들어 올려 반전(反轉)이 되었다. 당간을 고정하는 간은 지주 내면 꼭대기에 간구를 시공하여 고정하였으며, 간공의 시공 여부는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두 지주 중 1주는 1976년 사지 정비 작업 중 발견되었고, 다른 1주와 간대석은 충주 미륵대원지 1차 발굴 시에 노출되었다. 당간지주는 현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나란히 눕혀 놓았는데, 원래는 우뚝 솟아 가운데 세워진 당간 꼭대기에 대형의 깃발인 당이 걸렸을 것이다. 

 

 

최근에 당간지주의 하단부로 보이는 석재가 발견되어 입구 왼쪽에 세워놓았다. 하단부는 땅에 묻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돌을 대충 다듬었고, 상부는 지상에 노출되는 부위이기 때문에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원래는 현재 눕혀져 있는 당간지주와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륵리 연화문 당간지주는 파손되기는 했지만 돌을 다듬은 수법이 정교하고, 표면에 연화문을 장식한 점이 주목된다. 현재 당간지주 표면에 연화문을 장식한 예는 통일신라시대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고창 흥덕 당간지주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지주 외면에 연화문을 장식한 당간지주는 경주 지역에서 건립되기 시작하여 지방으로 확산되었는데, 일부 당간지주만 보이고 있어 희귀성이 높다. 충주 미륵대원지 당간지주의 연화문 장식 수법은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의 영향으로 보인다. 

한편 충주 미륵대원지 주변에 있었던 월광사(月光寺)나 덕주사(德周寺),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 등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중요한 역할을 한 사찰이었으나, 이러한 사찰에서는 아직까지 당간지주가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던 사찰의 당시 위상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