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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나무 2011. 5. 30. 16:55

 

내 중학교 친구 민경탁은 한시에 심취하여 특히 당시를 좋아 한답니다. 이 글은 두보의 시를 해설한 것입니다. 우정을 잘 그린 것이라서 소개합니다. 임상환 정하성은 대학 동창들입니다. 서신내용을 아는데 도움이 될것 같아 적습니다.

 

임형.
 
1. 하성이 환영연에 아래인용한 두보글 이글 한번 읽어보세요!
 
2. 최치덕이 이름이 보이는데 용산 중학을 같이 다녀 잘알고
하와이가서 만난는데 이제 본토에 왓나요?
 
그 친구하고는 문자그대로  막상막하로 (1.2 등을 하는데) 지내다 저는 고등학교때 경기로 옮겨버렷지요..
그게 55 년전 일인가 봅니다.
 
3.  연락 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은 제가 쓴게 한국 다녀온후 무슨 글을 하나 남긴다고 꾀어 마추거지요 (이부분은 그의 한시 "촌구 시골강아지"를 언급한것 같음, 다음기회에 옮겨 볼가 합니다.)
.
이게 두보의 증위팔거사라는 시를 내 신세에 비추어 현대판으로 고친겁니다.
 
인간의 마음은 세월이가도 변하지 않으니,..
 
그러다보니 1300 년전 古文體가 돼서 사별햇단 얘기를 "爲鬼" 라고 썻는데
("귀신이됏다".. 이건 현대말로 농담조로 웃기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엄숙한 기도하는  순간에 방귀 뀌는 실수를 할번 한겁니다.
 
상해에있는 도자기 교수 진상규 교수가 고쳐주셧지요..(아마도 자기의 시 촌구를 말하는듯, 그리고 아래 두보의 시 해설은 인터넷에서 옮긴것이라고 사신에서 밝히면서 자신이 해설한 부분도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

 

증위팔처사(贈衛八處士)-두보(杜甫)
위팔처사에게 -두보(杜甫;712-770)
 
 
人生不相見(인생부상견) : 사람살이 서로 만나지 못함은
動如參與商(동여삼여상) : 아침저녁에 따로 떠오르는 참성과 상성 같구나
今夕復何夕(금석복하석) : 오늘 밤은 다시 어떤 밤인가
共此燈燭光(공차등촉광) : 이 등잔 이 촛불을 함께 하였구나
少壯能几時(소장능궤시) : 젊고 장성하였을 때는 공부도 같이 하였는데
鬢發各已蒼(빈발각이창) : 벌써 귀밑머리 허옇게 되었구료

訪舊半爲鬼(방구반위귀) :
옛 친구 찾으면 반이나 죽었고

驚呼熱中腸(경호열중장) : 놀라서 이름 불러보니 간장이 다 찢어지네
焉知二十載(언지이십재) : 어찌 알았으랴, 이십 년 만에
重上君子堂(중상군자당) : 다시 그대의 집을 찾을 줄을
昔別君未婚(석별군미혼) : 옛날 이별할 때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兒女忽成行(아녀홀성항) : 어느새 자식들이 줄을 이었구나.
怡然敬父執(이연경부집) : 반가워 친구의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問我來何方(문아내하방) :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신다.
問答乃未已(문답내미이) : 주고받는 인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驅兒羅酒漿(구아나주장) : 아이 시켜 술과 안주 차려오게 하는구나.
夜雨剪春韭(야우전춘구) : 밤비가 내리는데도 봄 부추 베어오고
新炊間黃粱(신취간황량) : 새로 지은 밥에는 누른 조를 섞었구나
主稱會面難(주칭회면난) : 주인은 나에게 얼굴 보기 어렵다 하며
一擧累十觴(일거누십상) : 한번 술잔에 수십 잔을 마신다
十觴亦不醉(십상역부취) : 열 잔을 마셔도 취하 않으니
感子故意長(감자고의장) : 그대 내 생각이 깊은 줄을 알았도다.
明日隔山岳(명일격산악) : 내일이면 산 넘어 서로 멀리 떨어지리니
世事兩茫茫(세사량망망) : 인간사 우리 두 사람에게는 정말 막막하여라
 
<감상1>-오세주
1,2,3,4 구절을 보자

人生不相見(인생부상견) : 사람살이 서로 만나지 못함은
動如參與商(동여삼여상) : 아침저녁에 따로 떠오르는 참성과 상성 같구나
今夕復何夕(금석복하석) : 오늘 밤은 다시 어떤 밤인가
共此燈燭光(공차등촉광) : 이 등잔 이 촛불을 함께 하였구나
 
산문적 의미는
“사람(人)이 살아있으면서도(生) 서로(相) 만나지(見) 못하나니(不),
그 움직이는(動) 양상이 마치 참성(參)과(參) 상성(商)의 처지와 같구나(如).
그런데 오늘(今) 저녁(夕)은 평일과 또다른(復) 어떠한(何) 의미를 가진 저녁(夕)인가를 생각해보니,
 

바로 이곳(此)은 만나지 못한 친구와 눈앞의 등잔(燈) 불빛(燭光)을 함께(共) 하는 밤이다”이다.
여기서는 작가가 시를 쓴 상황이 설명되어있다.
 
