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유대교

    배나무고개(梨峴) 2020. 5. 13. 05:00

    남(南)유대 왕국의 역사 (3부) : 요담(Jotham), 아하스(Ahaz),         

     

     

     

    ()유대 왕국(Kingdom of Judah) 역대왕(歷代王)

     

    통치

    연대(B.C.)

    특기 사항

    관련 성경구절

    11

    요담(Jotham)/요탐(Yotam)

    750-731

    1) 그의 아버지 웃시야/우찌아(Uzziah) 함께 11(BC 750~BC 739)동안 공동섭정(共同攝政, co-regent)하다가, BC 738년부터 BC 735년까지 4년간 단독 통치(單獨統治, sole reign) 했고, BC 735년에 -앗시리아파(pro-Assyrian faction) 그의 아들 아하스/아하즈(Ahaz) 의해서 퇴위(退位, abdication)당했고 BC 731년에 사망함.

    2) 야훼(Yahweh) () 보기에 올바르게 행동으나 산당(山堂, high place) 제거하지 못함.

    3) 암몬(Ammon) 정복.

    왕하 15:32-33

    12

    아하스/아하즈(Ahaz)

    735-716

    1) BC 735년에 -앗시리아파(pro-Assyrian faction) 아하스/아하즈(Ahaz) 그의 아버지 요담(Jotham)/요탐(Yotam)퇴위(退位, abdication)시키고 () 되어 공동통치(共同統治, co-regent) .

    2) BC 732년부터 단독통치(單獨統治, sole reign) 하다, 마지막 12년동안 그의 아들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 공동통치(共同統治, co-regent) 하다가  BC 716년에 끝남.

    3) 자기 아들들(sons) 번제물(燔祭物, burnt offering) 바치는 등의 몰렉(Molech) 숭배가 심했답니다

    왕하 16;

    대하 28

     

     

    11. 요담(Jotham)/요탐(Yotam)<()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1대 왕()>

    요담(Jotham)/요탐(Yotam)<남(南)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1대 왕(王)>

     

    요담(Jotham)/요탐(Yotam)은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1대 왕(, 재위 BC 750~BC 731)으로, 사독(Zadok)의 딸 여루사(Jerusha)와 웃시야/우찌아(Uzziah)<()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0대 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랍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25세에 재위(reign)하여 16년 동안 다스렸답니다<열왕기하(2Kings) 1533; 역대하(2Chronicles) 271>.


    에드윈 R. (Edwin R. Thiele, 1895~1986)<중국(China)에서 활동했던 미국의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선교사(American Seventh-day Adventist missionary)이자 편집자(editor), 고고학자(archaeologist), 저술가(writer)였답니다>은 요담(Jotham)/요탐(Yotam)이 재위(reign) 시작부터 11(기원전 750~기원전 739) 동안 그의 아버지 웃시야/우찌아(Uzziah)와 함께 지속된 공동 통치(共同統治, co-regency)를 했다고 결론지었답니다.


    그의 아버지 웃시야/우찌아(Uzziah)가 향을 피우기(burn incense) 위해 야훼(Yahweh) ()의 성전(聖殿, Temple)에 들어간 후 대제사장(High Priest)과 분향(焚香, burning of incense)에 관한 문제로 서로 다투다가 화(rage)를 내자 나병(leprosy)에 걸려 시달렸기 때문에, 요담(Jotham)/요탐(Yotam)은 당시 궁전과 국토(palace and land)의 총독(governor), 즉 공동섭정자(共同攝政者, co-regent)가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나병 환자(lepe)로서 별채(separate house)에서 살았답니다.


    윌리엄 F. 올브라이트(William F. Albright, 1891~1971)<칠레(Chile)태생의 미국(America)의 고고학자(archaeologist)이자 성경학자(biblical scholar), 문헌학자(philologist)이랍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의 통치기간을 기원전 742년부터 735년까지로 정했답니다.


    반면에 에드윈 R. (Edwin R. Thiele, 1895~1986)은 요담(Jotham)/요탐(Yotam)의 통치기간을 기원전 751/750년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740/39년부터 736/735년까지로 정했답니다.  또 요담(Jotham)/요탐(Yotam)은 그의 아버지 웃시야/우찌아(Uzziah)와 함께 기원전 751/750년부터 공동섭정(共同攝政, co-regent)을 시작하다가, 기원전 740/739년부터 736/735년까지 4년간 요담(Jotham)/요탐(Yotam)이 단독 통치(單獨統治, sole reign)를 하였다고 주장한답니다. 기원전 736/735년 그 당시 친-앗시리아파(pro-Assyrian faction)인 그의 아들 아하스/아하즈(Ahaz)에 의해서 요담(Jotham)/요탐(Yotam)은 통치자의 권좌(power of a ruler)에서 퇴위(退位, abdication)당했고, 기원전 732/731년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주장 한답니다.


    마태복음서(Gospel of Matthew)는 유다(Judah)의 요담(Jotham)/요탐(Yotam)을 예수의 계보(genealogy of Jesus)에 열거하고 있답니다. 고고학자(archeologist) 넬슨 글렉(Nelson Glueck)은 에일랏(Eilat) 근처에서 요담(Jotham)/요탐(Yotam) ()의 각인(imprint)을 발견했답니다. 또한 에일랏(Eilat)<이스라엘(Israel) 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이자 휴양지이랍니다> 근처에는 "야탐 와디(Yatam wadi) "라고 불리는 와디(wadi)<건조지역(乾燥地域)에서 호우(豪雨, heavy rainfall) 시에만 발달하는 일시적인 하천(河川)이랍니다>가 있답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의 통치(Reign)

