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朴元淳)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20. 7. 12.

 

박원순(朴元淳, 1956326~ 202079)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시민단체 출신의 정치인으로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사법연수원시절

생애

1955211일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에서 아버지 박길보와 어머니 노을석 슬하 25녀 중 여섯번째(차남)로 출생하였다. 하지만 형 박우순이 17세가 되던 1969, 행방불명 상태였던 작은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장가초등학교와 영산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74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시절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제적된 뒤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전 면접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으나, 입학 하자마자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법원사무관 시험에 합격하고, 2년 뒤에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때 조영래와 문재인이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박원순은 검사로 법조인 인생을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변호사시절

변호사 출신으로서 시민운동에 천착하여 과거 학생운동 시절과 차별화된 선진적인 시민운동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한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부패 정치, 재벌에 의해 왜곡되어 정착 중이던 자본주의 문화나, 불합리한 사회구조 개선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2006년에는 시민운동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만해상,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변호하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했던 시절에 직접 변호인을 맡아서 도와줬던 인연도 있었다.

 

2006-2011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시절

참여연대 이전

1978년 제2회 대한민국 법원사무관 시험에 합격하여 춘천지방법원 정선등기소 소장으로 근무하였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82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되었지만 1년만에 그만두고인권변호사로 일하며 사회 운동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1986'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200012월에는 여성국제전범법정(VAWW-NET JAPAN을 포함한 인권단체들이 주최하고 국제적인 NGO들의 후원을 받은 민간 재판 이벤트)에 참여했다.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일본군의 전쟁범죄. 특히, 일본군 위안부 조직과 강제연행, 위안부 강간, 고문, 상해, 학대, 살인 행위를 비판, 검증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국제법정이다. 1998년 처음 제안되어, 2002128일부터 12일까지 열렸다. 심지어 장소도 도쿄 구단회관이다.

개정 첫날에 남북한 공동검사단이 일본 천황을 군 위안부 강제 성노동 착취 전범으로 기소하였는데, 남북공동 검사단 중 1명으로 참여한 박원순은 "한반도는 10만 명 이상이 군대 위안부로 동원된 최대 피해국이였고, 식민지 지배가 그 배경이였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잘못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일본 천황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했다. 기사 참고로 국제사법기구의 힘을 빌렸다거나 해당국가 정부가 공식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법적 구속력은 없었고, 일본 정부 측 관계자는 모두 불참했다. 국제적 NGO 단체의 후원을 받았고, 전 세계에서 천 명이 넘는 방청객과 3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참석했다. 9개의 검사팀이 참여하였다.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구단회관 앞에서 일본 우익 단체의 가두선전차가 몰려 들어,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로 동원되지 않았다'는 등의 현수막을 내걸로, 국제법정을 비난하는 가두방송을 계속 했다. 한 때 대회장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과 주최 측의 삼엄한 경비 때문에 구단회단 주변에서 가두방송을 계속 했다고. 기사

조영래 변호사에게 돈 버는것 보다 외국에 나가서 세상을 보라는 이야기를 유언처럼 듣고 외국(영국,미국)에서 2년을 지냈다. 여기서 일상의 민주주의 확립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참여연대를 설립하게 된다.

참여연대 설립 이후

1995-2002까지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을 맡아 일했다.19949월 출범한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설립에 기여를 한 주역이다. 참여연대 설립은 학생운동 출신의 운동권 그룹, 박원순 변호사를 비롯한 인권변호사들(민변 계열),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한 진보적 학자 그룹 등 3그룹이 주도했다. 그 후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했다.

낙천낙선운동

박원순은 16대 총선을 앞둔 2000112일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 개 시민단체와 함께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를 구성, 단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낙천·낙선 운동을 이끌었다. 박원순은 후보 공천반대 인사 선정 기준과 적용에 대해, "병역사항·재산변동·부패혐의, 선거법위반, 헌정질서 파괴와 반인권 행위, 의정활동 성실성, 법안·정책에 대한 태도, 반의회ˑ반유권자적 행위"등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낙천·낙선운동이 벌어졌던 200016대 총선에서 대상자 132명 중 72.3%102명이 낙선했다.