 
사람은 경우에 따라, 서로 보고 싶어 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가까이 이웃해 살고 싶어도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
 
이는 마치 동쪽과 서쪽, 새벽과 저녁에 떠올라 결코 서로 같은 하늘에 보이지 않는 참성과 상성과 같은 처지라는 것이다.
 
서로 정든 사람과 나누어 사는 고통을 두보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정다운 사람끼리 서로 나누어 사는 이러한 아쉬움을, 두보는 인간의 숙명으로 느낀다. 이는 인생에 대한 두보의 엄숙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을 결코 변하지 않는 자연 질서인 천체의 운행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어떤 날인가 말이다.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그 인간의 숙명의 고통을 겪고 있다가, 이제야 친구와 등잔의 촛불을 마주보고 있는 정다운 저녁인 것이다
.
 
5,6,7,8 구절을 보자

少壯能几時(소장능궤시) : 젊고 장성하였을 때는 공부도 같이 하였는데
鬢發各已蒼(빈발각이창) : 벌써 귀밑머리 허옇게 되었구료
訪舊半爲鬼(방구반위귀) : 옛 친구 찾으면 반이나 죽었고
驚呼熱中腸(경호열중장) : 놀라서 이름 불러보니 간장이 다 찢어지네
 
산문적 의미는
“어리고(少) 한참 젊었을(壯) 때(時)에는 각자의 꿈을 가지고 공부(几)를 같이 했는데(能),
만나보니 모두가 각각(各) 귀밑머리(鬢)가 나서(發) 이미(已) 희끗하게(蒼) 변하였다.
더구나 가까이 있는 옛 친구들(舊)을 찾아보니(訪) 절반이나(半) 귀신(鬼)이 되었다(爲).
그 친구들이 불현듯 그리워져 놀라서(驚) 친구들 이름을 불러보나(呼) 아무 소용이 없어 속마음은(中腸) 서글퍼져 애가 타는구나(熱).”이다.
 
여기서는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친구들이 늙고 병들고 죽은 생황에 당황하고 슬퍼하는 작가의 심경이 표현되고 있다.
 
그저 가족과 구차하게라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실존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다정하고 보고 싶은 친구, 조금만 살림 형편이 나아지면 친구를 만나야지 하다가, 이제야 조금 나아져 친구를 찾았는데 친구는 이미 죽고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금만 빨랐어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만나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못했을까. 무엇이 그렇게 다급하고 중요했기에, 어린 시절 정을 나누던 몇 명 안 되는 소중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던가. 그 친구는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리고 얼마나 아쉬워했을까.
 
참으로 무심하고 못난 자가 바로 나 자신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끊어지는 듯 아프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인 것이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가.
내가 생시에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이, 진정 인간의 운명인가 나의 친구에 대한 인간적 성실의 부족인가.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9,10 구절을 보자

焉知二十載(언지이십재) : 어찌 알았으랴, 이십 년 만에
重上君子堂(중상군자당) : 다시 그대의 집을 찾을 줄을
 
산문적 의미는
“어찌(焉) 알았겠는가(知), 이십(二十) 년(載)이 되어서야
다시(重) 그대(君子)를 만나 그대의 집(堂)을 찾아오게 (上)되다니 정말 감격스럽고 다행하다.”이다.
여기서는
하나의 장면 전환이 일어난다.
앞에서 소개한 일반론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20년 만에 만나게 되는 친구의 일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야기의 소재를 자신과 자신의 친구의 일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11-18 구절을 보자

昔別君未婚(석별군미혼) : 옛날 이별할 때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兒女忽成行(아녀홀성항) : 어느새 자식들이 줄을 이었구나.
怡然敬父執(이연경부집) : 반가워 친구의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問我來何方(문아내하방) :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신다.
問答乃未已(문답내미이) : 주고받는 인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驅兒羅酒漿(구아나주장) : 아이 시켜 술과 안주 차려오게 하는구나.
夜雨剪春韭(야우전춘구) : 밤비가 내리는데도 봄 부추 베어오고
新炊間黃粱(신취간황량) : 새로 지은 밥에는 누른 조를 섞었구나
 
산문적 의미는

“지난날(昔) 이별할 때(別), 그대(君)는 아직 결혼도(婚) 하지 않았다(未).
그런데 아들(兒)과 딸(女)이 벌써(忽) 여러 형제(行)가 되었구나(行).
존경하는(敬) 친구의 아버지(父)는 기뻐하시면서(怡然) 나의 손을 잡으시며(執), 나(我)에게 어디서(何方) 왔느냐고 물으신다(問).
주고받는(問答) 인사가 채 끝나지도(已) 않았는데(未) 아이(兒)를 시켜(驅) 술(酒)과 안주(漿)를 차려(羅)오게 하는구나.