    요담(Jotham)/요탐(Yotam)은 강력한 정부를 물려받았고, 잘 관리되고 있었고, 자기 아버지 웃시야/우찌아(Uzziah)가 한 대로 야훼(Yahweh) ()이 보기에 올바르게 행동했답니다<열왕기하(2Kings) 1534>


    그러나 요담(Jotham)/요탐(Yotam)은 산당(山堂, high place: 산꼭대기의 예배소)들을 없애지는 않았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여전히 여러 산당(山堂)에서 제사(祭祀)와 분향(焚香)을 했답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은 예루살렘 성전(Temple of Jerusalem)) 윗문(Upper Gate)<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는 문 중 하나로, 성전의 북쪽 면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대하 23:20; 9:2). 웃시야/우찌아(Uzziah) (왕하 15:35), 또는 요담(Jotham)/요탐(Yotam) (대하 27:3)이 설치한 것으로 보인답니다. ‘베냐민 문(Benjamin Gate)’과 동일한 문이이랍다( 20:2)>을 건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답니다<열왕기하(2Kings) 1535>. 요담(Jotham)/요탐(Yotam) ()은 유다 산(mountains of Judah)에 도시(cities)를 세우고, (forests)에는 성(castles)과 탑(towers)을 쌓았답니다.

    () :

    예루살렘 성전(Temple of Jerusalem)

    예루살렘(Jerusalem) 구시가지(Old City) 있는 템플 마운트(Temple Mount)<남쪽 노출(south exposure)>

     

    예루살렘 성전(Temple of Jerusalem)은 성서시대의 예루살렘(Jerusalem) 에는 같은 장소에 세 곳의 성전이 있었답니다.

     

    1성전은 솔로몬(Solomon) ()이 세운 솔로몬 성전(Temple of Solomon)이랍니다. 이것은 BC 587년경 신-바빌로니아(Neo-Babylonia)의 제2대 왕() 네브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2(Nebuchadnezzar II, 재위 BC 604~BC 562)에 의해 파괴되었답니다.

     

    2성전은 유대인(Judea)들이 바빌로니아 포로(Babylonian captivity, BC 586~BC 538) 상태에서 귀환하여, 스룹바벨(Zerubbabel)<유다(Judah)의 제19대 왕() 예호아킨(Jehoiachin, 재위 BC 598)의 손자로 유다 왕위 계승자였답니다>의 지휘로 파괴된 솔로몬 성전(Temple of Solomon)을 재건축한 스룹바벨 성전(Temple of Zerubbabel)이랍니다. 이 성전은 로마(Roma)의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 BC 106~BC 48)<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장군 ·정치가이며. 로마 공화정에 대항해 노예 항쟁을 이끌었던 노예 검투사 영웅 스파르타쿠스(Spartacus)의 반란(反亂)을 진압하여 신망을 얻고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BC 44),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BC 115년 경~BC 53)와 함께 삼두 정치(三頭政治, triarchy)를 하였다. 후에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와 대립하였으나 패하여 망명 중에 암살(暗殺)되었답니다>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답니다.

     

    3성전은 유대(Judah)의 마지막 왕조의 창시자(創始者)인 헤로데/헤롯(Herodes, Herod, BC 73년경~AD 4) ()이 폐허가 된 스룹바벨 성전(Temple of Zerubbabel) 터 위에 세운 헤롯 성전(Temple of Herod)인데, 이것은 70년 로마군(Roma)이 파괴(破壞)하였답니다. 현재의통곡(痛哭)의 벽()’은 이 제3성전 서쪽 벽의 남은 잔해(殘骸)에 해당한답니다.


    열왕기하(2Kings) 15 37절』에서는, “요담(Jotham)/요탐(Yotam) ()의 재위(在位) 시절에, 야훼(Yahweh) ()이 아람(Aram) () 르신(Rezin)과 르말랴(Remaliah)의 아들 베가(Pekah)<()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8대 왕()>를 보내 남()유대 왕국(Ingdom of Judah)을 공격하게 하였다<열왕기하(2Kings) 15 37>”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 ()은 또한 암몬(Ammon) 자손들을 물리쳤고, 암몬(Ammon) 자손은 요담(Jotham)/요탐(Yotam) ()에게 매년 막대한 공물(貢物, tribute)을 바쳤답니다. 그러나 북부 왕국(northern kingdom)의 증가하는 부패(腐敗, corruption)가 남()유대 왕국(Ingdom of Judah)에 스며들기 시작했답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 ()은 예언자(prophets)들 이사야(Isaiah), 호세아(Hosea), 아모스(Amos), 미가(Micah)와 동시대 사람으로, 그들의 충고(advice)에 의해 혜택(benefit)을 받았답니다.


     

    성서 연대기(Biblical Chronology)의 쟁점(爭點, Issues)

     

    웃시야/우찌아(Uzziah), 요담(Jotham)/요담(Yotam), 아하스/아하즈(Ahaz)<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년~1564년)의 작품.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 루네트(lunette), 바티칸 시(Vatican City)>. 전통적으로 요담(Jotham)/요담(Yotam)은 왼쪽(left)의 녹색 옷을 입은 남자고 그와 함께 있는 아이는 그의 아들 아하스/아하즈(Ahaz)이랍니다.

     

    1) 역사 대조연표(歷史對照年表, synchronisms)의 대단히 복잡함(profuse and perplexing)

    기원전 8세기 두 이스라엘 왕국(two Israelite kingdoms)<()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과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성서 연대기(Biblical chronology) 는 무엇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복잡(profuse and perplexing)하게 한답니다.