단 이 낙천낙선운동은 명백한 실정법(공직선거법 87) 위반으로, 이에 대해서 많은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대법원은 낙선운동 대상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낙선운동 민사책임 인정해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으며, 2001년 헌법재판소는 낙선운동 금지를 규지한 선거법 87조에 대해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금지는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소액주주 권리찾기운동

재벌들의 비정상적인 영향력 앞에 주주들의 권리가 외면받고 있다는 불만이 점점 거세지고 있던 와중, 참여연대는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자본주의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소액주주 권리찾기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진 참여연대의 핵심 사업이었다. IMF 사태를 전후하여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제일은행, 삼성그룹 등에 대하여 소액주주 운동을 시작했다. 참여연대는 재벌 일가를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고, 훗날 이건희 회장이 구속된 계기가 되는 전환사채 문제도 계속 제기했다. 또한 참여연대는 입법 및 정책입안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여 주주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상법이 개정되도록 힘썼다.

2001'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1% 나눔 운동, 동아일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공동캠페인, 인터넷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따뜻한 세상 만들기" 온라인 캠페인, 작가들의 아름다운 나눔 인세 1% 기부운동 그리고 네이버와 기부포털사이트 해피빈 창립을 함께하여 기부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모인 기부금을 통해 한부모 여성 가장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 태평양제약과 함께 독거노인들에게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노인지원 기금 사업', 미숙아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사업' 등의 사회적 사업을 실천하였다.

2002'아름다운가게'를 설립, 헌 물건을 기증받아 수선하여 되파는 형태의 재사용 나눔가게, 3세계 저개발국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문화 운동, 재활용 디자인 사업, 국제구호를 위한 모금사업을 하였다.

희망제작소

'희망제작소(The Hope Institute)'는 대한민국의 재단법인으로 2006년 박원순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시민, 시민사회 활동가,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출범시켰다. 당시 '21세기 실학운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립한 희망제작소는 한국사회의 크고 작은 의제들에 대해 정책적 대안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독립 민간연구소로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지역과 현장 중심의 실용적인 연구를 지향한다.

간판문화 개선, 지하철문화 개선, 여성들을 위한 수영장 생리할인제도[13], ATM 수수료 사전 안내[14]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희망제작소는 현재 '사회혁신센터', '뿌리센터', '사회적경제센터', '시니어사회공헌센터', '교육센터', '재난안전연구소' 등의 연구 부서가 있으며 대안정책연수를 전문으로 하는 '공공연수'가 독립 법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활동

시민사회에서는 명망이 높고 한국의 NGO 활동에 있어 많은 업적을 쌓은 인물이었으나 대중적인 인지도가 많이 낮았던 상황에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다. 하지만 현실을 벽은 높아 지지율은 기껏해야 5%. 본인 스스로도 당시의 지지율에 당황스러웠다고 평했을 정도. 하지만 사실 딱 그 정도의 인지도였다. 당시 서울시장 지지율은 당시 안철수 교수가 독식하고 있었다. 누구랑 붙어도 최소 45% 최대 65%의 지지율로 나오지만 거의 백프로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일으켰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원장의 출마포기 및 지지선언으로 지지도가 껑충 뛰어오르게 되었고 그게 당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당시 안철수 원장의 측근으로 통하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말에 의하면, 서울시장에 나가는 것을 안철수 후보의 아버지가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양보하는 것처럼 포장이라도 하자고 해서 안철수 후보의 동의 아래 진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당대 안철수 원장의 지지가 없었다면 박시장은 정치입문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이후 재선에 성공한 것은 박시장 본인의 능력이었지만 전국적으로 3~5%의 지지율을 가진 사람이 다른 자리도 아닌 당대의 잠룡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것이 '아름다운 단일화'의 한 사례로 손꼽히면서 안철수 원장이 본격적으로 대통령 후보급 정치인으로 주목받게 된다. 어찌 보면 서로 윈윈한 셈이다.

