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외감 2011. 1. 25. 15:01

통치자가 시민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며

근심스러워하는 것을 함께 근심한다면 가히 통치자 노릇도 할 만하다.

 

집없는 서민들이 전세값 오름을 근심스러워하고

시민들은 구제역파동에 그 근심스러움이 하늘을 찌르는데

 

통치자라고 내세운 넘은 대책없는 폭력으로 악을 징계함을

지 혼자 한 것처럼 떠벌리며 작은 이익을 위해 인기관리나 하고 자빠져 있네.

 

孟子 曰

맹자가 말하기를

 

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통치자가)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백성들 또한 그 즐거워함을 즐길 것이고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통치자가) 백성들이 근심스러워하는 것을 근심한다면

백성들 또한 그 근심스러워함을 근심할 것이다.

 

樂以天下 憂以天下, 然以不王者 未之有也.

(위 아래가) 천하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근심한다면

왕노릇하지 못하는 놈은 없을 것이.

며칠 추위 피해 더운 나라 도망갔다 왔더니
여러가지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국민을 구출했는데
잘한건 잘했다고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호주여행을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유문의 말단에도 끼지 못하는 처지라
그 어리석음이 부끄럽소~ 갑짱~ㅋ
태국만 가도 더워 죽겠던걸요^^
방콕, 파타야 갔다왔습니다.
에고.. 맞아요~
거긴 사시사철 더운 나라였죠...
제가 외국을 안나가봐서리 감이 좀 떨어집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사극 영화에서 조선시대 충신이나 근친이 병환에 있을때 왕이 전의를 보내는 것을 보셨나 봅니다.

삼호주얼리호 石선장께 주치의를 보내셨대요.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덕이 없으면서 고관대작이 된 분이라...

 
 
 

우리한시

외감 2011. 1. 20. 19:07
란하사灤河祠: 이제묘夷齊廟 (성삼문成三問: 성근보집成謹甫集 제1권)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사당에서

 

當年叩馬敢言非 옛적에 말고삐 끌어잡고 감히 그르다 말해

당년고마감언비

大義堂堂日月輝 대의는 당당해서 일월日月이 빛났다죠

대의당당일월휘

 

草木亦霑周雨露 초목草木 또한 주周나라 비 이슬로 자랐거늘   

초목역점주우로

愧君猶食首陽薇 부끄러운 그대들이여, 어찌 수양산 고사리를 캐드셨소?

괴군유식수양미

 

* 란하사灤河祠 : 이제묘의 다른 이름. 이제묘는 란하灤河 남쪽에 옛 고죽국터에 있음.

* 란하灤河 : 란허강. 중국 하북성河北省(허베이성) 북동부를 흐르는 강

* 이제묘夷齊廟 : 백이와 숙제의 사당 

* 고叩 : 두드리다. 잡아당기다. 끌어당기다.

* 점霑 : 젖다. 적시다. 두루 미치다.

* 괴愧 :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 미薇 : 장미. 고사리.

 

(해설)

- 성삼문成三問[1418(태종18)∼1456(세조2)] :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홍주洪州(홍성)출신이고, 본관은 창녕, 호는 매죽헌梅竹軒, 자는 근보謹甫였다. 세종과 문종, 그리고 단종의 총애를 받아 집현전 학사와 승지를 지냈으며, 1453년 계유난때는 좌사간으로 있었다. 1456년 병자년에 상왕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양운검兩雲劒의 한 사람이었던 부친 성승成勝(도총관)과 함께 세조 수양首陽에게 능지처사당했다.

 

- 성근보집成謹甫集 : 성삼문의 시문은 16세기 후반 윤유후尹裕後(고양군수 역임)가 자기집에 전해오는 성선생유고成先生遺稿의 사본을 가지고 동문선東文選 등과 비교하여 처음으로 편집하여 간행했다고 하나 지금은 그 발문만 전해지고 있고, 그 후 1642년에 다시 심희세沈熙世가 신익성申翊聖의 서문을 받아 초간본을 번각飜刻(복각)했다고 하나 이 또한 서문만 전한다. 현재 전해지는 성근보집은 1658년(효종9년)에 간행된 박팽년朴彭年의 7대손 박숭고朴崇古의 <육신유고六臣遺稿>중 성선생유고成先生遺稿를 저본으로 하여 18세기 후반인 영조때 다시 간행된 것이다. 박숭고는 범례에서 성삼문의 시문은 심희세의 번각본飜刻本을 대본臺本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성근보집 해제 참조> 

 

1) 란하사灤河祠(이제묘夷齊廟) 매죽헌 성삼문이 중국의 북경으로 가던 중에 백이,숙제의 사당에 들렀을 때 지은 한시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고죽국孤竹國의 왕자출신으로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고죽국을 떠나 노인을 잘 대우해 준다던 주周의 문왕을 찾아갔었는데, 문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여 문왕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은殷왕조(주왕)를 멸하려고 하자 말고삐를 잡고 그 출정에 반대했다고 한다(백이숙제는 부정과 불의한 일을 미워했지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았다:공자의 仁사상). 이에 무왕의 주위에서 백이,숙제를 죽이려하자 태공망(강태공)이 어진 사람이라하여 살아났으나, 그 길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 굶어 죽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전한다.

