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14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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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 소수면 수리 만세운동유적비(沼壽面 壽里 萬歲運動遺蹟碑)

만세운동유적비는 소수면 의용소방서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높이1.5m, 너비 2.87m의 아담한 크기의 유적비는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2일 소수면민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소수면민의 만세운동을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1985년 9월에 괴산군에서 건립한 우리고장 현충시설이다. 3·1운동은 일제에 의하여 침탈되었던 국가의 주권과 민족의 독립을 되찾기 위한 거족적인 항일투쟁의 독립운동으로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되어 독립만세의 민족적 절규는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소수면민의 만세시위는 4월 2일 새벽 2시경에 옥현리에서 군중 약 500명이 독립만세를 외치고 면사무소를 습격하려 하였으나 왜경에게 저지를 당하였고, 밤 8시경에는 군중 약 300명이 ..

14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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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원남면 조촌2리 공동우물(遠南面 助村2里 공동우물)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수도시설의 미비로 동네에는 공동우물이 있었지요. 공동우물터는 물을 긷는 곳에서 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 연락처가 되고 이야기터가 되곤하였지요. 조촌2리에 자리하고 있는 공동우물터입니다. 물이 솟는곳을 골라 일명 노깡이라 부르는 둥근시멘트관을 잇대어 우물을 만들었지요. 두레박을 이용해 물을 길어 집에 보관되어 있는 커다란 물항아리에 물을 채워 사용하곤 했지요. 수도시설로 인하여 각자 집안에서 물을 공급받는 지금의 시절에서는 참 힘들었던 시절이라 생각할수도 있을것 같습니다.연례행사로 우물청소도 하며 동네 잔치도 하곤했던 기억이 제게도 생각이 납니다.

14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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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원남면 문암리 평촌선돌(遠南面 文岩里 平村선돌)

평촌마을은서당말 서남쪽 벌판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형상이 배를 닮았다 하여 배범(帆)자 범말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마을옆의 선돌모양의 돌로 배의 말뚝을 세워 사람과 돈이 떠도는 것을 막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말뚝에 마을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평촌이란 이름은 일제때 마을앞에 평야가 있어 평촌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평촌지형이 풍수지리상 배의 형국이라 재물을 모으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전설이 있어 떠나감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배를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돌을 세웠다고 한다. 자연석을 다듬어 놓았다. 남성을 상징하는 선돌이다.일명 망두라고도 불린다,

14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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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원남면 덕정리 순천박씨 세림사(遠南面 德亭里 順天朴氏 世琳祠)

덕정리는 독정이 독징이라고도 합니다.마을에 큰우물이 있다고 해서 독정이 또는 독정리라고도 합니다.1914년 행정통페합에 따라 덕(德)이 있으라는 뜻에서 덕정리라고 칭하였다고 합니다. 순천박씨 10세손인 세림(世琳)은 증장낙원정으로 덕정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삼형제를 두어 믿파 진(津) 둘째파 호(灝)막내파 혼(渾)삼파로 조상을 추모하고 공덕을 기록하여 유물과 유적을 후세에 전하고 조상의 은덕을 보답하는 길로 사당을 모시게 되었다. 덕정리 세림사는 1999년도 제실 30평 식당 25평 규모로 세림사를 건립하였다. 시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선대산소 제향을 올린다음 양력 11월 첫쨋주 일요일에 올리며 위패로 생물을 올리며 덕정3파 자손이 250여명이 참석하여 정성껏 제향을 모시고 있다. 순천박씨(順天朴氏)..

14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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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원남면사무소 비석군(遠南面事務所 碑石群)

원남면내에 산재되어 있는 비석을 한군데 모아 놓은듯 합니다.조선시대의 관찰사와 군수등의 비석부터 근래 면장까지 6기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반명억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이다.1924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태어났다. 음성공립농업전수학교를 졸업하였다.소이부면장과 원남부면장을 역임하였고 1960~1961년 원남면장을 역임하였다. 1969년 원남면장으로 재임용되어 1981년까지 근무하였다. 오랜 기간 면장을 맡으면서 많은 지역 현안 사업을 처리하여 면민의 신임을 받았다. 퇴임 후에는 공화당 관리장과 민주정의당 중앙위원 및 군정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1989년 향년 66세로 사망하였으며, 묘지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다. 공적비는 원남 면사무소뒷편에 길가에 있으며 원남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