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고단한 여정/이용재/부.키/김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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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28.

"딸과 함께 읽는 답사 여행기"로 쓰여진 이 책은 재미 있다.

그리고 궁굼증이 나타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아빠와 딸의 대화로 막히고 답답한 고어나 한자,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고증을 풀어준다.

'건축 글쟁이로 사람사는 이야기를 헤집고 다니는 저자의 관심사가 이번에는 조선시대의 선비들로 향했다.

딱딱한 교과서 속 암기대상이었던 역사 인물들이 우리처럼 피가 도는 따듯한 존재로, 때론 성깔부리는 생생한 캐릭터로 바뀐다.

그의 파격적인 해석과 상상에 시비를 걸 수는 있어도 톡톡튀는 모습으로 살아 돌아 온 조선 선비들의 등장에 웃음 짓지 않을 수 없다.

분명 그는 우리 시대의 독특한 글쟁이이다.'-구본준 한겨레신문 기획취재팀장

 

 

 

 딸, 정약전 알지?

몰라.

뭐라.

마누라한테 전화.

딸이 정약전을 모른다는데 어찌된 겁니까?

저도 모르는데요.

뭐라.

전부 집합. 여름방학을 맞아 내일부터 16일간 조선 투어를 떠난다.이름하여 주유조선.

아빠, 왜 16일간이야? 주유조선은 또 뭐고.

공자선생이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주유천하 했거든 베낀거야.

나 바쁜데.

마누라 왈, 저도...

그럼 다시 끊었던 소주 먹는다?

아니에요.-서문 중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단종의 이야기가 있는 청령포부터 사육신과 생육신, 그리고 사미인곡의 정철과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를 따라가고

성리학을 외친 김종직과 향악을 전파한 김정, 주자의 의로운 길을 따른 송시열, 정온, 정약용, 김대건 신부, 녹두장군 전봉준,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 효령대군과 남명 조식, 김장생, 변중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추적하며 조선 선비들의 삶의 여적과 생가, 유배지, 역사적 이야기를 대화체로 술술 풀어 내고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도 있지만, 미처 모르고 지나갔던 역사적 사건들과 그 이면에 감춰진 선비의 정신과 절개가

결코 무겁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도 않게 사실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그려지고 있다.

현대건축을 전공하다가 문화재 탄생의 비화를 캐면서 역사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뜬 그가 조선시대에만 하더라도 목숨 걸고

건물을 지었던 것을 돌아 보면서 제도권 교육의 잘못된 틀에 대해 고민하다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자료를 조사하고 이야기를 찾아내고 추적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문화재가 그냥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혼과 이야기가 담긴 역사의 중시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깨우쳐 주고 있다.

 

아빠, 나 벼슬 안 할래.

잘 생각했다.

아빠가 월금 줘.

뭐라.-본문 158쪽

벼슬길에 나왔다가 들락날락 하기를 스물여덟 번, 기록을 세운 우암 이었지만 결국 제주로 유배가서 살다가 여든 불의 나이로 한양으로 압송 돼 국문을 받기 위해 올라오는 도중에 전북 정읍에서 숙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것을 보고 딸이 한 소리다.

참으로 팔한만잔한 역사를 살다간 우암 이었지만, 영화뒤에 결국 사약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정쟁과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조선시대의 대표적 선비의 말로를 보는 것이 어쩌면 조선의 역사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아 가슴아픈 장면이기도 하다.

 

아빠, 왜 마을 이름이 밀양이야?

따스함이 넘쳐나는 마을이거든. 밀이 미리(美里, 아름다운 마을)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옛말로 용을 '미르'라고 해서

용의 벌판이라는 뜻도 있어.-본문 115쪽

김종직 선생의 고향이 밀양이다.

그의 생가와 영남루, 서원재, 예림서원등의 사진과 함께 성리학의 전수자 김종직의 일화를 자세하게 추적해 나가고 있다.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딸의 질문을 빌어 궁금한 내용들을 짚고 넘어가는 자상한 배려까지...

중, 고둥 학생들이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이는데 큰 도움이 되는 길잡이라 생각한다.

논어 맹자,대학, 중용의 글귀들과 고사성가 뜻풀이와 함께 이우러지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역사기행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