 

서울시장 취임 이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공청회 개회, 다수의 현장 방문, 정보소통광장 웹서비스(행정정보 공개) 등 시민과 소통하는 시장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소통이라는 이미지에 함몰되어 오히려 과할 때가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I.SEOUL.U 슬로건이다.

 

정계입문 계기

대한민국 시민 운동의 대부격인 인물로 개혁성을 갖춘 전문가라는 평가와 함께, 1990년대부터 정치권(김영삼, 김대중 및 노무현 계열)에서 계속 러브콜을 보냈으나 이를 거부하고 시민운동가로 계속 활동하였다.

정치참여에 대한 그의 태도가 바뀌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에 들어와서 였다. 현재 둘의 사이를 보면 좋은 사이였는지 짐작이 가지 않지만 박원순은 노무현뿐만 아니라 이명박하고도 친분이 있어서 이명박이 서울시장이었던 시절 이명박과 주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이였다. 그러나 20095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는 언급을 하면서 이명박을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2009618일에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를 통해 NGO 활동에 대한 이명박 정부 측의 노골적인 방해와 불법적 민간 사찰 의혹을 주장하면서 관련기사 본격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대립하게 된다. 국정원은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박원순 당시 참여연대 이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결국 법원은 박원순의 손을 들어줬다.

결식제로 운동: 한편으로, 2010128일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2011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며 급식 관련 예산 285억 원을 전액 삭감해 새해가 시작되는 일주일 뒤부터 당장 급식 지원이 끊기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박원순은 즉각적으로 '결식제로' 운동을 시작했다.

2010년 당시 결식제로 운동을 선언하며 박원순은 "어떻게 밥 굶는 아이들의 급식비까지 깎아버린다는 말입니까", "국가가 책임을 지지 못하면 국민이라도 나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밥 굶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부터 하루에 한 끼를 굶어 12월 중으로 4만 원(한 끼당 5000×8)을 내놓으려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버린 아이들 우리가 먹입시다"라고 말했다. 국민 100만 명이 참여해 400억 원을 모으면 결식아동 겨울방학 급식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결식아동 0 캠페인'은 개시한 지 일주일 만에 2000여 명 이상이 동참해 1억 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다.

부경대학교 이상윤 교수는 박원순이 2011년 오세훈이 무상급식문제로 서울시장에서 물러나자 보궐선거에 나온 것은 201012월에 한나라당이 2011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급식 관련 예산 285억 원을 전액삭감하자 나온 것으로 그런 점에서 자신의 결식제로운동의 연장선상이라 평했다.

이 시기를 겪으면서 박원순은 이명박 정부 및 한나라당과 직접적인 대립 관계에 돌입하게 되고 결식제로운동의 연장선상에서 2011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그는 사회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바뀌게 된다.

 

 

2011년 재보궐선거 ~ 35대 서울시장

전임자였던 오세훈이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와 동시에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가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렸으나 이미 출마를 선언한 박원순 후보를 만나고 양보 및 출마 선언을 하지 않고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기로 하여 당시로서는 '아름다운 양보'라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 등과의 야권 단일화 경선에 승리하여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다.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53.4%의 득표율을 얻어(2,158,476),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7% 가까이 되는 득표율로 누르고 압승하면서 제35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더불어 헌정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시장[19]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차후 민주당에 입당하며 무소속은 아니게 되었지만 개표 결과, 서울 25개 지역구 중 보수 성향이 강한 용산구와 강남 3구를 제외한 21개 지역구에서 당시 나경원 후보를 앞섰고 1,867,880(46.2%)를 얻은 나경원 후보에 290,596표차(7.2%)로 승리하였다.

