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의 진실 기사들-B

anian 2015. 9. 8. 20:19
베링탐사는 아세아-아메리카 조작하기 위한 허구
콜럼버스 신대륙발견 거짓, 실제 탐사 했다면 베링은 왜 미대륙 발견하지 못했나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홍익/역사/통일=플러스코리아타임즈-김종문] 현재의 세계사는 130,000년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아시아인이 되고 Beringia(베링육교)를 거쳐 미대륙으로 이동하였다고 되어있다. 

 

미대륙은 40,000년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세계사에서는 빙하기 이후 미대륙과 아세아의 육지가 연결되어 인류가 이동하였으나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졌다는 베링육교라는 학설을 만들었다. 세계사대로라면 미대륙의 원주민들은 베링육교를 통해 이동한 아세아인들의 후손들로 실은 原住民(원주민)이 아닌 先住民(선주민)의 후손들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사는 기만으로 수만년 전부터 바다였다는 베링해 남부는 18세기 후반까지도 육지였다. 빙하기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졌다는 베링육교의 대부분은 수심50m 미만의 지역으로 18세기 후반까지도 대부분 육지였다.

 

참조기사: 4만년전 아메리카 '베링육교' 통한 인류이동은 허구다

 

▲ A: 21.000년 전에 Bering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B: 1757 Buache Philippe 빙하기 이후 아세아와 미대륙 중간에 있었다던 Beringia(베링육교)는 현재 수심 50m이내의 지역과 대부분 일치한다. 현재의 베링해협 중앙은 수심 25m이내의 지역에 위치하여 수심이 25m만 낮아져도 미대륙은 아세아와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 세계사의 베링육교가 허위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수만년 전부터 바다였다는 베링해 남부(3)가 18세기말 까지도 육지였다는 것이다. 육지였던 지역을 바다로 만들고 베링육교라는 소설을 세계사로 만든 것은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만들기 위함으로 판단된다. 베링육교는 허구이며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만든 현 세계사는 거짓소설인 것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베링육교와 베링탐사의 지리인식은 동일하다

 

세계사는 베링육교를 통해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만들었고 아세아와 교류조차 못했던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알래스카지역은 사람이 살기 힘든 극지로 3,000 ~ 8,000년 전에야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세계사는 되어 있다. 그러한 지리인식을 다시 지구인들에게 각인시킨 것이 베링탐사다.

 

베링탐사는 베링육교처럼 18세기 까지도 육지였던 베링해를 바다로 만들고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수많은 서양제작고지도들에 알래스카는 16세기에 아세아와 붙어 있었고 18세기까지도  베링해는 육지였다. 그러한 알래스카를 아세아와 분리시키고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로 만들고 러시아가 발견하여 차지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Alaska 발견은 18세기의 신대륙발견

 

세계사는 베링육교를 만들어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만들었다. 미대륙은 1492년 인도를 향해 항해하던 크리스토퍼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후 대서양의 유럽세력들은 미대륙의 선주민들을 학살하고 점령하였다. 그러한 이야기는 18세기 러시아의 알래스카발견과 침략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1741년 러시아는 북부 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Great Northern Expedition(북부대탐험, 北部大探險)로 불리는 탐사를 시행한다. 탐사대의 대장인 Vitus Jonassen Bering(비투스 조나선 베링)의 이름을 따 베링탐사라 불리는 탐사를 통해 사람들이 살지 않는 황무지로 역사가 없었다던 알래스카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베링탐사 이후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모피산지로 개발하였고 1867년 720만 달라를 받고 미국에 판매한 것으로 세계사는 되어 있다. 베링탐사는 미국이 알래스카를 점유하는 명분이기도 한 것이다.

 

콜롬버스의 신대륙발견과 베링탐사의 알래스카발견을 보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다른 시공간에 동일한 역사를 복사하여 이식하였기에 그 내용이 너무나 닮은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의 알래스카 발견과 침략은 콜롬부스의 신대륙발견을 통해 대서양의 해양세력들이 미대륙인들을 학살하고 미대륙을 강탈하였다는 이야기의 복사판인 것이다.

   

▲ A: Vitus Bering 기념우표(1981 Post of the Soviet Union), B: Vitus Bering de zeevaarder, Josef Petersen, C: 비투스 베링의 중년초상화, D: 비투스 베링의 노년초상화 현재 베링탐사를 이끌었던 베링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베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나 다른 모습의 베링이 있기 때문이다. 우표와 도서표지와 초상화들의 베링은 동일인을 그렸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베링탐사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20세기 초에 관련저서인(F. A. 골더〈베링의 항해Bering's Voyages〉(1922~1925))가 출판된 후일 것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현재 세계사에서 유통시키고 있는 베링탐사의 경로를 살펴보면 1차는 베링해와 베링해협을 거쳐 북해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으로 되어 있다. 2차는 베링해남쪽 북태평양을 동쪽으로 길게 탐사하여 알래스카만까지 탐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 A: 세계사의 베링탐사 코스, B: 현재의 베링해 모습 현재 세계사에 베링탐사의 1차코스는 캄차카반도에서 북쪽으로 베링해협을 거쳐 북해까지 올라갔다 귀환한 것으로되어 있다. 2차 탐사는 캄차카반도에서 북태평양을 동쪽으로 탐사하여 북미서북부 알래스카만 연안까지 탐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베링탐사의 경로는 현재의 지형에 일치하게 그려졌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그럼 베링탐사의 경로를 살펴보자 1,2차를 나누어 몇 부분만 보도록 하겠다.

