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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아줌마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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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2020. 10. 4.

며칠 전의 일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마켓에 갔다가 한국 빵집에 들렀다. 갓 구워낸 맛있어 보이는 온갖 빵들이 있었다. 빵을 보니 문득 옛일이 생각났다.

 

이모의 친구 중에 '종이 아줌마'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종희' 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귀에는 '종이'라고 들렸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를 '종이' 아줌마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녀가 이모를 찾아 외가에 왔었다. 그날따라 이모는 외출을 하고 집에 없었다. 할머니는 종이 아줌마에게 잠깐 집을 좀 지키고 있으라며 장에 가셨다. 한옥 대문에는 열쇠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 집에 있어야 했다. 나와 종이 아줌마만 남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 기다란 빵을 사들고 있었다. 집에 있는 동생들에게 주려고 샀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어린 동생들이 여럿 있었다.

 

피하려고 하는데도 나의 눈길은 자꾸 그 빵 쪽으로만 가는 것이었다. 그 낌새를 알아차린 그녀가 부엌에 가서 칼을 가져오더니 기다란 빵의 한쪽 귀퉁이를 잘라주었다. 아니라고 입으로는 사양을 하면서도 어느새 내 손은 빵을 받아 쥐고 있었다. 조금씩 아껴 먹었는데도 빵은 금방 없어졌고 할머니는 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금 내 눈길은 자꾸 빵으로 갔고 결국 그녀는 다시 칼을 들어 한 조각을 더 잘라 주었다. 길었던 빵의 길이가 눈에 띄게 줄어버렸다.

 

얼마 후 장에 갔던 할머니가 돌아오셨고 종이 아줌마는 서둘러 일어섰다. 줄어든 빵을 들고 가는 그녀를 보며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동생들 몫의 빵을 빼앗아 먹었으니까. 아마도 그녀는 그날 집에 가서 그 빵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날 맛난 빵들은 다 놓아두고 달랑 식빵만 한 봉지 사들고 나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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