이는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한나라당은 2012년 열리는 19대 총선, 18대 대선의 승리도 낙관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결국 홍준표 대표 체제는 붕괴되고, 이명박의 당내 세력 또한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서게 되어 지금의 새누리당이 탄생하게 된다. 민주당으로선 무조건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으나 야권 전체를 종합적으로 볼 때, 매우 오랜만에 한나라당 계열의 서울시장이 탄생했고, 또 당시 차기 대권 주자 중 압도적으로 지지율이 높았던 박근혜에게 대적할 안철수라는 새 인물이 부상한 것은 긍정적 신호였다.

직무수행

박원순 시장이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하자 시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초등학교 5·6학년에 대한 무상급식 지원' 결재였다.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을 실현하였다. 12학번 신입생부터 그 혜택을 받게 되었다.

2013년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사건 당시 지하철 노조 측과 협상을 통해 파업을 철회시켰다.기사 관련 칼럼

2012년 그는 당시 서울시의회 민주당 강희용 의원의 의혹제기로 촉발된 메트로 9과 우면산 터널의 민자 소유주인 맥쿼리 코리아에 과대하게 약정된 최저수익 보장률과 보장기간을 철폐하기 시작하였고 2020년 기준 메트로 9을 공영화하였고 우면산 터널의 과도한 가격인상을 막아내었다.

강희용 시의원은 서울시의회내 '지하철 9호선 및 우면산터널 특혜의혹 진상규명을 서울시의회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를 조직하여 맥쿼리 코리아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인척이 세운 회사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명박 정부 당시 대규모 건설 된 민자 SOC들에 의무 수입 보장 기간을 두어 국가적 손해를 입힌 것이 아닌 가하는 국민적 의혹이 생기게 되었다.

* 2013년 정보소통광장 웹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선 모든 행정문서를 시민에게 공개한 첫 사례다. 서울시는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내건 희망서울을 위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열린시정 2.0 시대를 열겠다라며 모든 시정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공공정보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열린 시정을 만들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구청이 가지고 있는 공공데이터를 지자체 최초로 서울 열린 데이터 광장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2013111일부터 시작했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은 서울시가 가진 공공데이터를 가공하지 않은 원문 형태로 시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만든 웹사이트다. 20135월 서비스를 시작해 2013년 현재 교통, 환경, 도시관리 등 10개 분야 95개 시스템, 1098종의 데이터를 개방했다.

20131213일 혜화동 공관에서 은평뉴타운 전세집으로 공관을 옮겨 현장시장실을 열었다. 혜화동 공관이 한양도성 복원공사로 철거되고 새로운 공관을 마련할 때까지 미분양 때문에 골치를 앓던 은평뉴타운에 직접 임시공관을 마련해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것. 박원순 시장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면서 은평뉴타운 미분양은 "완판"되었고, 박원순 시장은 가회동에 새 공관을 마련해 이전하게 된다.

 

 

36대 서울시장

2014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하였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영향과 경쟁자였던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의 막내아들의 소위 '국민성이 미개하다'는 망언, 그리고 정몽준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가 오히려 박원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6.4 지방선거에서 보궐선거 때보다 득표율이 더 오른 56.1%의 득표율로(2,752,171), 새누리당의 정몽준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하였다.개표 결과, 서울 25개 지역구 중 용산구와 강남구, 서초구를 제외한 22개 지역구에서 당시 정몽준 후보를 앞섰고 2,109,869(43.02%)를 얻은 정몽준 후보에 642,302표차(13.10%)차이로 승리하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박원순 당시 후보가 서울의 대표적인 새누리당 강세지역인 강남 3구에서 보여준 득표율이다. 송파구에서는 아예 정몽준 후보를 이겼으며 강남구에서는 11개 동에서 승리하였다. 특히 정몽준 후보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지역구였던 동작을에서도 정 후보를 앞질러 승리하였다.

