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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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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2020. 8. 4.

베이비붐 세대라면 뜨거운 하얀 밥에 생달걀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비벼먹는 맛을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어려서 자주 먹던 메뉴다. 

 

아마도 내 나이 8-9살 때의 일이 아닌가 싶다. 그 무렵 어머니는 군에서 예편한 아버지와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내 동생은 가정부 누나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었다. 반찬으로는 달걀 프라이가 자주 등장했는데, 그 누나는 노른자위로 밥을 비비고 흰자위는 따로 부쳐 달걀 하나로 두 가지를 만들어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외할머니가 집을 비운 날, 중학생이 된 누나가 가사시간에 배웠다며 달걀 반숙을 해 주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쌀독에 묻어 둔 달걀을 하나 꺼내 왔다. 삶았는데 깨뜨리자 주르륵 달걀 물이 흘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두 번째 달걀은 삶은 후 한쪽 끝에 구멍을 내고 열어보니, 역시 제대로 익지 않았다. 달걀을 3-4개나 망가트린 후에야 겨우 반숙 달걀 하나를 나누어 먹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할머니에게 혼이 났었지 싶다.

 

누나가 수란 뜨는 법을 배운 후에는 그것도 만들어 주었다. 이건 달걀을 국자에 깨어 넣고 끓는 물에 담가 눈으로 보며 만들기 때문에 별 실수는 없었다.

 

누나와 동생이 소풍 가는 날은 김밥과 함께 삶은 달걀을 얻어먹는 날이다. 누군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면 도시락과 함께 삶은 달걀을 넣어 주곤 했다. 요즘도 가끔 기차를 타고 산타바바라에 가곤 하는데, 난 아내에게 꼭 삶은 달걀을 부탁한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까먹는 달걀과 사이다는 특별한 맛이다.  

 

아버지가 양계장을 하셨기 때문에 달걀은 흔하게 먹을 수 있었다. 닭장은 철사로 만들어져 있고 알을 낳으면 아래로 굴러 내려와 쉽게 집을 수 있는 구조다. 알이 밑으로 굴러내려오다 깨지는 수가 있다. 우린 주로 이렇게 깨진 달걀을 먹었다. 어떤 날은 달걀을 한솥 삶아 점심에 밥 대신 먹기도 했다. 그때 달걀 샐러드 레시피를 알았더라면 훨씬 맛난 점심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누나와 동생들이 학교에 가고 난 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먹는 아침상에 등장하던 달걀 요리에는 ‘스크램블 에그’ 가 있었다. 그냥 파만 송송 썰어 넣고 먹기도 했지만, 가끔은 굴이나 조개를 넣고 만들어 먹기도 했다. 해산물이 들어가면 훨씬 더 맛있다.

 

집에는 달걀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었다. 양계장을 처음 시작했을 때 달걀의 무게를 재어 대, 중, 소로 나누어 팔았기 때문이다. 더러는 노른자위가 두 개가 든 쌍알을 낳는 닭도 있었다. 이런 알은 특란이라고 해서 돈을 더 받고 팔았다.

 

가끔은 닭들이 죽기도 해서 국을 끓여 먹었다. 산란을 하던 닭의 뱃속에는 아직 채 껍질이 여물지 않은 알들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주르륵 들어 있었다.

 

요즘 구이집에 가면 뚝배기에 담긴 달걀찜을 주는데, 할머니가 만드시던 것만큼 맛있는 달걀찜은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푼 달걀에 물을 조금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후 냄비에 물을 붓고 준비된 달걀이 든 뚝배기를 넣어 중탕을 하셨다. 맛깔스러운 새우젓으로 간이 된 찐 달걀은 손두부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냈다.

 

라면 하면 달걀이 빠질 수 없다. 달걀을 넣고 젓가락으로 휘 저어 달걀을 풀어 먹는 이들도 많은데, 난 국물이 탁해져 싫다. 달걀을 넣고 그대로 익혀 수란처럼 먹거나 아예 삶은 달걀을 샐러드에 올리듯이 가로로 잘라 얹어서 먹는다.

 

도시락 반찬으로 좋아하는 달걀 요리는 조림이다. 풋고추를 넣은 장조림 간장에 조린 달걀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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