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타이 와 킥복싱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20. 8. 13.

무에타이(태국어: มวยไทย, 영어: Muay Thai, Thai boxing)1,000년가량을 내려온 태국의 격투 기술이다. 타이 복싱이라고도 불리며 팔꿈치와 무릎, 정강이 등의 파괴력 있는 부위를 주로 사용한다. 무에타이는 현재까지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으며 아시아 실내무술 경기대회 정식 종목으로만 남아 있다. 영화 옹박(Ong-Bak)으로도 유명하다.

 

Map-of-southeast-asia_1300_CE 수코타이 왕국

 

역사

현재 태국의 주요 구성원인 타이족의 본래 터전은 중국 남부였다고 한다. 10세기경 현재의 인도차이나 반도로 남하한 타이족은 북부 지방 선주민인 몬족과 싸워, 몬족을 멸망시키고 그 터전과 문화를 흡수했다.

 

수코타이 왕조

 

이 때부터 '무어이보란'으로 불리는 타이의 원시 무예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후 타이족은 북부의 수코타이 왕조(태국어: อาณาจักรสุโขทัย, 1249~ 1438년은 태국 최초의 통일 왕국이다.)를 거쳐, 지금의 메콩 강 일대에 시암 왕국(아유타야 왕조)을 세운다.

 

KingNU 나레수안

 

무에타이의 전설들

흑태자 나레수안(태국어: สมเด็จพระสรรเพชญ์ที่ 1555425~ 1605)

타이 시암왕조의 20대 왕. 당시 대국이었던 미얀마(버마)에 맞서 싸웠다. 전투에서 단신으로 맞붙은 버마 왕자를 일격에 쓰러뜨려 승리를 거두었다.

 

นาย ขนม ต้ม

 

나이 · 카놈 톰(นาย ขนม ต้ม)의 전설

18세기 중반, 시암 왕국을 멸망시킨 버마는 많은 시암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그 중에 '카놈 똠'이라 불리는 낙무아이(무에타이 전사의 호칭)가 있었다. 당시 버마의 왕이었던 망그라는 당시 수도인 만달레이에서 벌어지는 불공 행사에서 포로인 시암 전사들과 버마 전사들의 경기를 갖기로 했는데, 경기가 시작되어 카놈 톰의 차례가 왔다. 링 위로 올라선 그는 상대를 앞에 두고 빙빙 도는 특이한 춤을 추었다. 버마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춤을 바라보았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카놈 톰은 무차별적인 팔꿈치 공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버마인들은 이 패배에 승복하지 않았다. 카놈 톰이 경기 전에 이상한 춤으로 버마 선수를 홀렸고, 이것은 판정상 패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카놈 톰은 다시 9명의 버마 전사들과 연이어 싸우게 된다. 그리고 카놈 톰은 힘을 다해 싸워 상대 전부를 혼자서 KO시켰다. 마지막 아홉 번째가 쓰러지자, 카놈 톰의 용맹과 시암인들의 무예에 감탄한 버마 왕은 선물로 미녀 둘을 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카놈 톰은 이후 고향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며, 사후에도 여전히 무에타이 사상 최대 영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나이'는 태국에서 남자를 부르는 존칭이다.)

 

 

현대의 무에타이

현대 격투계에서 무에타이가 선보인 파괴력은 굉장하여, 일본에서 무에타이와 가라데 등을 결합한 킥복싱(영어: Kickboxing, 일본어: キックボクシング)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쁘아까오, 남삭노이, 쌈코 등의 선수가 K-1 등의 킥복싱 무대에서 활약하고, 태국 국내에서도 룸피니를 중심으로 수많은 선수들이 맹훈련을 거치며 많은 곳에서 벌어지는 무에타이 경기에서 활약하고 있다.

 

 

영화 옹박( 타이 : องค์ บาก 2 , 영어 : Ong Bak 2)2008 년의 태국 영화다.

2003 년 영화 '옹박", 현대를 무대로 했던 전작 대해 본작은 아유타야 왕조가 태국을 정복 시대를 무대로 하고, 이야기도 관련성 아니다. 토니 자토니 자 (Tony Jaa, 1976 2 5 -) 감독 · 원안 · 무술지도를 맡고 있고(원제 : Ong Bak 3)도 제작되었다.

 

킥복싱

 

킥복싱(영어: Kickboxing, 일본어: キックボクシング)은 발차기와 주먹질에 기반한 격투 스포츠의 하나로서, 역사적으로는 공수도와 복싱을 결합하여 개발되었다. 주먹과 발, 무릎 등을 사용하여 상대를 타격하는 입식 격투기 가운데 하나이다. 자기방어, 피트니스, 접촉 스포츠가 목적이다.

 

구판홍선생

역사

한국의 킥복싱은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19649월 당시 대한 태권도협회 오도관 전남 본관장인 구판홍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태권도에 대한 지도보급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강한 무술을 만들고자 태권도, 복싱, 유도, 레슬링 등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절충하여 치고, 차고, 던지고, 꺾고, 조르는 종합 무술로 체계화하여 킹투기라는 무술을 독창적으로 창안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킹투기가 각종 무술 중에서 가장 과격한 최고의 격투 무술로써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후 19684월에 일본의 노구치오사무 기꾸 복싱 회장이 킹투기의 발상지인 광주에 와서 구판홍 창시자와 최초의 회담을 가졌으며, 일본의 노구치오사무회장이 무에타이라는 태국의 전통무술과 극진가라데를 접목시켜 만든 기꾸복싱과 한국의 킹투기를 킥복싱으로 명칭을 통일하기로 하고, 한일 간의 국제 교류를 합의하였다. 그로 인하여 킥복싱이라는 무술이 한국에서 최초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출처 : http://www.kbakorea.com/kick/kick01.php?PHPSESSID=488876220125b8f8b347ecb80d50b089)

또 일본에서의 킥복싱은 1963년 극진공수도의 선수였던 쿠로사와 켄지, 나카무라 타다시, 노보루 오자와가 무에타이의 성지인 룸피니 스타디움에 가서 싸우게 된 것을 킥복싱이 만들어진 계기로 본다. 이 시합에서 나카무라와 노보루는 승리를 거두지만 정작 리더격이었던 쿠라사와 켄지는 참패를 당한다. 종합성적은 2-1로 극진측의 승리였지만, 시합 패배 후 무에타이의 강력함을 실감한 쿠로사와 켄지는 공수도의 스타일을 살리면서 복싱 펀치와 무에타이 시합룰을 응용한 새로운 무술을 만들게 된다. 일본의 복싱 프로모터 노구치 오사무는 1966"킥복싱"이라는 명칭을 고안하고 일본의 복싱이나 공수도 선수를 모아 "일본 킥복싱 협회"를 만들어서 시합을 시작했고, 이것이 일본과 태국 등지에서 흥행하면서 미국과 유럽까지 퍼져나게 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까지 흥성하던 킥복싱은 1970년대 들어 각종 기구의 난립과 오일 쇼크 등의 영향으로 침체일로에 빠졌으나, 1990년대 신설된 K-1이 크게 성공하면서 부흥기를 맞이한다. 200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K-12010년대부터 인기를 잃고 몰락하였지만 글로리, 슈퍼컴뱃 등의 단체가 킥복싱의 명맥을 잇고 있다.

 

http://blog.daum.net/kmozzart/6860

 

이것이 한국국어사전이다

국어사전; 무예타이 (muay Thai) 신어 같은 말 : 킥복싱(kickboxing). 무예타이 와 킥복싱이 같은말이라는군 이런넑빠진자식들이 국어사전을만들고있으니 나라망신은접어두고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눈

blo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