주요공약

서울형 공공 어린이집 1,000개소를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16년 예산안에 300개소를 신규 설립할수있는 예산이 반영되었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5대 창조거점, 3대 아시아지식기반허브[25], MICE복합단지 조성

 

직무 수행

201486, 소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응하는 서울시 공직사회 혁신대책 청사초롱 서울을 발표했다. 이 시행안에 따르면, 서울시 공무원은 단돈 1000원만 금품을 받게 되어도 처벌 대상이 된다. 관련기사

2015519"백제왕이 꿈속에 나타나서 풍납토성 복원을 결심했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서울시는 진짜로 복원 추진 중.

20156월부터 대중 교통 요금을 인상하여 비판을 받고 있다. 참고로 이땐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었던지라, '꼼수 인상'이란 비판도 받았었다.

201511월에 일정 자격을 갖춘 청년 실업자들에게 월 50만 원씩 지급하는 복지 정책을 발표했다.기사 박 시장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예견된 절차. 이상적인 복지 정책이라는 긍정적인 평과 포퓰리즘이라는 부정적인 평이 양립한다.

2015년 서울시의 음식물쓰레기 봉투 값이 폭등하였다. 심한 곳은 550%(서울시 동작구 기준 10L) 상승한 곳도 존재.

청계천 재복원 의지가 있는 듯하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조.

2016년을 기준으로 서울시가 지고 있었던 빚을 무려 7조 원이나 줄이는데 성공했다.

공약인 서울시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해 찬반 양론이 뜨겁다.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탄핵 직후 노벨평화상에 추천한다. 이때 경찰에서 물대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수도 밸브를 잠가 버렸다.

 

37대 서울시장, 헌정 사상 최초 3선 서울시장

지방선거가 1년 밖에 남지 않아 차후 그의 행보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행보는 2가지로 하나는 서울시장 3선 도전, 또 하나는 국회의원으로 중앙정치 입성이 있다. 전자의 경우 정권이 교체돼 문재인 정부가 서울시의 혁신정책과 인물을 대거 수용하면서 향후 서울시장으로서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예측됨에 따라 민주당 성향의 시민단체와 서울시 관계자들은 그의 3선 도전을 바라고 있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 차기 대선에서 그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그의 참모 그룹 중 현역의원들은 국회의원에 출마해 중앙정치무대로 입성해달라는 조언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같은 더불어민주당인 안희정 지사 또한 중앙정계로의 진출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박원순 시장과 안희정 지사가 동시에 중앙정치에 입성하게 된다면 안 지사와의 당내 주도권 경쟁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단 박원순 시장은 남은 임기를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는 입장만 밝혔고 그의 차기 행보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진 않았으나 서울시 관계자에 의하면 위의 두 행보를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모 언론사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울시장 3선 도전에 마음을 굳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다만 공식적으로 3선 도전을 천명하지 않았으므로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헌정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은 영화 소재로까지 다루어질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에 사실상 원외에서 당권에 도전할 것을 시사한 안희정 지사와 붙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3선 서울시장을 포기하고 국회로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최근 실시된 서울시장 적합도 여론조사를 보면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은 37.8%1위를 달리고 있으며, 같은 당 소속인 박영선 의원과 임종석 비서실장의 지지율은 합치면 50%를 넘게 된다.

1229, 박 시장이 발표한 신년사에서 강산이 변하는데도 10년이 걸리고 내 삶을 바꾸는 데도 10년이 걸린다면서 “‘10년 혁명을 통해 서울을 도쿄, 파리, 런던을 뛰어넘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강조하면서 사실상 3선 도전을 표명 했다. 7회 지방 선거에서 박 시장이 연임이 성공한다면 임기를 딱 10년을 채우기 때문이다.*

2018420, 경선 결과 66% 득표를 얻으며 경쟁 상대인 박영선 의원과 우상호 의원을 넉넉히 제치고 민주당 후보 확정됐다.

