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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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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2020. 9. 20.

백일해는 소아 감염질환 중 전염력이 강한 질환 중 하나다. 한국에는 80년대부터 정제 백일해 백신이 혼합된 DTaP 백신이 도입되면서 유행이 감소하였다고 한다. 백일해에 걸리면 기도가 막힌 ‘색색’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마치 금세라도 숨이 넘어 갈듯이 격렬한 기침을 한다. 한 번 걸리면 백일 동안 기침을 한다고 해서 백일해다.

 

한국에 백일해 백신이 보급되기 전의 일이다. 동생이 먼저 걸려 왔다고 기억한다. 할머니는 육모초 (익모초) 달인 물이 백일해에 좋다며 나와 동생에게 수시로 육모초 달인 물을 마시게 했다. 

   

그 무렵 나는 백일해 탓인지 입맛이 없어 밥을 잘 먹지 못했다. 하루는 할머니가 장에 다녀오시는 길에 구운 옥수수를 하나 사 오셨다. 그놈을 반으로 잘라 큰 것은 내게, 작은 것은 동생에게 주었다. 내 동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심성이 착하다. 형이 더 아프니 큰 것을 주자는 할머니의 말에 군소리 없이 큰 놈을 내게 양보했다.

    

찐 옥수수에만 익숙하던 내 입에 구수한 구운 옥수수는 정말 맛있었다. 단숨에 구운 옥수수 반개를 먹어 치웠다. 그리고 그날 이후 입맛을 찾아 다시 밥을 잘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를 계산하면 그 후의 일이지 싶은데, 내 기억에는 그날 또 다른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옥수수를 다 먹은 나와 동생은 마루 바닥에 누워 할머니에게 키를 재 달라고 했다. 내가 설 수 없으니 키를 재려면 벽에 발을 붙이고 나란히 누워야 했다. 할머니는 대충 머리에 손을 대고 재어 보더니 ‘형이 크지’ 하셨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달리 들렸다.

 

동생이 집으로 돌아 간 후, 나는 할머니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정말 내가 아직 더 크더냐고. 그랬더니 할머니가 실은 동생이 조금 더 크더라고 하셨다.

    

그 후 다시는 동생과 키를 재어본 기억이 없다. 물론 지금도 동생은 나보다 키가 크다. 그리고 배도 조금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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