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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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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2020. 9. 23.

이야기의 시작은 작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갑자기 허리가 몹시 아파 응급실에 갔었다. 신장 결석이 의심되어 CT를 찍었다. 허리 아픈 것은 근육통으로 밝혀졌는데, CT에 부신 우연종이 발견되었다. 주치의는 걱정할 일은 아니라며 1년 후에 다시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금년 봄에 CT를 찍어보라고 연락이 왔는데, 코로나 탓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여름이 되었다. 주치의와 전화상담으로 정기검진을 하는 과정에서 재차 CT를 찍어 보라고 했다.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병원에 가서 CT를 찍었다.

 

결과는 작년과 동일. 1년 후에 CT를 다시 찍어 보라고 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간에서 낭종이 발견된 것이다. 주치의는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초음파(ultrasound) 검사를 하라고 했다.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초음파 검사만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은 느낌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음파 검사 결과가 불규칙하게 나왔으니 내과 전문의를 보라는 전갈이다. 주치의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보니, 전문의와 상의하라고 한다. 다음날 Gastroenterology (위장병학과)에서 전화가 와 전문의 상담 예약을 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다.

 

위장병학과가 무엇하는 곳인가 찾아보니, 소화기 계통의 모든 장기를 보는 곳이다. 그중에 췌장도 들어 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 얼마 전 아내의 친구가 췌장암 선고를 받고 3달 만에 죽었다.

 

‘내로남불’은 여기에도 해당이 된다. 아내의 친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힘든 항암치료를 받다가 갔다. 나는 그때 죽음이 다가오면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주변을 정리하겠노라고 말했었다. 다음 주 전문의가 내게 죽음을 선고한다면 과연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큰 걱정거리라도 오래 두고 고민하지 못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리한다. 하루 자고 나서 마음을 정리했다. 주어지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아마도 남은 날들도 지금처럼 이렇게 지낼 것 같다. 의사가 권하는 치료를 받을 것이다. 완치가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불치라도 어쩌겠는가. 적당한 때에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한 작별을 할 것이다.

 

이 글을 수요일에 쓰고 있다. 지금 올리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이를 보고 연락해 올 것 같아 저장만 해 두려고 한다. 다음 주 월요일 전문의를 보고 와서 올릴 작정이다. 그때 ‘이런 해프닝이 있었네요’라고 하게 될지, 아니면 ‘혹시나가 역시나였네요’라고 하게 될지는 그날이 되어보아야 알겠다.

 

막상 글은 이렇게 써놓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 새벽에 눈이 떠졌다. 대충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를 만나기 전 혈압과 맥박을 재는데 혈압은 139/84, 맥박은 103이다. 평소 내 혈압은 120을 넘지 않으며, 맥박도 90 아래다. 긴장하고 있다는 표시다.

 

마침내 전문의와 마주 앉았다. 간 표면이 매끈하지 않다는 것이다. 간에 scar tissue 가 있는데, 이를 계속 방치하면 간경변이 된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는 간이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지금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피검사를 오더 하더니, West Los Angeles 카이저에 가서 좀 더 정밀한 스캔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Scar tissue 가 있는 것이 확인되면, 그다음에는 조직검사를 해 보아야 한다.

 

검사실에게 가서 접수를 하는데 피 뽑은 병에 붙일 라벨을 9장이나 프린트한다. 피를 9병이나 뽑을 작정인 모양이다. 허삼관은 가족을 위해 피를 되로 뽑아 팔기도 했는데, 나는 살자고 뽑는 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염려했던 대로 추가 검사를 하게 되었고, 당분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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