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커피 한 잔 마시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잠시 머물고 추억하며 즐거우시기 바랍니다. 브런치에 오셔도 제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onko

30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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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할머니의 고추장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의 일이라고 한다. 조선 개화사에 의하면 이때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돌살키 위하여 가져왔으나 우리 체질에 맞아 즐겨 먹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내가 매운맛을 접한 것은 3-4 살 무렵의 일이 아닌가 싶다. 김치를 물에 씻어 밥에 올려 먹은 것이 내가 처음 맛 본 매운맛이다. 그 무렵의 아이들은 대개 물에 씻은 김치를 시작으로 밥상 위의 반찬에 맛을 들여 갔다. 내가 자란 외가에는 손바닥 만한 마당에 반지하의 창고가 있어 그 지붕에 할머니의 장독들이 있었다. 그중 할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고추장 항아리였다. 3-4년쯤 묵힌 찹쌀고추장은 요즘 고추장과는 달리 검은빛이 돌며 끝 맛이 달짝지근했다. 가을이 되면 할머니는 고추를 말려 씨를 빼고 ..

댓글 맛이 기억 2020. 9. 30.

29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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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테이블 매너

나는 늘 외할아버지와 겸상으로 밥을 먹었다. 내가 할아버지와 밥을 먹고 나면, 할머니와 이모가 그 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늘 그렇게 지냈기 때문에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외가에는 나름의 밥 먹는 예절이 있었다. 밥상을 받으면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시기 전에는 먼저 수저를 들 수 없다. 반찬도 할아버지가 먼저 손을 대신 후에야 먹을 수 있다. 맛있는 반찬이라고 해서 그것만 먹어서도 안되고, 눈치껏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할아버지가 내 쪽으로 밀어주시곤 했기 때문에 늘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가끔 우리 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되면 전혀 다른 상황을 접하게 된다. 2-3년 터울의 5남매가 모여 먹는 밥상은 할아버지와 둘이서 조용히 먹던 내게는 문화적 충격..

댓글 맛이 기억 2020. 9. 29.

27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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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변해가는 명절 가족모임

아내의 명절증후군은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며 시작된다. 추수감사절로 시작되는 가족모임은 성탄절, 그리고 설날까지 이어진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이보다 앞선 추석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추석 다음날인 어머니 생신으로 시작해서, 곧 아버지 생신이고, 바로 추수감사절과 연말이 시작된다. 결혼 초에는 부모님의 생신을 집에서 차려 드리기도 했었는데, 그 후로 어머니날, 아버지 날, 생신 등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집만 해도 아이들이 다 모이면 넷이고, 짝들도 있고, 올망졸망 손자들도 있다. 몇이 빠져도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20여 명도 모인다. 가족 모임은 주로 나와 동생의 집에서 했는데, 한 달 남짓한 기간에 3번을 모이니, 한 집에서는 2번 모이게 된다. 아내는 대가족에서 자랐기 때문에 손이 크..

댓글 칼럼 모음 2020. 9. 27.

26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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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아내의 복수

스웨덴 작가 ‘카밀라 락보그’의 소설 ‘The Golden Cage’는 애증과 여성의 복수를 다룬 연애소설 같은 추리소설이다. 가정폭력 속에 자란 주인공 ‘훼이’(Faye)는 과거를 묻고 대학에 진학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잭’(Jack)을 만나 결혼을 한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돈이 없는 그가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휴학을 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그 덕에 잭의 사업은 크게 성공하여 그들은 백만장자가 된다. 하지만 돈은 그들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도리어 갈등과 파멸을 가져온다. 잭은 사업의 성공이 모두 자신의 공이라고 생각하고 훼이를 무시하며 바람을 피워댄다. 어느 날, 딸아이와 주말여행을 떠났던 훼이가 중간에 아이가 아파 집에 돌아오는데, 침실에서는 잭이 회사의 여성 간부와 정사를 나누고 ..

댓글 책 이야기 2020. 9. 26.

24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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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나도 술을 잘 마시고 싶다

나도 남들처럼 술을 잘 마시고 싶다. 빈대떡이나 해물 파전을 앞에 놓고 막걸리 잔을 주고받거나, 캠프장 모닥불가에서 맥주병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치고, 페티오에 앉아 치즈나 마른 과일을 먹으며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어 올리고 싶다. 하지만 내 주량은 소주 반잔, 맥주 반 컵, 와인은 향을 맡는 정도다. 술 냄새만 맡아도 얼굴이 벌게지고, 술맛을 보고 나면 금방 심장이 벌름거리고 숨이 가빠진다. 남들은 기분 좋으라고 마시는 술이 내게는 힘든 산행과 같다. 사람들은 함께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되고, 힘든 이야기를 꺼내 놓기도 한다. 적당히 술이 들어가면 평소에 하지 않는 언행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모양이다. 말이 없던 사람이 마구 말을 늘어놓거나, 얌전하던 사람이 돌출 행동을 하기도 하며, 허물을 벗어 놓..

댓글 칼럼 모음 2020. 9. 24.

23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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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작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갑자기 허리가 몹시 아파 응급실에 갔었다. 신장 결석이 의심되어 CT를 찍었다. 허리 아픈 것은 근육통으로 밝혀졌는데, CT에 부신 우연종이 발견되었다. 주치의는 걱정할 일은 아니라며 1년 후에 다시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금년 봄에 CT를 찍어보라고 연락이 왔는데, 코로나 탓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여름이 되었다. 주치의와 전화상담으로 정기검진을 하는 과정에서 재차 CT를 찍어 보라고 했다.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병원에 가서 CT를 찍었다. 결과는 작년과 동일. 1년 후에 CT를 다시 찍어 보라고 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간에서 낭종이 발견된 것이다. 주치의는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초음파(ultrasound) 검사를 하라고 했다. 약간 신경이 ..

댓글 일상에서 2020. 9. 23.

22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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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먼 북소리

‘먼 북소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 - 1989년 사이 3년 동안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살며 쓴 책이다. 책 표지에는 “낭만과 감성의 유럽 여행 에세이”라고 적혀 있지만, 여행기라기보다는 그 3년을 전후한 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3년 동안 유럽에 머물며 그는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같은 대표작을 썼고, 번역작품도 여러 편 발표했다고 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저자의 좌충우돌 여행 경험담과 여행지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지만, 이 책에는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가 경험한 유럽의 도시들과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

댓글 책 이야기 2020. 9. 22.

20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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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구운 옥수수

백일해는 소아 감염질환 중 전염력이 강한 질환 중 하나다. 한국에는 80년대부터 정제 백일해 백신이 혼합된 DTaP 백신이 도입되면서 유행이 감소하였다고 한다. 백일해에 걸리면 기도가 막힌 ‘색색’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마치 금세라도 숨이 넘어 갈듯이 격렬한 기침을 한다. 한 번 걸리면 백일 동안 기침을 한다고 해서 백일해다. 한국에 백일해 백신이 보급되기 전의 일이다. 동생이 먼저 걸려 왔다고 기억한다. 할머니는 육모초 (익모초) 달인 물이 백일해에 좋다며 나와 동생에게 수시로 육모초 달인 물을 마시게 했다. 그 무렵 나는 백일해 탓인지 입맛이 없어 밥을 잘 먹지 못했다. 하루는 할머니가 장에 다녀오시는 길에 구운 옥수수를 하나 사 오셨다. 그놈을 반으로 잘라 큰 것은 내게, 작은 것은 동생에게 주었다..

댓글 맛이 기억 2020.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