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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부도전(俗離山 浮屠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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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

2020. 12. 6.

 

사내리사지18은 법주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500m 정도가면 상수도수원지 왼편으로 확인되는 승탑군 일대이다. 
기존 자료에서는 승탑군1에 석축과 초석이 있어서 최소 정면 2칸 이상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승탑군 
조성 시 일부 초석이 옮겨지면서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승탑군2에는 전면 석축과 뒤편 산비탈에 
7단의 석축이 있고, 13매의 초석이 확인되어서 정면 4칸,측면 1칸의 건물과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부속건물이 있었
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계단석으로 추정되는 짝을 이루는 2매의 석재와 팔각대석, 장대석 3매가 
있다고 한다. 승탑군3에는 승탑은 없고, 평탄지에 수목만 우거져 있는데 정면에는 높이 80㎝, 길이 23m의 낮은 석
축이 붕괴되어 있고, 주좌가 조출된 12매의 초석이 있어서 정면 5칸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3곳 모두 남향
을 하고 있고, 입지 및 근접상태로 보아 하나의 사역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당초문, 귀목문 등의 
암막새편과 선문, 어골문, 격자문, 수파문 등 다양한 문양의 와편이 확인되었고, 승석문, 격자문, 덧띠문 등이 보이
는 토기편과 초화문이 시문된 청자편, 인화문 분청자편, 백자편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추정사역은 승탑군 일대로 지형상으로 남동향을 하고있고, 전면에는 물길이 지나간다. 추정사역은 기존 조사에서 보고된 바와 같이 세 구역으로 나눌수 있고, 초입부터 A구역으로 하겠다. 기존 조사에 의하면 사지와 관련된 유구가 3구역 확인된다고 하나 조사결과 승탑이 세워져 있는 구역에는 유구를 확인할 수 없고, C구역은 사지와 관련된 유구가 잔존한다. 유물도 A구역과 B구역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C구역에서만 보인다. 한편A구역과 B구역에 있는 승탑들은 폐사이후 승탑군을 조성하면서 세워진 것으로 사지와 관련성이 적을 것을 보인다. 

 

 

추정사역은 기존 조사에서 보고된 바와 같이 3구역으로 나눌수 있고, 초입부터 A구역으로 정해 조사하였다. 
A구역은 3기의 승탑이 세워져 있고, 기존 조사에서 언급한 석축과 초석은 확인할 수 없었다. 
B구역은 5기의 승탑이 세워져 있고, 승탑의 서쪽에는 승탑재 14매가 있다. 이곳은 5기의 승탑 주변에 담을 쌓아 정비를 해 놓았고, 앞쪽으로 여러 매의 장대석들이 확인된다. 그러나 A구역과 마찬가지로 기존 조사에서 언급했던 석축과 초석들은 확인되지 않는다. C구역의 상단 건물지 규모는 21×3.7m이다. 건물지 전면에는 쓰러진 나무 1그루가 있고, 나무 옆에는 치석 재 1매가 확인된다. 치석재 앞쪽으로는 석축 2기가 확인 되고, 석축 전면으로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건물지의 초석은 모두 10기로 기존 조사에서는 12기가 확인되었다 고 하나 2기는 확인할 수 없었다. 초석1은 92×63㎝ 크기
로 상면에 방형 주좌가 2단으로 되어 있고, 초석2는 62×67㎝ 크기로 방형 주좌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초석3은  장방형으로 크기는 97×67㎝이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3단의 방형 주좌가 있다. 초석4는 72×61㎝로 3단의 방형주좌가 있다. 초석5는 115×49㎝ 크기로 3단의 방형 주좌가 있다. 초석6은 95×69.5㎝ 크기로 2단의 방형 주좌가 표현되어 있다. 초석7은 71×101㎝ 크기로 원형 주좌가 있다. 초석8은 방형으로 크기가 50×35㎝이고, 주좌가 없다. 초석9는 100×72㎝ 크기로 2단의 원형 주좌가 있다. 초석10은 63×105㎝ 크기로 4단의 방형 주좌가 있다. 초석의 배열로 보아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정도로 판단된다.

 

 

사역 내에서는 두께 2㎝의 어골문, 중호문, 집선문, 거치문 와편과 두께 2㎝의 선문 와편, 전돌, 청자편, 백자편 등이 확인된다. 특히 C구역에서 다량으로 산재한다. 사내리사지18은 문헌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사명과 연혁을 알 수 없고, 현재 승탑군이 조성되어 있다. 승탑군을 조성하면서 사지와 관련된 유구의 훼손이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C구역에는 승탑군은 조성되지 않았고, 사지와 관련된 유구와 유물이 많이 확인된다. 이곳은 3구역 모두 하나의 사역으로 판단되고, 사찰의 운영시기는 고려중기에서 조선후기 경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곳은 사찰이 폐사된 후 근대기에 화전민들에 의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