2018613. 선거 결과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 시장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격차가 사실임을 증명하듯 자기 유세보단 서울시 구청장들 유세지원을 신나게 하고도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 시민들이 시의회 전체 110석 중 102, 구청장 전체 25석 중 24[28], 2년 후의 총선에서는 서울특별시의 의석 49석 중 41석을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하면서 가히 서울의 황제(...)에 가까운 파워를 가지게 되었다. 딱 이명박 전 대통령 시장 시절 서울이 이랬다. 그 당시 이명박 시장이 자기 하고 싶은 거 다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또한 3선 이전에 이미 헌정사상 최장기 임기를 수행한 서울특별시장이란 기록도 남겼다. 7회 지방선거 이전인 20171117일자로 2214일째를 기록하며, 종전의 최장기 임기를 수행했던 고건의 임기 기록을 깼다. 그나마 고건은 1988~1990년에 관선 시장 임기를, 1998~2002년 민선 2기 서울시장으로 임기를 나눠서 수행했으므로 박원순의 기록이 더욱 특별하다. 심지어 조선 왕조의 서울시장 격인 판한성부사부터 한성부윤, 한성부 판윤, 일제강점기의 경성부윤 중에서도 박원순 시장보다 더 오래한 사례가 없다.

주요공약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이용 아동 50% 달성 추진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6대 융합신산업 단지 육성 및 MICE복합단지 조성. 벤처육성펀드 12000억 조성

공공지원형 주거복지 사업, 서울형 주거복지 로드맵 추진

서울페이 확대를 통해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경감 및 "서울형자영업자실직안정망" 구축

 

직무 수행

첫번째 여론조사에서 11(41.3%)를 기록하였다.*

두번째 여론조사에선 10(45.6%)를 기록하였다.*

세번째 여론조사에도 10(50.5%)를 기록하였다.*

네번째 여론조사에도 10(51.9%)를 기록하였다.*

다섯번째 여론조사에서는 6(50.9%)를 기록하였다. 순위는 올랐으나 1%p 긍정평가가 감소하였다.

 

ZN.23170901.1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뉴스1

 

사망

202071001분에, 전날 17시 즈음 딸에 의해 경찰에 실종신고가 접수되었던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자살한 채로 발견된 사건이다. 헌정이래 최초로 대한민국 수도의 현직 시장이 자살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정계와 사회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상세

202079일 오전 박원순 시장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출근하지 않았고, 오후에 예정되어 있던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면담도 취소한 후 1044분 종로구 가회동 소재 서울특별시장 공관에서 나와 청색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하얀색 마스크를 착용한 채, 흰 셔츠 위에 남색 점퍼를 걸쳐 입고 서울시 브랜드 ‘I·SEOUL·U’가 적힌 배낭을 등에 메고 외출한 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1차 브리핑에 따르면 1053분 와룡공원 CCTV에 박원순 시장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잡혔다.

2차 브리핑에 따르면 자택에서부터 택시를 이용하여 서울 와룡공원 근처까지 이동, 도보로 산책로를 올라간 것으로 확인이 됐다.

파일:1594310633.gif

이후 17시경에 박원순 시장 딸의 신고로 실종신고가 접수되었다.

 

실종 신고 직후, 박원순의 유튜브 채널이 숨김 또는 삭제 처리되었으며 인스타그램 계정 또한 비공개 처리되었다. 이어서 페이스북에서는 77, 트위터에서는 78일에 마지막 게시물이 올라온 이후 아직 갱신이 되지 않고 있다. 해당 계정들을 박원순 본인이 직접 비공개 처리하였는지, 해당 계정들을 관리하는 비서진이 비공개 처리를 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박원순 시장의 시신 발견 이후 숨김 처리되었기에 비서진이 처리했음이 확정적이지만,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은 사망 확정 보도가 있기 전 실종 신고 당시에 숨김 처리되었는데, 이 숨김 처리를 박원순 시장 본인이 처리했는지, 혹은 비서진이 처리했는지는 불명이다.202071001, 성북구 숙정문 인근 한국가구박물관 주변에서 박원순 시장이 수색 약 8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사인은 자살인 것으로 추정된다. 710일 새벽, 경찰은 일단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발표함으로서 자살 쪽으로 무게가 많이 기운 상태다.

