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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나무 2011. 4. 26. 12:53

하이쿠란?

 

하이쿠는 5-7-5, 열일곱 자로 된 한 줄짜리 정형시이다.

5-7-5-7-7로 된 일본의 전통시, ‘와카’가 중세의 전란기에 지방을 떠돌던 문인들에 의해

5-7-5와 7-7로 나누어져 번갈아 읊는 ‘렌가’의 형태로 발전한다.

렌가는 당시 난세를 살아가는 문인들의 고차원적인 언어유희였다.

상인들의 재력이 성장하는 근세 서민사회로 들어서면서

이 렌가는 단지 유흥의 도구, 말장난 문학으로 변질된다.

하지만 이때 시가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발구(發句) 즉 5-7-5가 차츰 단독으로 읊어지게 되었으며 그 자체로서 완결성이 요구됐다.

이러한 시 형식이 정착되고 거기에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으로 추앙받는 바쇼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하이쿠 형식이 만들어졌다.

바쇼는 한시와 고전에 탐독하고 방랑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실질적으로 그가 말장난에 불과하던 하이쿠에 자연을 노래하고

인생의 의미를 더해 문학의 한 장르로 만들었다.

 

오늘날 하이쿠는 일본이라는 고향을 떠나 전 세계를 무대로 지어지고 읊어진다.

더구나 오직 작가들만이 창작을 독점하는 시문학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서 창작하고 애송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로서 거듭났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하이쿠가 실려 있으며,

뉴욕타임스는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하이쿠를 공모해 매일 싣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에는 하이쿠 관련 서적이 수천 권이며 하이쿠 시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인터넷의 하이쿠 동호회들은 전세계의 하이쿠 열광자들과 서로의 시를 자랑하고

평가받으며 콘테스트를 열기까지 한다.

그들 모두가 문단의 찬사를 받은 시인들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그들은 다들 속해 있는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따라 하이쿠를 창작하고 노래한다.

하이쿠는 이제 문학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활인의 시가 되었다.

누구나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시, 언제나 어디서나 노래되는 시, 하이쿠.

노래되지 않는 시는 더 이상 시가 아니다.

생활 속 깊이 살아 노래되며, 시대와 함께 변화하며 발전하는 시,

그것이 하이쿠이다.

이미 하이쿠는 더 이상 일본의 시가 아니다.

전 세계인이 가장 폭넓게 즐기는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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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너에게도 역시
밤은 길겠지
밤은 무척 외로울 거야

가을이 깊었는데
이 애벌레는
아직도 나비가 못 되었구나

이 숯도 한때는
흰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우리가 기르던 개를 묻은
뜰 한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홍시를 먹으면서
이것도 올해가 마지막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 위에서
아직도 벌레가 노래를 하네

만일 누군가
‘소칸은 어디 있는가?’ 하고 물으면
‘저세상에 볼일이 있어 갔다’고 말해 주게

한밤중에 내리는 서리
허수아비 옷을
빌려 입어야겠네

옷을 갈아입었지만
내 여행길에는
똑같은 이가 따라나섰구나

여름옷으로
거지는
하늘과 땅을 입었다

내 집이 너무 작아서
미안하네, 벼룩씨
하지만 뛰는 연습이라도 하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나비 한 마리
절의 종에 내려앉아
졸고 있다

고요함이여
매미소리가
바위를 뚫는다

나비 한 마리 돌 위에 앉아 졸고 있다
어쩌면 나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

달팽이 얼굴을 자세히 보니
너도
부처를 닮았구나

한 번의 날카로운 울음으로
꿩은 넓은 들판을
다 삼켜 버렸다

 

두 그루의 매화, 얼마나 보기 좋은가
하나는 일찍 피고
하나는 늦게 피고

올해의 첫 매미 울음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나는 떠나고
그대는 남으니
두 번의 가을이 찾아오네



고추 잠자리를 쫓아
넌 어디까지 갔니?
어느 들판을 헤매고 있니? 

(어린 아들의 죽음 뒤에)
겨울비 속에
저 돌부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거미줄에 나비가
죽은 채로 걸려 있다
슬픈 풍경!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시게
나 역시 외로우니
이 가을 저녁

이 무더운 날에
나는 마음을 정했다
승려가 되기로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 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버렸네 

여름옷으로
거지는
하늘과 땅을 입었다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
하지만,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안 청소를 잘 안 하니까

출처 : 허돌과 비비추
글쓴이 : 허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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