    재위 기간 중 일부(Some of the reign lengths)에 있어서, 역사 대조연표(歷史對照年表, synchronisms)는 단독 통치(sole reign)의 시작부터 주어지거나, 또는 어떤 것들은 공동통치(共同統治, co-regency)의 시작으로부터 주어진답니다. 베가(Pekah)<()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8대 왕()>의 역사 대조연표(歷史對照年表) 경우, 라이벌 통치(rival reign)의 시작부터 주어지는 것이랍니다 


    에드윈 R. (Edwin R. Thiele, 1895~1986)<중국(China)에서 활동했던 미국의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선교사(American Seventh-day Adventist missionary)이자 편집자(editor), 고고학자(archaeologist), 저술가(writer)였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이해하는 열쇠는 남북(南北)이스라엘 왕국(two Israelite kingdoms)’이 직면하고 있는 앗시리아 제국(Assyria empire)의 증가하는 위협(growing threat)에 대한 적절한 인식(proper appreciation)에 있다고 주장했답니다.


    기원전 754년 앗리아 왕(King of Assyriaa) 아슈르-니라리 5(Ashur-nirari V, 재위 기원전 755~745)는 아람(Aram) 북부 아르파드(Arpad))에 대항하여 앗시리아인(Assyrians) 들을 이끌었답니다.

    () :

    아르파드(Arpad)는 현재의 시리아(Syria) 북서부에 존재했던 고대 도시(古代都市)이랍니다. 현재의 알레포(Aleppo)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텔리파트(Tell Rifaat)에 있었답니다.

    기원전 9세기 아람인(Aram)들에 의해 형성되었답니다. 기원전 743년 앗리아 왕(King of Assyriaa)이었던 티글라트-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 재위 BC 746∼BC 727)가 우라르투 국(Urartu)를 정복(征服)을 때 아르파드(Arpad) 3년 동안에 걸친 포위전(包圍戰, siege warfare)을 치렀답니다. 기원전 740년에 아르파드(Arpad)를 함락시킨 티글라트-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는 아르파드(Arpad)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학살(虐殺)하고 아르파드(Arpad) 시가지를 파괴했답니다. 구약성서 열왕기(18:34, 19:13), 이사야서(10:9, 36:19, 37:13), 예레미야서(49:23)에서도 아르파드(Arpad)가 등장한답니다.


    그의 후계자 티글라스-필세르 3(Tiglath-Pileser III, 재위 BC 746∼BC 727)는 기원전 743년에서 740년까지 우라르투 국(Urartu)<BC 9세기∼BC 6세기경 아르메니아공화국과 터키 동부를 지배한 고대 왕국. 아라라트(Ararat)라고도 한답니다>와 전쟁(戰爭)을 벌여 3년 만에 도시를 점령했답니다. 이 위협에 직면하여 아람(Aram) 다마스쿠스(Damascus)의 왕() 레신(Rezin, 재위 BC 740~BC 732)은 베가(Pekah, 재위 BC 740~BC 732)<()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8대 왕()>와 동맹(同盟)을 맺었고, 따라서 두 사람은 친()아시리아(pro-Asyria) 아하스/아하즈(Ahaz, 재위 BC 735~BC 716)<()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대 왕()>의 적()이었답니다<이사야(Isaiah) 71>.


    한편 사마리아(Samaria)에서 통치하고 있는 메나헴(Menahem)<()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6대 왕()>은 반()앗시리아(anti-Assyria) 경쟁자인 베가(Pekah)<()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8대 왕()>에 대항하여 "왕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strengthen his hold on the kingdom)" 앗시리아 왕(king of Assyria)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 재위 BC 745~BC 727년경)<성경(Bile)에서는 불(Pul)이라고 함>에게 조공(朝貢, tribute)을 보냈답니다<열왕기하(2Kings) 15 19>.


    2) 성경(Bible)의 역사 대조연표(歷史對照年表, synchronisms) 오류(誤謬, Error)

    에드윈 R. (Edwin R. Thiele, 1895~1986)에 따르면, 당시의 연대기적 자료(chronological data)가 기록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은 북()이스라엘(Israel) 과 남()유다(Judah) 양국에 강력한 친()앗시리아파(pro-Assyrian factions)와 반()앗시리아파(anti-Assyrian factions)의 존재라고 한답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이 남()유다(Judah)의 제11대 왕(, 재위 BC 750~BC 731)으로 그의 통치를 시작하였을 때에, 그의 통치는 메나헴(Menahem, 재위 BC 752~BC 742)<()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6대 왕()>의 통치가 아니라, 베가(Pekah, 재위 BC 740~BC 732)<()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8대 왕()>의 통치(reign)와 일치하였답니다. 이것은 메나헴(Menahem)보다는 베가(Pekah)의 유대관계(ties of bond)를 맺는 것을 지적하며, 앗시리아(Assyria)의 위협(threat)에 대한 공통의 저항(common resistance against)이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답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11(기원전 750~기원전 739)동안 그의 아버지 웃시야/우찌아(Uzziah)와 공동섭정(共同攝政, co-regent)하다가, 4(기원전 738년부터 기원전 735) 동안 단독 통치(單獨統治, sole reign)를 했고, 기원전 735년에 친-앗시리아파(pro-Assyrian faction)인 그의 아들 아하스/아하즈(Ahaz)에 의해서 퇴위(退位, abdication)당했답니다.


    BC 739/BC 738년 요담(Jotham)/요탐(Yotam)의 즉위 시기(period of ascension to the throne)가 베가(Pekah) 시대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당시 베가(Pekah)가 왕()으로 군림(ruling)하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한답니다.


    그리고 BC 736/ BC 735년에 아하스/아하즈(Ahaz, 재위 BC 735~BC 716)<()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대 왕()>가 즉위(reign)한 것이 BC 736/BC 735년에 시작된 베가(Pekah)의 통치(reign)와 마찬가지로 일치한다는 사실은 베가(Pekah)가 그의 통치를 시작한 것이 그 당시였다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한답니다.


