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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무원 생활 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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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야기

2020. 10. 18.

내가 미국에서 공무원이 된 것은 주 정부 교통국의 공무원이었던 어떤 교우 때문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내게 공무원을 하면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나는 그때 낮에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밤에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때마침 불어닥친 불경기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받는 봉급이 며칠씩 늦어지고 있어 미래에 대하여 다소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에는 50개 주가 있고, 주마다 시와 군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공무원직이 있다. 연방 공무원이 되려면 시민권이 있어야 하지만 주 또는 지방정부의 공무원은 영주권자도 가능하다. 나는 그때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 정부 공무원에 지원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 공무원의 경우, 각 부처가 필요에 따라 수시로 시험이 있고, 채용도 수시로 한다. 학력이라고는 한국에서 용산의 미 8군 교육센터를 통해 얻은 미국 고등학교 졸업자격 (GED) 밖에 없던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시험은 말단 사무직이었다. 

 

원서를 내고 도서관에 가서 공무원 시험 책자를 보니 뜻밖에도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필기시험에서 합격하니 구두시험이 (panel interview) 있었다. 이 구두시험 점수로 등급을 받는다. 부서에서 사람이 필요하면 상위 3 등급에 올라 있는 지원자들을 불러 채용 인터뷰를 한다.

 

시험에 합격한 후, 주 정부의 예산 문제로 신규채용이 동결되어 나는 한 번 더 시험을 보고 1년쯤 기다린 후에 주정부의 공무원이 되었다. 처음 채용된 직급은 말단 사무직 (Office Assistant II)이었다.

 

각 직급의 봉급에는 보통 5단계가 있어 채용 후 4년 동안은 매년 봉급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그다음에는 시험을 보아 승진하기 전에는 오래 있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봉급이 올라가는 일은 없다. 2-3 년에 한 번씩 공무원 노조가 정부와 계약을 갱신하며 물가상승률에 따른 봉급 인상에 합의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실제로 2-3년 동안 봉급이 동결되었던 적도 있다.

 

전문직의 경우는 대부분 대학을 졸업해야만 응시가 가능하다. 외국 대학 졸업도 인정해 준다. 고졸학력의 일반 사무직 출신이 전문직으로 승진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때는 그 중간에 수습의 개념인 ‘technician’을 거치면 된다. ‘Technician’ 시험에 응시하려면 대학을 2년 이상 마쳤거나 일반 사무직에서 2년 이상 일을 하면 된다.

   

나도 비슷한 과정으로 전문직인 ‘보험 조정관’ 이 되었다. 대학을 2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하여 ‘technician’ 이 되었고, 2년 후에는 시험을 치러 ‘보험 조정관’ 이 되었다. 그 후 시험을 보아 수퍼바이저, 매니저 (manager I, manager II) 등을 거치며 31년 공무원 생활을 했다. 내가 일했던 주 정부 산재보험기금 (State Fund) 에는 말단 타이피스트로 들어와서 지역사무소장까지 지낸 이들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고시촌에서 몇 달, 몇 년씩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공무원 시험은 기초능력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영어와 기초수학 그리고 상황이나 도표를 읽고 분석하여 답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정도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회계사 같은 시험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에서 회계학 클래스를 2학기 듣고 주 정부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었다. 

 

일단 채용을 하고 실무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시킨다. 승진을 위해서는 실무지식을 확인하는 승진시험에 합격해야만 한다. 오래 다녔다고 해서 승진을 시켜주거나 봉급을 올려주지 않는다.

 

한국도 공무원 시험에 혁신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채용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단지 시험에 붙기 위하여 실무에 필요한 공부를 몇 달, 몇 년씩 한다는 것은 인력과 재원의 낭비다. 경쟁력이 10대 1이라고 할 때, 9명은 앞으로 쓰지도 않을 지식을 배우기 위해 소중한 인생의 몇 달, 몇 년을 소비하는 것이다. 시험을 위해 공부한 지식만으로 실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채용이 되면 실무 연수를 받고 보충교육도 받아야 한다.

 

캘리포니아 주는 부서가 이사를 하거나 통, 폐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원들을 다른 지역으로 임으로 전출하는 일은 없다. 공무원들은 자기가 지원했던 지역에서 계속 일하며 지낼 수 있다.

 

동기나 후배가 상사로 왔다고 해서 불편해하거나 옷을 벗는 일도 없다. 내가 입사할 때 수퍼바이저였던 한 직원은 내가 매니저가 될 때까지 계속 그 자리를 고집하다가 은퇴를 하기도 했으며, 어떤 수퍼바이저는 후에 내 부하직원이 되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직함이나 직급으로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서로 이름을 부른다. 신입사원이나 여직원에게 커피나 간식 신부름을 시키는 일도 없다. 회식문화도 없다. 부서의 예산에는 직원들의 회식비 따위가 들어있지 않다. 마음 내키면 누군가 케잌이나 빵을 구워 오거나 도너츠 따위를 사 와서 나눠 먹는다. 명절을 전후해서 각자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누는 ‘potluck’ 파티를 부서별 또는 파트별로 하는 정도다.

 

회사가 해 주는 화려한 은퇴식 따위도 없다. 동료들이 식당을 예약하고 티켓을 팔아 파티를 해 준다. 이런 파티의 티켓은 $30-40 정도다. 나는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회사의 큰 회의실에서 파티를 해 달라고 했다. 직원들에게 10여 불씩 받고 티켓을 팔아 튀긴 닭, 파스타, 샐러드, 그리고 케잌으로 차린 파티를 해 주었다.

 

평소 친하던 동료 몇 명과 지역사무소장이 인사말을 했고, 내가 짧은 고별인사를 하는 것으로 31년 공무원 생활의 막을 내렸다. 돌이켜 보면 나름 보람 있고 즐거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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