330, 시신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 안치되었다.

9,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의 브리핑에 의하자면, 분향소는 서울특별시청 앞에 시민 분향소를 차리기로 한다고 다. 서울특별시 장()으로 5일장을 치르게 되며, 713일에 발인이 엄수된다고 한다.

1150분 유서가 공개되면서 사실상 자살로 확정된 상태, 결국 2130분 공식적으로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결론이 났다.

 

https://youtu.be/sHioRO5LhSE

 

전직 비서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01분쯤 서울 종로구 북악산 성곽길 인근 산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따라 관련 수사도 종결된다.

박원순 시장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미투 신고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시장의 전 비서 A씨는 지난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 고소장을 접수하고 변호인과 함께 조사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본인 외에도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박원순 시장이 두려워 아무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피해자 A씨의 고소장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2016년 이후 집무실에서 A씨를 지속적으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했다.

A씨는 서울시청의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완곡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으나 박원순 시장의 성적 수치심을 주는 대화는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최근 사직한 후 정신과 상담 등을 받던 중 엄중한 법의 심판과 사회적 보호를 받는 것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선결돼야 한다고 판단해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받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8일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게 해당 사안을 긴급 보고했다고 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모두가 고인을 추모할 뿐, 피해 여성이 평생 안고 가게 될 고통은 말하지 않는다""자신의 고소가 사람을 죽인 것 같은 트라우마에 갇힐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유창선 평론가는 "무엇보다 앞으로 벌어질 광경 앞에서 외롭지 않기를 빈다.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나 혼자라도 이 얘기는 꼭 전하고 싶었다""고인에 대한 추모의 목소리들과 피해 여성의 고통이 정비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박원순 시장에 대한 애도 속에 시신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지자 지지자들은 "살려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kr

 

"떳떳한 죽음이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반대 청원 41만 돌파

11일 오후 330분 기준 동의자 412819명 전직 비서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서울시가 사상 첫 서울특별시장()을 치르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게시 하루 만에 동의자가 41만명을 넘어섰다. 10일 해당 청원이 게시된 후 약 24시간 만이다. 11일 오후 330분 기준 동의자는 412819명을 기록했다.

청원인은 "박원순씨가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떳떳한 죽음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나.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에 이른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대체 국민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라며 "(박원순 시장 장례는)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당초 서울시는 시민장이나 가족장을 검토했으나 갑자기 서울특별시장()을 치르는 것으로 입장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입장을 변경한 이유를 묻는 한 기자에게 "유가족과 시청의 상의결과"라고만 짧게 밝혔다.

박원순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으로 진행하는 근거는 행정안전부 '정부의전편람'에 나오는 기관장() 규정이다. 편람은 "기관장은 기관의 장()이 재직 중 사망한 경우나 기관 업무 발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공무원이 사망하였을 때 거행한다""해당 기관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그 위원회 명의로 주관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기관장은 정부장이나 국회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서울시의 결정이 박원순 시장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미래통합당과 정의당 일부 의원들은 박원순 시장에 대한 조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박원순 시장 장례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5일장으로 치러지며 서울시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해 일반 시민의 조문이 가능하도록 했다.

일반인 조문객을 위한 분향소는 1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다. 발인은 오는 13일로 장지는 유족들과 협의를 마치면 발표하기로 했다.

11일에는 전북 전주에도 박원순 시장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에 따르면 도내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전북지역 시민사회 연대회의'가 전날 밤 전주시청 옆 뉴타운장례식장 501호에 박 시장 추모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박원순 시장의 죽음으로 인해 서울시장직은 710일부터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으며 당분간 비상근무체제로 돌아간다고 한다. 새로운 서울시장은 2021년 재보궐선거때 선출할 예정이다.