    성경(성경, Bible) 열왕기하(2Kings) 1532절』의 이야기, "이스라엘 왕(king of Israel) 르말랴(Remaliah)의 아들 베가(Pekah) 2년에 유다 왕(king of Judah) 웃시야(Uzziah)의 아들 요담(Jotham)이 다스리기 시작했답니다"<열왕기하(2Kings) 15 32>. 열왕기하(2Kings) 161절』의 이야기, "르말랴(Remaliah)의 아들 베가(Pekah) 12년에 유다 왕king of Judah 요담(Jotham)의 아들 아하스(Ahaz)가 다스리기 시작했답니다"<열왕기하(2Kings) 16 1>.

     


    에드윈 R. (Edwin R. Thiele, 1895~1986)는 성경(성경, Bible) 열왕기하(2Kings) 15 32절』와 『열왕기하(2Kings) 16 1절』의 역사 대조연표(歷史對照年表, synchronisms)에서 『열왕기하(2Kings) 16 1절』의 오류(誤謬, Error)는 인위적인 것도 아니다(not artificial)라고 합니다. 그 시대의 역사적 세부사항(historical details)들을 이해하지 못한(unacquainted) 『열왕기하(列王記下 Second Books of Kings) 16 1절』의 어떤 작가(writer)도 그러한 오류(誤謬, Error)들을 만들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3) ()유다 왕국(kingdom of Judah)의 리더십(leadership)의 변화

    앗시리아(Assyria)의 압력(pressure)을 점점 크게 받는 북()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쪽에서는 적(enemy)과 타협(accommodation)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강화되면서, ()유다 왕국(kingdom of Judah)에서는 다음과 같은 리더십(leadership)의 변화가 일어났답니다.


    BC 736년과 BC 735년에 앗리아 왕(King of Assyriaa) 티글라스-필세르 3(Tiglath-Pileser III, 재위 BC 746∼BC 727)는 다시 북서쪽 날 산(Mount Nal)과 우라르투 국(Urartu)) 지역에 있었답니다. ()유다 왕국(kingdom of Judah)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항복(降伏)하거나 압살(壓殺)당할 때가 왔다고 생각할 것이랍니다. 735년에 친()앗시리아 집단(pro-Asyrian group)이 요담(Jotham)/요탐(Yotam)<()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1대 왕()>에게 은퇴(retirement)를 강요하고 아하스/아하즈(Ahaz, 재위 BC 735~BC 716)<()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대 왕()>를 왕위(throne)에 앉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완전히 있답니다. 요담(Jotham)/요탐(Yotam)은 그의 재위 20(BC 750~BC 731))<열왕기하(2Kings) 1530>BC 732/ BC 731년까지 계속 살았지만, BC 735년부터 통치(rule)한 사람은 아하스/아하즈(Ahaz)였답니다.

    () :

    요담(Jotham)/요탐(Yotam)의 재위 20(BC 750~BC 731) 동안은, 그의 아버지 웃시야/우찌아(Uzziah)와 함께 11(기원전 750~기원전 739)동안 공동섭정(共同攝政, co-regent)하다가, 기원전 738년부터 기원전 735년까지 4년간 단독 통치(單獨統治, sole reign)를 했고, 기원전 735년에 친-앗시리아파(pro-Assyrian faction)인 그의 아들 아하스/아하즈(Ahaz)에 의해서 퇴위(退位, abdication)당했고 기원전 731년에 사망했답니다.


    따라서 에드윈 R. (Edwin R. Thiele, 1895~1986)은 역사적 배경(historical background)을 고려하여 이 시기에 대한 연대기 자료의 복잡성(complexity of the chronological data)을 설명했답니다. 그 후 그는 성서 문헌(Biblical texts)에서 구성될 수 있는 남()유다(Judah)와 북()이스라엘(Israel)에 대한 성년기(regnal years)가 이 시기 동안 아시리아 왕(Assyrian kings)들의 알려진 움직임에 들어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12. 아하스/아하즈(Ahaz)<()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 ()>

    아하스/아하즈(Ahaz)<남(南)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 왕(王)>

     

    아하스/아하즈(Ahaz)는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 (, 재위 BC 735~BC 716)으로, 요담(Jotham)/요탐(Yotam)<()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1대 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20세에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Jerusalem)에서 16년 동안 다스렸는데, 사악(邪惡)한 왕()<evil king>으로 묘사된답니다<열왕기하(Kings) 16 2>.


    에드윈 R. (Edwin R. Thiele, 1895~1986)<중국(China)에서 활동했던 미국의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선교사(American Seventh-day Adventist missionary)이자 편집자(editor), 고고학자(archaeologist), 저술가(writer)였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가 기원전 736/735년부터 요담(Jotham)/요탐(Yotam)<()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1대 왕()>과 공동통치(共同統治, co-regent)를 하였으며, 그의 단독통치(單獨統治, sole reign)는 기원전 732/731년에 시작되어 기원전 716/715년에 끝났다고 결론지었답니다.

     

    윌리엄 F. 올브라이트(William F. Albright, 1891~1971)<칠레(Chile)태생의 미국(America)의 고고학자(archaeologist)이자 성경학자(biblical scholar), 문헌학자(philologist)이랍니다> 아하스/아하즈(Ahaz)가 기원전 744~기원전 728년까지 통치했답니다.

