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역사 와 장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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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5.

 

바둑의 역사

바둑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중국 고대에 요 임금이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요 임금은 신화적인 성격이 강해 실존 인물인지 의심 스러우나 적어도 춘추시대에 바둑이 존재했던 것은 확실하다. 가장 유력한 추측은 상나라 중기 ~ 주나라 초기 시절에 이미 원시적인 바둑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나 춘추시대 관련 기록을 보면 늦어도 주나라 초기 시절에는 바둑이 존재했으니 3000년이 되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역사가 확인된 게임 중 인류 역사상 최초의 게임이라고 할수 있다.

예를 들어 기원전 6세기 논어· 맹자중에는 바둑 화제가 나온다. 중국 바둑은 서한 시대부터 였다고 생각된다. 공자가 바둑을 언급하였다. 맹자 역시 바둑을 지나치게 두는 것을 경계하는 말을 남겼다. 맹자가 이야기한 다섯 가지 불효 중 두 번째가 바둑하고 술 먹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공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며 같은 말을 소학(小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전국시대의 인물들이 바둑을 언급하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바둑판은 중국 전한시대의 바둑판이다. 나무판이 아닌 도자기를 깎아서 만들어졌으며, 일부 파편만 발굴돼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현대처럼 19x19 사이즈가 아닌 17x17 사이즈의 바둑판으로 추정된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바둑알은 서진시대의 물건이며, 특이하게도 돌을 깎아서 만들지 않고 모양새가 좋은 돌을 모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보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손책 과 여범이 둔 바둑이다. 이 기보에 네 귀 선착걸침눈목자 굳힘 등의 초보적 정석 개념이 이미 나온다. 손책-여범(孫策-呂範) 기보는 중국 송나라 이일민(宋李逸民)이 편저한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에 실린 기보인데 프로 기사 경력의 바둑 고수이자 저술가(문용직)는 이를 '위작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포석의 산책 - 고대 중국 포석의 갈등이다.

또한 원나라 시대에 작성된 사활 풀이집인 현현기경이나 관자보 같은 것은 오랜 옛날임에도 불구하고 난이도와 문제 풀이의 독창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현재 프로 기사 지망생들에게 애용되는 사활집이다.

세설신어에는 남조 귀족들이 바둑을 둔 이야기가 몇 편 실려 있다. 바둑 실력도 서로 평가하였는데 구품관인법에서 따와서 일품(一品), 이품(二品) 등으로 평가하였다.

그 후 5 세기에 한국에 전해지고 7 세기경에 일본에 전해졌다고 한다.

 

 

 

장기의 역사

장기는 고대 인도의 장기 '차투랑가(Chaturaji, chaturanga)'에서 유래되어 오랜 세월이 흐르고, 각 나라에서 현지화 되면서 변화했다고 추측한다. 중국의 샹치(象棋), 일본의 쇼기(将棋), 태국의 막룩(หมากรุก(Makruk)) 등을 모두 가리킬 수도 있는 용어이다.

현대 바둑이 비록 한중일간 규칙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서로 대국이 가능한 반면, 장기는 아예 국가 간 대결이 거의 불가능하며 완전히 다른 종목으로 분화된 것이다. 한국에 장기가 들어온 시대는 특정하기 힘드나 장기 말의 왕에 해당하는 말의 이름이 초나라와 한나라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삼국시대 이후로 추정된다. 그리고 한나라의 대륙통일 이후 한신이 유방에게 잡혀가서 감옥에 갇혀 있을때 만들어 간수를 통해서 퍼트렸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침몰한 고려시대 선박인 마도 3호선에서 발견된 장기용 조약돌에는 초나 한이 아닌 '장군'이 있다.

한국에 장기가 들어왔을 시절엔 오리지널 샹치 와 같았으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 룰이 한국식으로 현지화 되면서 오늘날의 장기가 되었다. 장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실려있으며 이를 볼때 바둑과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널리 퍼진 듯하다. 조선시대에는 변형 장기인 광상희라는 것도 있었다. 그밖에도 조선시대를 기준으로는, 독자 룰을 지닌 거대장기 규칙들이 전한다.

한나라의 말은 해서로 표기하는 데 반해 초나라의 말은 초서로 표기되어있다.

자료; 나무워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