 

채미가采薇歌 <사기史記 61권 백이열전伯夷列傳>

 

登彼西山兮 采其薇兮 저 서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도다

以暴易暴兮 不知其非兮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려면서도 그 그릇됨을 모르네

兮 신농씨, 순임금, 우임금 시대는 홀연히 사라졌으니 

矣 矣 내 어디로 돌아가리, 아 떠나리라, 목숨이 다해가네


2) 草木亦霑周雨露  愧君猶食首陽薇 : 수양산의 고사리 또한 주나라땅에서 자란 것이므로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먹은 것은 지조와 절개를 지킨 것이 아니라고 한탄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백이, 숙제는 실제로 고사리 안뜯어먹고 그냥 굶어죽었다고 전해오기도 하는데, 어찌되었건 매죽헌梅竹軒 성선생은 시詩를 그 삶속에 처절하게 새겨넣어 지조와 기개있는 삶을 살았다.  

 

- 매죽헌 성선생이 사형장으로 가는 수레를 타며 지었다는 절명시絶命詩

(출처: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

 

擊鼓催人命 둥둥 북소리 목숨을 재촉하고
回頭日欲斜 머리 돌리니 해는 이제 지네

 

黃泉無一店 황천길엔 주막하나 없다는데
今夜宿誰家 오늘밤은 뉘 집에서 묵어갈꼬

 

* 성근보집에 위 절명시는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대에 호사가들이 명나라 초기의 손궤의 절명시를 인용했던 것이 구전되어 전해오다 18세기말에 연려실기술에 실리게 된 듯 하다. 혹시 실제 매죽헌이 사형장으로 가다 자신의 처지를 손궤의 처지에 빗대어 노래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시가 너무 비슷하여 성삼문의 절개와 문학적 재능에 어울리지 않는다.       

 

- 명나라 초기 유학자 송렴宋濂의 고제高弟인 손궤가 처형될 때 지었다는 절명시

(출처: 순암 안정복 선생문집 제13권 상헌수필하橡軒隨筆下)


鼉鼓聲正急 북소리 급해지고

西山日又斜 서산의 해 또한 기우네

 

黃泉無客店 황천에는 객주하나 없다는데

今夜宿誰家 오늘밤은 뉘 집에서 묵어가나

 

* 순암 안정복은 상헌수필하에서 성선생의 절명시는 호사가들이 명나라 손궤의 시를 인용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 새소리 뿐이구나... 

어디서 읽어본 글인 것 같습니다.
절개에 대해서 예와 지금이 같지 않으니
얄팍한 인심을 만들어 낸 시대가 우스울 뿐..

편안한 저녁 되십시오..
언제 시간나면
낚시하는 묘법을 배우러 찾아뵈야 하는데
뚜벅이 처지가 되어 이젠 그 법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중국한시

외감 2010. 6. 8. 10:55

歸去來辭 (도연명:365~427) 

귀거래사

                                                

歸去來兮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 하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旣自以心爲形役 지금까진 마음이 육신의 노예였으니/

奚而獨悲 어찌 홀로 서러워만 하는가/

悟已往之不諫 지난 일 후회해도 소용없음을 깨달아/

知來者之可追 다가올 일 쫓아야 함을 알겠네/

實迷塗其未遠 길을 잃고 헤맸으나 아직 멀지 않아/

覺今是而昨非 지금이 옳고 지난 날 벼슬살이 잘못되었음을 이제 깨달았네    

 

舟遙遙以輕 배는 가벼이 흔들거리고/

風飄飄而吹衣 바람은 나부끼어 옷깃을 스치네/

問征夫以前路 사람불러 고향길 얼마남았는가 묻는데/

恨晨光之熹微 새벽풍광 희미하여 한이 서리네

 

乃瞻衡宇 이제 우리집 기둥도리 보이니/

載欣載奔 기뻐 달린다/

僮僕歡迎 머슴아이 날 반기고/

稚子候門 어린 아이 문앞에서 기다리네/

三徑就荒 은자의 뜰 잡초가 무성하나/

松菊猶存 솔과 국화는 아직도 머룰고 있네/

携幼入室 아이 손잡고 방으로 들어가니/

有酒盈樽 술통에는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술통을 당겨 자작하고/ 

眄庭柯以怡顔 뜰에 나뭇가지 바라보니 정말 즐겁구나

 

