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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 걸린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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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2020. 8. 15.

한 장 남았던 것을 떼고 벽에 달력을 새로 달았다. 난 사진보다는 그림이 들어있는 달력을 좋아한다. 요즘은 달력 인심들이 좋아져 음력과 절기가 들어있고 한국과 미국의 공휴일이 모두 들어있는 미주용 달력을 흔하게 구할 수 있다.

60-70년대 한국에서는 달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조회를 하며 은행거래가 많았던 외할아버지는 연말이 되면 이곳저곳 은행에서 달력을 얻어다가 정초에 인사 오는 일가친척들에게 나누어 주며 생색을 내곤 하셨다. 재미있는 것은 은행 달력을 걸면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미주 한인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시골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사진 아래 12달이 모두 한 장에 들어 있는 달력이 나돌았고, 이발소나 식당에 가면 맥주회사에서 나누어 주는 달력이 있었다. 이런 달력에는 예외 없이 여배우들이 등장했다. 1월에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있었고, 여름이 되면 밀짚모자나 수영복이 등장했다.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은 달력의 역할보다도 변소의 (그 무렵의 화장실은 변소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휴지로 더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다.

동지가 지나고 나면 매일 낮의 길이가 노루 꼬리만큼 늘어난다고 한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차이는 그 정도가 고작인데, 달력으로 보는 차이는 엄청나다. 하루가 지나 해가 바뀌면 달라지는 것이 많다. 이런저런 법이나 규정 등이 달라진다. 금년 같은 경우는 LA의 마켙에서 더 이상 비닐백을 주지 않는다.

 

새 달력을 걸고 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마치 실수로 지고만 바둑이나 화투를 끝내고 새로 한 판 시작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 달력을 앞에 두고는 한두 가지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한다는 것은 희망을 갖는 일이다. 새해 결심으로 어둡고 비관적인 것을 택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한 해 동안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으니 좋다.

회사에서는 1월이 되면 직원들에게 1년 휴가 계획을 제출하게 한다. 같은 날짜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을 사전에 조율하고자 함이다. 

 

사람들은 달력의 특정한 날짜에 의미를 둔다. 영어로 표기해서 11/12/13이 되는 2013년 11월 12일에 각 지역의 시청이나 카운티 사무실에는 이날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아마도 금년에는 12월 13일에 결혼하는 이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2월 14일은 연인들이 사랑을 주고받는  밸런타인데이다. 한국에서는 이날 여자가 남자에게 캔디 등의 선물을 하는 날이다. 반대로 3월 14일은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을 해야 하는 화이트 데이고, 4월 14일은 짝이 없는 솔로들이 모여 짜장면을 먹는다고 해서 블랙 데이다. 3월 3일은 돼지 삼겹살을 먹은 날이고, 11월 11일은 연인들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 날이다.

생일이 음력으로 동짓달인 사람들은 음력이냐 양력이냐에 따라 나이가 한 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윤달에 태어났거나 2월 29일에 태어난 사람은 몇 년에 한 번만 진짜 생일을 찾아 먹을 수 있다. 

달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달력에는 딱 한 번밖에 없는 날이다. 내 평생 두 번 다시 같은 날을 맞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세월이 날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요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월요일에 출근을 하고, 화요일에는 관리직원들의 회의가 있고, 금요일이면 주말의 시작이고, 일요일에는 성당에 가고… 세월이 참 빨리도 지나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로 받은 책상 달력 위에 희망사항을 몇 자 적어 본다. 적어놓고 보니 벌써 반은 이루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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