    마태복음서(Gospel of Matthew)는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아하스/아하즈(Ahaz)를 예수의 계보(genealogy of Jesus)에 열거하고 있답니다. 이사야(Isaiah) 14 28절』에도 언급되어 있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의 통치(Reign)

    아하스/아하즈(Ahaz)의 치세(reign)는 북() 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8대 왕() 17, 20세에 왕위(throne)에 올라 예루살렘(Jerusalem)에서 16년 동안 다스렸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의 치세(reign)는 그의 조상 다윗(David)과는 달리 그의 야훼(Yahweh) ()이 보기에 올바른 일을 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왕()들의 길을 그대로 떠라 바알(Baal) 숭배(worshiping)를 위한 신상(神像, idols)들을 주조(鑄造, cast)하여, 야훼(Yahweh) ()이 이스라엘(Israel) 자손들 앞에서 쫓아냈던 민족(people)들의 혐오스러운 방법(detestable ways)을 본받아, 벤힌놈 골짜기(Valley of Ben Hinnom)에서 자기 아들(son)을 인간번제물(人間燔祭物, human burnt offering)<살아있는 사람을 통째로 불(fire)에 태워(burn) ()에게 바치는 의식용(儀式用) 제물(祭物)>로 바쳤고, 또 산꼭대기(hilltops)와 푸른 나무(spreading tree)<고대(古代)에는 대개 수령(樹齡)이 오래된 고목(古木)들이 신성시(神聖視)되어 우상 숭배(idol worship, idolatry)의 장소로 이용되었답니다. 특히 가나안(Canaan)에서는 이곳에서 우상 제의(idol sacrificial rites)와 함께 음란한 의식(lustful ceremony)들이 행해져 매우 가증스런 처소(abominable place)로 간주되고 경계와 심판의 대상이 되었답니다( 12:2; 왕상 14:23; 왕하 16:4; 대하 28:4; 57:5; 2:20; 6:13)> 아래의 산당(山堂, high place)에서 제사(祭祀, offer sacrifices)하고 분향(焚香, burn incense)했답니다<열왕기하(2Kings) 16 1~4, 역대하(2Chronicles) 28 1~4>.

     

     ()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멸망(Destruction)

    ()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 () 아하스/아하즈(Ahaz)는 즉위(accession)하자마자, 베가(Pekah)<() 이스라엘 왕국의 18대 왕()>는 아람(Aram)<오늘날 시리아(Syria)>의 마지막 왕(king) 르신(Rezin, 재위 BC 750~BC 732)과 동맹(ally)을 맺고 ()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예루살렘(Jerusalem)을 위협하였답니다.


    그러한 연맹(league)의 주된 이유는 아마도 기원전 738년 므나헴(Menahem)<() 이스라엘 왕국의 16대왕>을 많은 공물(large tribute)을 바치도록 강요한 앗시리아(Assyria)의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 재위 BC 745~BC 727)의 또 다른 침략(another incursion)으로부터 각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랍니다.


    아람(Aram)과 북()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의 두 왕은 군대를 통합하여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대 왕() 아하스(Ahaz)를 강제로 합류시켜 앗시리아(Assyria)를 상대로 그와 함께 싸우도록 강요하고 싶었답니다.

     

    ()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과 아람(Aram)<시리아(Syria)>의 연합군(united forces)이 예루살렘 성벽(walls of Jerusalem) 앞에 나타나 남()유다왕국(Kingdom of Judah)에게 항복(surrender)을 요구했답니다.

     

     예언자(prophet) 오드(Oed)는 유대인 포로들과 함께 귀환하는 이스라엘 군대를 만나 이스라엘인들에게 포로들을 풀어줄 것을 권한다.<1887  Publiek domein>

     

    베가(Pekah)가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을 습격하여, 수많은 포로(captives)들을 사마리아(Samaria)로 끌고 갔답니다. 그러나 베가(Pekah)는 예언자(prophet) 오드(Oded)<()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의 사마리아(Samaria)에서 활동했던 선지자(先知者)로서, 유다(Judah) () 아하스(Ahaz) 시대 유다(Judah) 병사 12만을 살해하고 20만 명의 유다(Judah) 백성을 사로잡아 온 북()이스라엘(Israel) () 베가(Pekah)를 꾸짖어 그 포로(captives)들을 후대(厚待, hospitable treatment)한 후 고향(故鄕)으로 돌려보낸 의로운 일을 했답니다.(역대하(2Chronicles) 289~15)>등 일부 저명한 사람(prominent men)들에게서 꾸중(rebuk)을 듣고 난 후, 사마리아(Samaria)로 끌고 왔던 수많은 포로(captives)들을 을 풀어 주고, 또 그들을 고향(故鄕)으로 돌려보냈답니다.

     

    예언자(Prophet) 이사야(Isaiah)<세르비아(Serbia) 스터데니차 수도원(Studenica Monastery)프레스코화(fresco), 1618년

     

    이 때 이 때에 예언자(prophet) 이사야(Isaiah)<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prophet)로서 유다 왕국(Kingdom of Judah) 왕실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 특히 대외 관계 정책에 언권(言權)을 발휘했답니다. 아사랴(Azariah)/또는 웃시야(Uzziah) 왕이 죽는 해(기원전 739년경)에 예언임무(豫言任務)를 받고(이사야(Isaiah) 6 1), 기원전 701년 앗시리아(Assyria)가 유다(Judah를 침공할 때까지 예언했답니다. 유다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4대 왕() 므낫세(Manasseh)의 통치하에서(기원전 690~기원전640) 순교(殉敎)했다고 전해진답니다>가 남()유다왕국(Kingdom of Judah)의 아하스/아하즈(Ahaz) ()을 지지하여, 이사야(Isaiah)는 아하스/아하즈(Ahaz)에게 외국의 우방(foreign allies)보다는 야훼(Yahweh) ()을 믿으라고 충고하고, 이것이 참된 예언(true prophecy)이라는 것을 확인할 “표적(標的, sign)을 보여 달라고 야훼(Yahweh) ()께 요구하라고 말한답니다<이사야(Isaiah) 711>.

     

     그러나 아하스/아하즈(Ahaz) ()이 말했답니다. “저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야훼(Yahweh)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이사야(Isaiah) 712>.