倚南窓以寄傲 남쪽 창가에 기대니 의기가 양양하고/

審容膝之易安 무릎만 들어갈 만한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안한가/

園日涉以成趣 동산을 날마다 거니니 풍취가 이루어지고/

門雖設而常關 문은 언제나 닫혀있어/ 

策扶老以流憩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여 여기저기서 쉬며/ 

時矯首而遐觀 때때로 고개 들어 멀리 하늘 바라보네/

雲無心以出岫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고달픈 새들은 날아 돌아옴을 아는구나/ 

影翳翳以將入 저녁빛 어두어지며 해는 지려는데/ 

撫孤松而盤桓 외로운 솔 어루만지며 굳세게 받치리   

 

歸去來兮 돌아가자/

請息交以絶遊 교류를 멈추어 세상과 단절하겠노라/

世與我而相違 속세와 나는 서로 등지니/

復駕言兮焉求 다시 벼슬에 나가 구할게 무엇 있으랴/

悅親戚之情話 친척들과 기쁘하며 정담 나누고/ 

樂琴書以消憂 거문고와 책을 즐겨 근심을 씻으리 

 

農人告余以春及 농부는 나에게 봄이 왔다 이르니/

將有事於西疇 이제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아야지/

或命巾車 혹은 천으로 덮인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은 한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깊숙하고 고요한 골짜기를 찾거나/

亦崎嶇而經丘 험한 산길을 따라 언덕을 지나리/ 

木欣欣以向榮 나무들 즐거워 무성히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샘물은 졸졸 일찍이 흘렀네/ 

善萬物之得時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 하니/

感吾生之行休 나의 삶 멀지 않았음을 느끼네    

 

已矣乎 끝나리/

寓形宇內復幾時 육신에 붙어살 날 다시 몇 해나 될까/

曷不委心任去留 어찌 마음을 가고 머무름(자연의 법칙)에 맡기지 않으리/

胡爲乎遑遑欲何之 초조하고 불안히 아직도 어디를 가려고 하나/

富貴非吾願 돈과 지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신선이 됨도 기대하지 않네

 

懷良辰以孤往 좋은 때라 생각되면 홀로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은 지팡이 세워놓고 김을 매리/ 

登東皐以舒嘯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맑은 물에 임하여 시 지으며/

聊乘化以歸盡 부족하나마 그대로 수레를 탔다가 죽음으로 돌아가고/ 

樂夫天命復奚疑 천명을 따라 즐기니 어찌 다시 머뭇거리고 있겠는가

 

 

* 도연명(365~427) : 중국에서 도가家철학(노장사상想)이 풍미했던 육조시대六의 동진晋, 송의 시인이었다. 도연명은 젊은 시절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벼슬을 구하며 살았는데, 나라가 어지러워 군벌들이 쟁투를 벌였던 41세 때 돈으로 벼슬을 산 같은 고향의 소인배가 상관上官으로 부임해 오자 그런 소인에게 허리를 굽히며 살기 싫다며 말단 관직을 버리고 시골로 낙향했다. 그는 전원田園으로 퇴거退去한 후 집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柳선생이라 칭하면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을 영위했으며, 그런 전원에서의 농촌생활을 통해 느꼈던 자연과 하나된 마음을 따뜻하고 인간적인 언어로 표현했던 은일시인이었다.

거의 인연을 끓고 산속으로 들어갔던 때가 10년전,
이제 다시 속세로 나와 장차 벼슬(직장^^)을 구하기 위해 모색하는 제가
이 시를 읽으니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교차하네요.

어디에서 어떻게 살건,
자기 삶을 무엇인가에 끌려가며 살지 않고
자신이 디자인하고 소신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신대로 살고있는
제 옆지기도 항상 그럽디다..
너나 가라고..

10년만에 다시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어디 근사한 벼슬자리 하나 구하시면 한턱 쏘시지요~
말로만 듣던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덕분에 잘감상합니다.
물론 난 뻔한걸 뭘러 시로썼나 의문이지만요...ㅎㅎ
오랫만이지요?
건강히 잘계시지요
헤헤^^..
그냥 별 의미없어 보이는 시 나부랭이들은
예전에는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요즘 그냥 그냥 지내다 보니 괜히 맘이 가네요..^^

요즘도 섶골에는 여전하지요??
여름이 다시 오니 녹음과 방초가 빽빽하겠군요..^^
간결함을 바탕으로 느낀 바를 쉽게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야 말로 천하일품이로소이다.
역시 유명한 시인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시가 아닐까 합니다?
그저 부러울따름입니다~~~
오늘따라 시인이 살아간 삶이, 마음자세가 부럽습니다......
_()_ 안녕하세요?
여강 최재효 오랜만에 임에게 문우 엿쭙습니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추위로 마음이 쓸쓸하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11월도 임의 시간으로 충만하시길 빕니다.
늘 고맙습니다..............인천서 여강 최재효 拜
여강 샘님 문우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