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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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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2020. 6. 26.

대부분의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대 중반쯤의 나는 죽음을 매우 무서워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그동안 맺어왔던 모든 인연과도 끝이 나며, ‘나’라는 존재가 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였다. 죽음을 생각하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죽음은 두렵지 않다. 도리어 내가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난 세상에 혼자만 남게 된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세월이 갈수록 추억을 공유할 친구와 친척이 별로 남아있지 않음을 아쉬워하셨었다.

 

캘리포니아 주가 다섯 번째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주가 되었다. 그동안 불치병의 고통 중에 있던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몰래 또는 다른 주로 옮겨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만 했었다. 이제 불치병으로 인해 기대 생존 기간이 6개월 미만이고, 스스로 약물 복용 여부를 결정할 능력이 있는 환자에 한해, 합법적으로 의사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존엄사의 찬반 논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닌가 싶다.

 

식량난과 자원고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해진 나이가 된 노인이나 병든 사람들에게 안락사를 제공하는 공상과학 소설 속의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아무리 내 몸이고 나의 목숨이라고 하지만 인위적으로 목숨을 끊는 것은 이제껏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에게서 나를 빼앗는 행위이기도 하다.

 

존엄사라는 미명 아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또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증장애, 불치의 병, 또는 고령으로 가족에게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폐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가족 중의 누군가 이들에게 넌지시 존엄사를 제의한다면, 환자의 입장에서는 할 수 없이 존엄사를 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고령의 부모에게 열악한 환경의 양로시설을 보여주며 존엄사가 있음을 암시한다면, 이는 고려장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좌절과 슬픔, 고통 등도 모두 삶의 한 부분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더 성숙해지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생명의 가치를 함부로 정해 중간에 끊어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질 때는 초라하기 마련이다. 어떤 꽃은 시들어 하나둘씩 잎을 떨구며 사라져 가고, 어떤 꽃은 잎을 오므린 채 말라서 떨어진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한송이도 인위적으로 먼저 지는 꽃은 없다. 자연이 주는 과정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다.

 

평소 이런 나의 생각을 흔드는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 오하이에서 루게릭병을 앓던 이가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평소 좋아하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석양을 보며, 친구들이 조잘거리는 소리 속에, 맛난 음식 냄새를 맡으며, 약물을 투여받아 안락사를 했다.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중에 있다면, 과연 나는 이런 멋진 죽음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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