    그러자 예언자(prophet) 이사야(Isaiah)가 아하스/아하즈(Ahaz)에게, “다윗 왕실(house of David)의 후손(後孫)인 당신(You)은 이제 들으십시오. 다윗 왕실(house of David)은 사람들을 지치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제 내 하나님 야훼(Yahweh) 마저도 지치게 합니까? 그러므로 야훼(Yahweh)께서 친히 다윗 왕실(house of David)에 표적(標的, sign)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virgin)가 잉태해 아들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Immanuel)이라고 부를 것입니다!<이사야(Isaiah) 713~14>”이라고 대답(對答)했는데, 이는 하나님 야훼(Yahweh)과 함께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나 아하스(Ahaz)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앗시리아(Assyria)의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가 언제든지 요청 등에 즉각 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답니다.

     

    앗시리아(Assyria)의 왕(王)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Tiglath-Pileser III, 재위 BC 745~BC 727)<그의 궁전 벽(walls of his palace)에서 나온 석비( stela),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 런던(London)보관>.

     

    아하스/아하즈(Ahaz) ()이 앗시리아(Assyria)의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답니다. “나는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아들입니다. 아람 왕(king of Aram)과 이스라엘 왕(king of Israel)이 나를 공격하고 있으니 올라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해 주십시오.” 그리고 아하스/아하즈(Ahaz) ()은 야훼(Yahweh)의 성전(temple)과 왕궁 금고(treasuries of the royal palace)에 있던 은과 금(silver and gold)을 가져다가 앗시리아(Assyria)의 왕()에게 선물(gift)로 보냈답니다.

     

    앗시리아(Assyria)의 왕()은 그 말을 듣고 다메섹(Damascus)을 치러 올라가 그 성()을 함락시켰답니다. 앗시리아(Assyria)의 왕()은 다메섹(Damascus) 거주민(inhabitants)들을 포로로 잡아 길(Kir) ()으로 끌고 갔고 아람(Aram)<오늘날 시리아(Syria)>의 다메섹(Damascus) (king) 르신(Rezin, 재위 BC 750~BC 732)를 처형(處刑, executed)했답니다.<열왕기하(2Kings) 16 7~9>.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Tiglath-Pileser III)가 낙타(Camel)를 타고 지휘하는 전투(Battle)를 묘사한 앗시리아(Assyrian) 부조(浮彫, Relief)<대영(大英) 박물관(British Museum) 보관>

     

    앗시리아(Assyria)의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도 북()이스라엘 왕국(Israel王國)을 공격하여 "이욘(Ijon), 아벨 벳마아가(Abel Beth Maacah), 야노아(Janoah), 게데스(Kedesh)와 하솔(Hazor), 납달리(Naphtali) 땅을 모두 포함한 길르앗(Gilead)과 갈릴리(Galilee)"를 공격하여 장악했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Israel)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앗시리아(Assyria)로 끌고 갔답니다<열왕기하(2Kings) 15 29>. 또한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이 행위를 그의 비문(inscriptions) 중 하나에 기록하였답니다.


    곧 이 베가(Pekah)<() 이스라엘 왕국의 18대왕>가 베가(Pekah) 자기 군대(own army) 출신 대위(captain) 호세아(Hoshea)<, 엘라(Elah)의 아들>에게 암살당한 뒤, 호세아(Hoshea)는 베가(Pekah)를 대신하여 왕위(王位)<() 이스라엘 왕국의 19대왕>에 올랐답니다.


    비문(inscriptions)에서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 호세아(Hoshea)가 그의 동료 이스라엘인(his fellow Israelites) 베가(Pekah)를 살해(slaying)한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답니다. 여기서 추론(inference)하는 것은, 아시리아(Assyria)와의 전쟁의 필연적인 결과를 보고, 백성들은 그들의 정복자(conqueror)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에게 굴복했다(yielded submission)는 것이랍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스가랴(Zechariah) 11 16절』에 언급된 "()한 양치기(shepherd) "였다고 추측한답니다.


    앗시리아(Assyria)의 개입(intervention)으로, 그리고 앗시리아(Assyria)의 왕()아람(Aram)<오늘날 시리아(Syria)>의 다메섹 왕국(kingdom of Damascus)과 북()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을 침공(invasion)하고 굴복(subjection)한 결과, ()유다왕국(Kingdom of Judah)의 아하스/아하즈(Ahaz) ()은 골치 아픈 이웃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 후 아하스/아하즈(Ahaz) ()의 보호자(protector) 앗시리아(Assyria)의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가 청구권(請求權, claim right) 주장하여, 아하스/아하즈(Ahaz) ()은 그의 왕국에 대한 앗시리아(Assyria)의 왕()의 지배(支配)를 받게 되었답니다.


    이 침략전쟁(war of invasion) 2(BC 734~BC 732) 동안 지속되었고, 다마섹(Damascus)를 앗시리아(Assyria)와 이스르엘(Jezreel)) 국경 북쪽의 이스라엘(Israel) 영토에 포획하여 합병하는 것으로 끝났답니다.

    () :

    이스르엘 계곡(Jezreel valley)

     

    이스르엘(Jezreel)지중해(地中海 , Mediterranean Sea) 연안에서 팔레스타인(Palestine) 중부를 가로질러 요단 (Jordan river)에 이르는 골짜기(valley)( 19:18; 왕상 21:1). 에스드렐론 평원(平原, plateau)의 동쪽 끝에 위치하며, 평원 서남쪽 끝에는 므깃도 산(Megiddo) 이 있답니다.

