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풍속, 설화

솔뫼 2006. 7. 7. 20:51

 조선시대-일반 백성은 하루 두끼 식사, 상민 두루마기는 흰색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다. 의식주를 통해 신분이 드러나고 국가 정체성이 유지됐다. 그러나 나름의 유행과 아름다움은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 속에서 개성을 연출하고 이를 즐겼다.

 

조선시대 한복은 실용적인 의복 기능과 함께 의례적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복식에서 신분이 드러났다.

가령, 중인은 푸른 중치막 이상을 입을 수 없고, 상민은 두루마기를 흰색만 입을 수 있다는 식이었다.

 

박지원의 ‘양반전’에 따르면 18세기 상민은 길을 걷다 넓은 소매 도포에 술띠를 두른 사람을 만나면 대번에 양반인 줄 알아보고 “몸을 구부려 어쩔 줄 모르는 시늉”을 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 사람이 패션 유행을 앞서 간 것은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조선 여성 의복의 유행과 사치는 왕실과 양반 여성들 사이에서 성행했다. 중국에 다녀온 사신이 가져온 비단과 신문물은 왕실과 사대부 등 상류층에 먼저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여성의 지나친 사치와 치장은 문제였다.

대표적인 게 금은보화로 장식된 커다란 ‘얹은머리’.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커다란 얹은머리를 한 어린 며느리가 방에 앉았다가, 시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오는 통에 일어서려다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얘기까지 전한다. 식생활도 흥미롭다.

통일신라 이래 일반 백성은 하루 두 끼만 먹었다. 세 끼를 먹은 이들은 왕이나 고위 관원, 부자 등 극소수. 점심이 중식의 의미로 굳어진 것은 18세기 후반 들어서라고 한다.

대신, 조선 사람의 한 끼 식사량은 대단해서 외국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오희문의 ‘쇄미록’ 등 문헌에 당시 성인 남자의 한 끼 식사량으로 기록된 곡물 7홉은 420cc로, 오늘날 성인 섭취량의 세 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