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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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노트 입동{立冬}

피를 토하며 슬퍼하는 사람을 그 슬픔을 함께해본 사람은 아는 것이다.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도 그 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위험한 생각으로 길을 걷는다 나 이제 그렇기에 힘을 내기로 한다. 그리하나 명상에 잠기고 싶지 않을 때에서야 흐벅진 명상이 된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는 것이다. 세 치 혀에 다다를 문학을 기다린다 자유에 자세를 가르쳐주면 바다를 본 적이 없는데도 자유는 첨벙거린다 느낌표를 그리기 전에 느껴지는 것들과 조금씩 조금씩 심장 가까이 내가 가기 전에 이 가을 삼 동으로 흠 없이 입동{立冬} 하기 전에.

댓글 시인의 노트 2020. 11. 19.

15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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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노트 무전여행

어느 때이건 나 어디론가 집을 떠나 비록 돈이 없어 굶거나 잠자리가 불편해도 시로서 삼라만상을 보며 한 편의 소설 같은 모험으로 수필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어느 곳에서든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그런 것들이 나의 삶인 양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토대로 쓴 시, 그것들과 더불어 아무 곳에서나 잠자고 허기진 사지가 늘어져 사람이 그리우면 그땐 시골 오일장 어느 주막집, 잔 밥을 구걸할지라도 동토의 길에서도 맑은 시를 건져 올리고 싶다. 아, 땅거미가 지는 이 시간 이순신 대교 주탑 건너편으로 고향 같은 마을이 건너다보인다. 집집이 김을 떠서 울타리에 내다 널고 살구나무 감나무 무화과나무 대밭 골 대나무 이파리들이 몹시 반짝거려 중 넘길 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쏙 등엔 칠게들이 옆으..

댓글 시인의 노트 2020. 11. 15.

14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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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노트 전정{前程}

고향을 그리는 수레들의 짙은 향내 길 위에 가득 흩어지면 가슴 속 겹겹이 쌓인 그리움의 나이테 사방으로 나동그라진다. 어둑새벽, 산새들의 조잘거림도 없는 누군가가 기억하라고 매달아 놓은 꼬리표 날마다 날마다 가벼워져도 아직, 行間을 건너가 보지 못한 생각들이 生을 탁본하듯 자동차 경적만이 길 위를 굴러다닌다. 나들목 근처다 신작로를 따라 즐비한 마을의 집들이 유리창을 번득이며 길을 바라보고 있다. 서로 다르게 비어 있는 창 속에서 불빛만이 가려진 커튼 사이로 안개를 흘릴 뿐 먼 하늘 그대, 네가 가둔 것들, 손에 쥔 그것들을 놓아봐 잘 보면 네가 가고 싶은 곳은 분명히 보일 거야 이미 기억을 개종했을지라도 바로 네가 발 딛고 선 그 자리일지도 몰라. 02오늘 우리가 지각없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이의 ..

댓글 시인의 노트 2020. 11. 14.

07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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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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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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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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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노트 열매를 꿈꾸며

01, 열매를 꿈꾸며 오동지에 모여 사는 나무들은 밤이면 걸어 다닌다. 설레는 개울물이 방울방울 눈을 뜨면 누가 첫차로 떠나는 것일까, 반딧불이는 가늘게 눈을 껌벅거리고 호박 덩굴도 둘레길 따라 걷는다. 아무도 잠이 깨어 기도하지 않는 밤 대파는 파랗게 질리도록 땅을 파고 밤나무가 순한 개울물을 끌어당기면 캄캄히 잠든 감나무 뿌리가 깨어나고 나는 함부로 코를 골고 잔다. 따뜻한 햇볕 늘 푸른 하늘이 그리운 나무들은 소리죽여 노래하고 운다. 은빛 빛나는 사나운 바람이 함부로 여기저기 몰려다니다가 매실나무 밑을 서성일 때 긴 팔을 가진 상수리나무가 "쉬이 간벌이 시작되었다." 속삭이며 가지 꽃잎을 잠재운다. 가만히 숭우당 뒤란을 돌아가는 자두나무들의 귀엣말 은밀하게 퍼져가는 차고 숨 가쁜 시간에 그루터기에 ..

12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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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노트 섬진강물

바다로 가기 싫은 섬진강물은 파랗게 소리 지르며 천천히 천천히 구불구불 돌고 돌며-흘러가는구나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바다까지의 아득한 한 시대를 산다는 게 기쁘지만은 않음이여, 기다림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버린 비닐봉지가 물수제비처럼 푸드덕거리며 떠내려가네! 매화마을 강가에서 방생하던 사람들 물고기를 놓아 보내며 삶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리. 흘러가는 것들은 과연 돌아오지 않는가. 저 반짝이는 물비늘에 휩싸여 흐르지 않는 나의 시심이여, 시대는 변해왔지만 잇따라 아름답지 않았음을 섬진강물은 얼마쯤 알고 있는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