     

    물이 많고 비옥한 벌판이 있으며 시리아(Syria) 애굽(Egypt)간의 큰 길에 위치한 잇사갈 지파(Issachar支派) 경내(境內, country)성읍(城邑, city)이랍니다. 나봇(Naboth)포도원(葡萄園, vineyard)이 있었던 곳이며(왕상 21:1), 요람(Joram)<여호람(Jehoram)일고도 함. 북이스라엘의 제9대 왕(재위 BC 852~BC 841) 아합(Ahab)과 이세벨(Jezebel)의 둘째 아들>이세벨(Jezebel)< 시돈(페니키아) 왕 엣바알(바알 제사장)의 딸로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인 아합(Ahab, 재위 BC 874~BC 853)의 아내가 된 자(왕상 16:31). 우상 숭배자이며, 성경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타락한 여인으로 지탄받고 있다(왕상 21:5-16; 왕하 9:22). 아합(Ahab)의 아내가 된 이세벨(Jezebel)은 먼저 남편 아합(Ahab)을 맹신적인 바알(Baal) 숭배자로 만들었고(왕상 16:30-31; 21:25-26), 이스라엘(Israel) 내에 음란하고 부패한 바알(Baal) 숭배를 권장했으며, 수백 명의 바알(Baal)과 아세라(Asherah) 선지자들을 포섭하여 조종했고, 사마리아(Samaria)에 바알(Baal) 제단과 아세라(Asherah) 우상을 세웠답니다(왕상 16:31-33; 18:4, 13, 19)>이 살해당한 곳이기도 하답니다(왕하 9:24-35).

     

    또한 주요 전략(戰略, guidance) 요충지로서 역사를 통해 군사적 충돌이 끊이지 않았답니다( 17:16; 6:33). 도(使徒, apostle) 요한(John)에 의해 세계 최후의 격전장으로 예언(豫言, prophecy)된 ‘아마겟돈(Armageddon)(원어를 번역하면 ‘므깃도 산’) 역시 이 지역을 가리킨답니다( 16:16).


    한편 아하스/아하즈(Ahaz) ()은 앗시리아(Assyria)의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에게 지원부대(auxiliaries)들을 배치했답니다. 앗시리아(Assyria)에 대한 이러한 지원은 예언자(prophet) 이사야(Isaiah)의 엄중한 반대에 부딪혔는데, 이사야(Isaiah)는 아하스/아하즈(Ahaz) ()에게 외부의 원조(outside aid)에 의지하지 말고 주(, Lord) 야훼(Yahweh)께 의지하라고 충고했답니다.


    그러나 아하스/아하즈(Ahaz) (), 그의 전체 통치기간(whole reign) 동안, 앗시리아(Assyria)의 왕()에게 조공(tribute)을 바치고 있었기 때문에 앗시리아(Assyria)의 침략을 받고 당하는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답니다.


    그런 반면에, 이웃 나라 북()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통치자(rulers)들이 앗시리아(Assyria)의 침략을 받고 그들에게 조공(朝貢, tribute)을 바치는 괴롭힘을 당하다가, 그들은 때때로 앗시리아(Assyria)에게 반란(revolt)을 일으켰답니다.


    그리하여 호세아(Hoshea, 재위 BC 732~BC 722) ()<()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의 제19대 왕()>은 이집트(Egypt)(So, the king of Egypt)과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Assyria)에게 조공(朝貢)을 거부하자, 앗시리아(Assyria) () 살만에세르 5(Shalmaneser V, 재위 BC 727~BC 722)의 침략으로 사마리아(Samaria)가 함락되고,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은 완전히 멸망(滅亡)하고 앗시리아 제국(Assyria empire)에 완전히 흡수편입(absorbed)된 것이랍니다.

     

     아하스/아하즈(Ahaz)의 종교 준수(Religious observance)

    아하스/아하즈(Ahaz)는 정치(politics)뿐 아니라 종교(religion)에서도 앗시리아인(Assyrians)들의 화려함(glamour)과 위신(prestige)에 선뜻 굴복했답니다. BC 732, 아하스/아하즈(Ahaz)는 다마섹(Damascus)으로 가서 앗시리아(Assyria)의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와 그의 신(gods)들에게 경의를 표하고(swear homage), 그곳에서 본 제단(祭壇, altar)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어(take his fancy)했답니다. 그래서 아하스/아하즈(Ahaz)는 예루살렘(Jerusalem)에 돌아와서 그와 똑같은 제단(祭壇, altar)을 만들고 의식(儀式, ritual)에 있어서

    그에 상응하는 변화(corresponding change)로 성전 예배(聖殿禮拜, Temple worship)의 영구적인 특징(permanent feature)을 만들었답니다.


    성전(聖殿, Temple)의 배치(arrangements)와 가구(furniture)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이것은 "앗시리아의 왕(king of Assyria) 때문이었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성전(聖殿, Temple) 안에 지어진 안식일(Sabbath)에 이용하는 현관(canopy)을 치웠고 앗시리아 왕(king of Assyria)에게 경의(deference)를 표하기 위해 야훼(Yahweh)의 성전(聖殿, Temple) 바깥에 있는 왕의 출입로(royal entryway)를 없애 버렸답니다<열왕기하(2Kings.) 16 18>.


    게다가, 아하스/아하즈(Ahaz)는 지배자(ruling people)들의 유행(fashion)에 따라, 희생(sacrifices)을 동반(accompanying)한 점성술 천문대(占星術天文臺, astrological observatory)를 설치했답니다. 다른 방법으로 아하스/아하즈(Ahaz)는 민족숭배(national worship)의 성격(character)을 낮추었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가 아들(son)몰렉(Molech, Molekh)에게 인간번제물(人間燔祭物, human burnt offering)<살아있는 사람을 통째로 불(fire)에 태워(burn) ()에게 바치는 의식용(儀式用) 제물(祭物)>로 바쳤거나 또는 그의 아들(son)을 불(fire) 속을 지나가게 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열왕기하(2Kings) 16 3>. 아하스/아하즈(Ahaz), 야훼(Yahweh)께서 이스라엘(Israel)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nations)들의 역겨운 방식을 따라, 힌놈 골짜기(Valley of Ben Hinnom)에서 제사를 지내고(burned sacrifices), 그의 아들들(sons)을 불에 태워 죽였다(sacrificed his sons in the fire)고 합니다<역대하(2Chronicles) 283>.