202079일 돌연 실종된 후 다음날 01분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서정협 부시장이 권한대행으로서 2021년 재보궐선거 이전까지 서울시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박원순 시장이 고수한 그린벨트 유지, 재건축 규제 등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며, 박원순 시장의 민선 7기 공약이자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온 청년· 취약계층 지원이나 도시재생, 전 국민 고용보험 시범사업 등의 동력도 약화할 공산이 커졌다.

그가 추진하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 송현동 문화공원 조성계획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속보]고소인 측 서울시장 위력 속, 성추행 4년간 지속주장  2020 07 13

서울시장 위력 속에서 문제제기 어려워

성추행 4년간 있었다

시청 내부에 도움 요청했으나 묵인

음란한 문자 발송 등 가해 행동 심해져

엄청난 위력 속 거부나 문제 제기 할 수 없었어

부서 변동 후에도 개인적 연락 지속

전형적인 위력 성폭력 특성 그대로 보여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혐의로 고소한 서울시 직원 A 씨 측이 13일 오후 입장을 밝혔다.

A 씨를 상담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A 씨 본인 대신 그의 변호를 맡은 김재련 법무법인 ·세상대표 변호사가 참석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본 사건은 박원순 시장의 위력에 의한 비서 성추행 사건이라고 명시했다.

그는 우리가 접한 피해사실은 비서가 시장에 대해 절대적으로 거부나 저항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업무 시간 뿐 아니라 퇴근 후에도 사생활을 언급하고 신체 접촉하고 사진 전송하는 등 전형적인 위력에 의한 피해라고 밝혔다. “피해는 4년간 지속됐다고 했다.

A 씨가 곧바로 고소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서울시 내부에 도움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 아니다며 단순 실수로 받아들이라 하거나 비서 임무는 시장 심기 보필하는 업무라 하는 등 피해를 사소화 하는 반응이 이어졌다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부서 변경을 요청했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고도 했다.

피해 내용에 대해선 속옷차림 사진 전송, 음란한 문자 발송 등 점점 가해의 수위는 심각해졌고, 심지어 부서 변동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개인적 연락 지속. 서울시장 엄청난 위력 속에 전형적인 위력 성폭력 특징 그대로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은 전형적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이지만, 피 고소인이 망인이 되어 형사고소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코 진상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 아니다. 박원순 시장은 여성 인권의 관심 갖고 역할 해온 사회적 리더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미투 운동,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든 전 부산시장에 대해서도 가장 가까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위치에서 그 사인이 누구보다 자신에게 해당된다는 점 깨닫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멈추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지탄했다.

단체는 “(박 시장은)어떠한 형태로도 피해자에게 사과의 뜻 전했어야 함에도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김으로써 피해자는 이미 사과 받은 것이며 책임은 종결된 것 아니냐는 일방적 해석이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가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서울 시장 지위에 있는 사람에겐 본격적 수사 시작 전에 증거 인멸의 기회 주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목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시스템을 믿고 위력 성폭력 시스템 고소할 수 있겠냐?”앞으로는 피해를 입고도 숨죽이며 살지 않기 위해 위력 성폭력에 맞서 끝가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고소인 글 대독

손바닥으로 하늘 가릴 수 있다 생각했어. 미련했어. 후회했어. 처음 소리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 그랬다면 지금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 원하는 게 아냐. 그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세상 꿈꿔.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어.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어.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 받고 인간적인 사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그 분께서 인간의 존엄 내려놓았어. 죽음. 두 글자는 나도 담지 못한 글자. 사랑하는 사람 상처주지 않고 싶었어. 그래서 실망. 고인의 명복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될지 모른다는 마음에 망설였어. 그럼에도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위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어.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지만 저는 사람.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이 일상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훌륭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