 

베링탐사 1차 아메리카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은 거짓말

 

세계사에서는 베링탐사 1차인 1728년 8월 15일경까지 베링이 북해에 이르러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제작됐다는 지도들 중에는 베링이 알래스카의 해안선을 타고 귀환했던 것으로 표기한 지도들이 있다. 그러한 지도들은 현재의 베링해를 육지로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 A: 1752 Buache Philippe, B: 현재의 베링탐사지도 현재의 세계사에서 베링탐사 1차에서 베링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에는 베링이 북해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Diomede Islands(다이오메드 제도)를 돌아서 알래스카지역의 해안선을 타고 귀환한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 다이오메드 제도와 알래스카의 거리는 35km정도이다. 현재는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으나 18세기 지도들에는 하나의 커다란 섬으로 표기되었으며 알래스카와의 거리는 더 가까웠던 것으로 그려져 있다. 지도상에 베링은 미대륙 알래스카의 근해를 탐사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바다에서 35km는 눈으로 충분히 보이는 거리이기에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던 미대륙을 베링이 발견하였을 것은 당연한 것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고지도상에 베링은 Diomede Islands(다이오메드 제도)를 돌아서 북미 알래스카의 해안선을 따라 탐사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알래스카의 해안선을 따라 귀환한 베링이 북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현재의 세계사는 기만인 것이다. 고지도대로라면 베링은 1차 탐사에서 미대륙을 발견하여 근해를 탐사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하여 현재의 베링탐사지도는 베링이 Diomede Islands(다이오메드 제도)를 돌아서 알래스카쪽으로 귀환하였다는 기록을 삭제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의 베링탐사에서는 북해에서 돌아서 다시 왔던 길로 귀환한 것으로 되어있다.

  

베링탐사 1차 1729년 6월8일 베링은 알래스카를 발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탐사지도에도 그러한 과정이 표기되어 있다. 현재의 탐사지도에 1729년 6월 6일 ~ 7월 3일의 탐사지역을 보면 캄차카 반도에서 동쪽으로 400km정도의 거리까지 탐사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베링탐사가 있었다면 베링은 미대륙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베링이 탐사했다는 지역은 영문세계지도들에 미대륙이었기 때문이다.

 

▲ A: 현재의 베링탐사코스 1차 1729년 6월 6일 ~ 7월 3일, B: 현지형에 그린 1차코스, C: 1716 Johann Baptist Homann, D: C지도 캄차카반도확대, E: 1757 Buache Philippe 베링탐사 1차 6월8일 베링은 아메리카를 발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귀환하였다. 베링이 탐사했다는 지역은 현재의 베링섬 남쪽으로 캄차카 반도에서 400km정도의 거리였다. 18세기 초중기의 지도들에 캄차카반도와 미대륙은 매우 가까이 위치하였다. 40~50km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베링해는 18세기 초반 대부분 지역이 육지였으며 1716년 지도의 캄차카반도와 미대륙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베링탐사의 베링이 실제로 탐사지도처럼 캄차카반도 동쪽으로 400km 가까이 탐사를 하였다면 베링은 미대륙을 발견하고 육지를 횡단해야 했을 것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베링해는 18세기 말에도 넓은 지역이 육지였다. 현재의 캄차카 반도와 미대륙의 거리는 18세기 초에만 해도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 고지도들은 그려져 있다. 위의 1716년 지도를 필자는 조작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조작이란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만들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위 지도의 베링해의 지형은 바르게 묘사된 것으로 판단된다. 미대륙과 캄차카반도 사이를 매우 가까이 묘사한 지도들은 18세기에 여럿이 있다.

 

베링탐사 2차는 육지를 횡단한다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격언이 있다. 의미는 다르지만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 베링탐사 2차일 것이다. 현 세계사의 베링탐사 2차는 18세기에 제작됐다는 지도들에 육지로 표기되던 지역을 횡단하여 탐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 A: 현 세계사의 베링탐사코스, B: 1747 Jacques Nicolas Bellin, C: 1737(1766) Jacques Nicolas Bellin, D: 1764 Jacques Nicolas Bellin 현재의 베링탐사 2차코스는 18세기에 제작됐다는 지도들과 전혀 다르다. 2차 탐사는 원래 1번지역을 귀환하였으나 현재의 세계사는 원래 육지였던 지역을 바다로 그리면서 2번지역을 통하여 귀환한 것으로 조작하였다. 베링탐사의 진위를 떠나서 현재의 베링탐사2차의 코스는 18세기에 제작됐다는 베링탐사지도들과 전혀 다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현재의 베링탐사경로가 진실이라면 육지로 배를 타고 탐사를 한 것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당연히 허위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베링탐사의 정보들이 조작되어 있으며 탐사의 가중 중요한 경로 자체가 허위임을 여러 고지도들로 살펴 보았다. 현재 전세계에 유통되는 18세기 영문고지도들 중에는 극동아세아와 북미북서지역을 상세하게 그린 지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지도들 중 다수에 베링해는 1780년경까지도 육지로 표기되었다.

 

한두개의 지도가 아니라 많은 지도들이 일관되게 베링해를 육지로 그렸으며 미대륙과 아세아를 매우 가까이 묘사했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사는 그러한 지도들 보다 현재의 지리와 일치하는 지도들을 주로 활용한다. 베링해를 육지로 그린 지도들을 보면서 베링육교나 베링탐사를 의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수많은 18세기 고지도들을 근거로 보면 배를 타고 육지를 탐사했다는 베링탐사는 허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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