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룡 방호(蟠龍 方 壺)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20. 5. 13.

zhou_panlong-fanghu 蟠龍 方 壺

 

반룡 방호(蟠龍 方 壺)

높이 : 90.3 cm,

무게 : 44 kg

국립 역사 박물관, 타이베이

(두개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베이징 고궁 박물관에 있다.)

 

Shang_dynasty. (기원전 1600년 –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그 예술성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주나라도 기본적으로는 그 기술을 계승하고 있었지만 예술성에서는 간소화되어 은대에 비하면 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금문

 

이 시대의 청동기는 거의 모두가 제사를 위한 제기였으며, 따라서 실용적인 청동기는 그 수가 적다. 이러한 청동기는 거푸집을 이용하여 주조되었는데, 거푸집을 제작할 때 그 시대의 여러 정보를 거푸집에 새겼다. 따라서 그 시대의 청동기에는 시대의 역사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금문(주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상형문자로 청동기에 제작되거나 새겨진 문자를 말한다.)이라 불리는 것으로 후대 주나라를 연구하였던 사가들에게 있어서 이는 중요한 기록물이었다. 상대와 비교해서 주대는 문장의 길이가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상나라와 주나라는 여러 차이를 보였는데, 그 차이중 하나는 바로 조상에 대한 믿음의 차이였다. 상나라에서는 조상에 대한 숭배와 외경심이 매우 강하였기 때문에, 제사를 게을리 하거나 조상의 이름을 더럽히거나 조상의 명망에 흠집을 내면은 당장이라도 나와 나의 가족들에게 천벌이 내릴 거라는 생각이 당시 상나라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반대로 주의 사람들도 조상에 대한 제사는 지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조상은 재앙을 피하기 위한 종교적인 믿음의 대상이 아닌 순수하게 경의를 표하는 대상이었다. 더불어 상나라시대에는 일이 있을 때마다 점을 쳤지만 주나라 시대에는 그러한 일이 적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상이 남긴 금문의 수에 비하여 주가 남긴 금문의 수는 적어 현대에 이르러는 주대 전기보다 오히려 상대의 자료가 많다.

거푸집을 제작할 때 거푸집에 문장을 새겨 넣고 청동을 붓고 거푸집을 깨어 완성된 청동기에 문장이 돋아 보이게 하는 기술과 방식은 왕실이 독점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청동기는 때때로 제후에게 하사되는 경우가 있었다. 춘추시대에 들어설 무렵의 혼란으로 인하여 이러한 기술이 제후에게도 전파되어 제후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청동기가 제작되었다.

건축 분야에 관련하여 주대에 들어서 기와(蓋瓦)가 일반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