밤비(夜雨)에도 봄부추(春韭)를 베어(剪)오고 누른(黃) 조(粱)를 섞어서(間) 새로(新) 밥을 짓는구나(炊).”이다.
 
여기서는
새로 만난 친구에게 일어난 가족의 변화와 그 가족들이 모두 자신을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하였다.
20년전 친구와 헤어졌을 때는 미혼인 친구에게 여러 자식들이 생겼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지는 위치가 되어있었다.
평소에 존경하였던 친구의 아버지는 기뻐하는 얼굴로 나의 손을 잡아주시며, 지금은 어디 살고 있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며 지극한 관심을 보여주신다.
나를 대접하기 위해 아이들을 시켜 술상을 차려오게 하시고, 비 내리는 밤인데도 봄부추를 베어오게 하고 누런 조를 섞어 새로 밥을 지어주신다.
이렇게 친구의 가족은 극진히 나를 대접하고 반겨주는 것이다.
 
19-22 구절을 보자

主稱會面難(주칭회면난) : 주인은 나에게 얼굴 보기 어렵다 하며
一擧累十觴(일거누십상) : 한번 술잔에 수십 잔을 마신다
十觴亦不醉(십상역부취) : 열 잔을 마셔도 취하 않으니
感子故意長(감자고의장) : 그대 내 생각이 깊은 줄을 알았도다
 
산문적 의미는

“주인(主)인 친구는 나에게 얼굴보기(會面) 어렵다(難)고 질책하는 듯이 말하며(稱)
한번(一) 마심(擧)에 수(累) 십(十) 잔(觴)이나 마신다.
열(十) 잔(觴)을 다 마셔도 또한(亦) 취하지(醉) 않으니(不)
그대(子)가 예(故)부터 날 생각하는 마음(意)이 오래되었음(長)을 느꼈도다(感) ”이다
.
여기서는
친구의 작자에 대한 정회가 드러난다.
친구는 말한다. 정말 자네는 그동안 나를 찾아올 기회가 그렇게 없었던가. 무엇이 그렇게 빠빴단 말인가. 너무 무정한 사람 아닌가.
그렇게도 많은 세월이 지나고,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야 나타난단 말인가. 이렇게도 늙어버린 뒤에야 나타난단 말인가.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 아닌가.
친구인 주인은 너무나 아쉬워 연거푸 술을 마신다. 한 번 잔을 들면 열 잔씩 마셔버린다.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시고서도 술이 취하지 않는다.
아쉽고 원망스럽지만 이렇게 어렵게 만난 친구를 버려두고서 취할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친구의 이러한 말에서 친구가 헤어져 있는 동안 한번도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았음을 느낀다. 뼈저리게 느끼고 감격해버리고 말았다. 참 내가 친구를 잊고 있었구나. 무심하고 못난 인간이 바로 나자신이였구나 라고 참회하고 있다.
 
23,24 구절을 보자
明日隔山岳(명일격산악) : 내일이면 산 넘어 서로 멀리 떨어지리니
世事兩茫茫(세사량망망) : 인간사 우리 두 사람에게는 정말 막막하여라
 
산문적 의미는
“내일(明日)면 우리는 헤어져 다시 산(山岳) 넘어(隔), 먼 곳으로 떨어져 살게 된다. 세상일(世事)에는 두 사람(兩) 모두가 서툴러서 앞으로의 일도 망망(茫茫)하기만 하구나.”이다.
 
여기서는
작자가 이 시에서 표현하는 주제인 속마음이 드러난다.
이십년 만에 어렵게 만난 친구와 내일이면 또 헤어져 산 넘어 멀리 떠난다. 결코 쉽게 만나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떨어져 살아야 한다.
아무래도 이 세상살이에는 그대와 나 모두가 서투른가 보다. 너무나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삶을 살았다. 그것이 우리가 이제야 만나는 이유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 지나간 이야기다.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러나 또 하나의 확실한 사실은, 이러한 우리의 삶의 태도가 바뀔 가능성도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우리 두 사람의 세상살이는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저 망망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시는 <그리워하면서도 가까이 살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적 세상살이, 그리고 시인으로서 서투른 세상살이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2003. 7. 2

 

출처 : John의 블로그
글쓴이 : Joh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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