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여자점쟁이(The Fortune Teller)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20. 3. 28.

Georges_de_La_Tour,_The_Fortune_Teller

 

이 작품은 "빛과 어둠의 화가 '로 유명한 17 세기의 거장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의 대표작 여자 점쟁이(The Fortune Teller).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이 소장하고 있다. "여자 점쟁이"는 시대배경과 전혀 다른 작품이다. 현재까지이 작품은 '풍속화'의 범주에 넣어져 왔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르주 라 투르가 태어나고 자란 현재의 프랑스 로렌누 지방의 17 세기의 복잡한 종교적 사회적 사정이 숨겨져 있었다.

화면에는 귀공자를 상징하는 잘생긴 한젊은 남자를, 나이든 보헤미안 여자 점쟁이와 3 명의 아름다운 보헤미안 여성이 둘러싸고 있다. 아마도 이 귀공자는 늙은 점쟁이에게 점을 보았을 것이고 늙은 점쟁이는 "당신 같은 미남은 좋은 부인을 맞아 크게 출세할 사람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3 명의 보헤미아 여성도 미래의 영주가 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쳐주며 남자를 치켜세우고 기분을 좋게 하고 있다. 그림에는 왼손으로 금화를 하나를 노파에게 건네주고 노파 점쟁이는 금화를 받고 점괴를 열심히 설명 하고 있다. 그시대는 점값으로 금화를 지불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설령 지불되었다 해도 바로 몰수 했을 것이다.

그림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귀여운 여성의 손을 보면 이 여성, 곁눈질로 남자 쪽을 보면서 아래의 두손은 귀공자가 걸고 있는 금목걸이에 금메달 뺀찌로 절단하려고 하고 있다.

그림 왼쪽의 아름다운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보헤미안 여성의 오른손은 귀공자의 바지에서 지갑을 몰래 꺼내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지갑을 뽑는 바로위를 보면 또 다른 손이 보인다. 흰 블라우스 여성이 남자바지에서 지갑을 꺼내어 옆의 여자에게 건네주려는 것이다. 늙은 점쟁이와 같이 소매치기를 하는 것이다.

 

이귀공자는 자신이 털리는 줄도 모르고 사탕발림에 넑을 잃고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잘가라고 인사하고 사라졌을 때도 자각하지 못하고 멀리 여자들이 사라진후에 자신이 털린 것을 깨달았을 때는 지갑도 금메달도 없어진 후일 것이다. 이 시대상황에서는 종교그림외에 이단자의 냄새가나는 점쟁이 등의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는 계명이 담긴 풍속화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과 통설이었다.

 

Peter_paul_rubens-louis_xiii

 

그림의 사회적 배경과 30 년 전쟁

이 그림의 제작년도는 16331639 년 경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는 프랑스령의 로렌누 지방 류네비루 마을에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 한편 보헤미아는 중부 서부지역이다. 그런데 풍속화를 먼 보헤미아를 무대로 그린 것이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Guerre de Trente Ans

 

그것을 푸는 열쇠가 동시대의 루벤스(Peter Paul Rubens)가 그린 루이 13 (Louis XIII)의 초상화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628~ 1640530)가 그린 루이13 세 동상과 오른쪽 점쟁이의 그림 귀공자를 비교해보면 얼굴 생김새가 매우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모델을 30도 각도로 서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점도 동일하다. 루벤스는 1619 년에 자신 작품을 판화로 프랑스 왕국에서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가 그린 루이 13 세 동상이 판화에 복제되어 프랑스내외에서 판매수익으로 살았다. 로렌누 지방에 나돌고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작았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면서 조르주 드 라 투르 는 루이 13 세의 모습을 '여자 점쟁이"의 화면에 그린 것이다. 그럼 조르주 드 라 투르는 왜 루이 13 세를 그릴 필요가 있었는지. 이것을 이해하려면 당시 유럽을 흔들고 있던 30 년 전쟁(독일어: Dreißigjähriger Krieg, 프랑스어: Guerre de Trente Ans, 영어: The Thirty Years' War, 1618- 1648)의 경위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30 년 전쟁은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이다. 보헤미아 왕 페르디난드 2 (독일어: Ferdinand II, 1578~ 1637, 재위 기간 1619~ 1637)가 개신교에 대한 탄압을 처음하였고 그에 반발 한 민중이 프라하 왕궁을 습격하고 국왕 고문관 등 3 명을 왕궁의 창문에서 밀어 떨어트렸다. 개신교 보헤미아 제후는 이를 계기로 뭉쳐 카톨릭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것이 30 년 전쟁의 시작이다. 그리고 제 2 단계에서는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 (덴마크어: Christian IV, 노르웨이어: Christian IV, 1577412~ 1648228)와 프로테스탄트가 전쟁에 참전했다. 그런데 프랑스의 왕 13 세는 왕국의 동쪽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남서 스페인의 합스부르크에 끼워져 있었다. 더 이상 합스부르크가의 피해를 두려워 한 결과, 개신교 국가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덴마크와 "대 합스부르크 동맹'을 결성하여 동서 합스부르크와 다른 가톨릭 국가를 견제하려고 했던 것의 풍자화라고 풀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