    그리고 자식(your children) 몰렉(Molech, Molekh))에게 인간번제물(人間燔祭物, human burnt offering) 내어주지 마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 야훼(Yahweh)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레위기(Leviticus) 1821>라고 하는 엄벌된 관습(practice condemned)이 있답니다.  그 말은 정화의식(淨化儀式, ceremony of purification)이나 제물(祭物, sacrificial offering)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답니다.


    신학사학자(Theological Historian)들은 아하스/아하즈(Ahaz)의 통치체제(統治體制, governing system)하에서의 국가(國家)의 종교상태(religious state)는 참담(disastrous)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아하스/아하즈(Ahaz)의 아들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의 개혁작업(reforming work)의 상당 부분은 아하스/아하즈(Ahaz)가 저지른 악(, evil)을 되돌리려는 것이었다고 평가한답니다.

    - 주() :

    몰렉(Molech, Molekh)

       몰(Molech, Molekh) <또는 밀곰(Milcom)>에게 인신번제물(人身燔祭物, human burnt offering)을 바치다.<Foster Bible Pictures>

     

    이것은 몰렉(Molech)이라는 이름의 우상(偶像, idol)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偶像, idol)에게 기도(pray) 하곤 했답니다. 우상(偶像, idol) 송아지 머리(head of a calf) 가지고 있었고, 놋쇠(brass) 만들어졌고, 안은 비어 있었답니다. 옆구리에 (fire) 지필 곳이 있었답니다. 놋쇠(brass) 몰렉(Molech) 우상(偶像, idol) (fire) 매우 달구어지면, 사악한 사람(wicked people)들은 그들의 어린 아이들(little children) 몰렉(Molech) 우상(偶像, idol) 품에 안겨 준답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들(little children) 그곳에서 불에 죽었답니다. 사진(寫眞, picture) 속의 남자는 그저 우상(偶像, idol) 품에 어린 아이(little child) 안겨 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다른 남자들은 나팔(trumpets) 불며 (drums) 치며 소리(great noise) 내는데, 가엾은 어린 아이(poor little child)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랍니다.

     

    몰렉(Molech, Molekh)몰록(Moloch, Molok), 밀곰(Milcom), 말리크(Malik), 멜리크(Melik), 말카(Malka), 말렉(Malek), 말릭(Malick) 또는 멜렉(Melekh)로 불리며, "(king)"을 뜻하는 셈어(Semitic term)이랍니다.  '다스리다', '인도하다'는 뜻의 '말라크(Malach)'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 king)'을 뜻하는 '말렉(Malek)'<말렉(Malek)은 아랍어(Arabic)의 남성적(masculine)인 이름(name)이랍니다 또한 왕()이라 아랍어Arabic) 또는 페르시아어(Persian)를 의미하기도 한답니다.>의 음역(音譯)에서 유래한 말이며 '너희 왕' '주신(主神) 우상(偶像)'을 가리킨답니다.

     

    몰렉(Molech, Molekh)은 암몬(Ammon) 사람들이 민족신(民族神)으로 가나안(Canaan)과 페니키아(Phoenicia)에서 숭배되었으며, 북아프리카(Africa) 및 레반트 (Levant)<그리스(Greece)와 이집트(Egypt) 사이에 있는 동지중해(East Mediterranean Sea) 연안 지역을 통틀어 이르는 말. 좁게는 시리아(Syria), 레바논(Lebanon) 두 나라를 이른답니다> 문화(文化)와 연관이 있답니다. (bull)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어린아이(child)를 불태워 바치는 인신공양(人身供養, sacrificial offering of human body) 제사의식(祭祀儀式, sacrificial rites)가 행해졌다고 한답니다. 성경(聖經) 신명기(申命記, Book of Deuteronomy)와 역대기(歷代記, Book of Chronicles), 레위기(Levi, Book of Leviticus) 등에서 몰렉(Molech, Molekh)이 언급되며, 유대교 (Judea) 및 기독교(基督敎)에서는 악마(惡魔)로 취급되었답니다.

     

    야훼(Yahweh) ()이 모세(Moses)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이스라엘(Israel)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누구든지 이스라엘(Israel) 사람이든, 이스라엘(Israel)에 사는 외국 사람이든 자기 자식을 몰렉(Molech, Molekh)에게 바치면 그를 죽여야 한다. 그 땅의 백성이 그를 돌로 쳐 죽여야 한다. 내가 내 얼굴을 그 사람에게 돌릴 것이며 그를 그 백성들 가운데서 끊어 낼 것이다. 이는 그가 자기 자녀를 몰렉(Molech, Molekh)에게 내주어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 자식을 몰렉(Molech, Molekh)에게 바치는데도 그 땅의 백성이 그의 행위를 외면하고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내 얼굴을 그와 그 가족에게서 돌릴 것이며 그들을 그들의 백성 가운데서 끊어 낼 것이다.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Molech, Molekh)에게 음행(prostituting)을 행한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행할 것이다”<레위기(Leviticus) 201~5>.


    자기 아들딸(sons and daughters)들까지 불에 태워 번제물(燔祭物, burnt offering)로 바치고 섬기던 가증스런 우상(偶像)인 그 들의 신()에게, 이스라엘(Israel)이 가나안(Canaan)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가나안(Canaan)에서 이미 섬겨지고 있었답니다<신명기(Deuteronomy) 12 31,, 18 9>. 

     

    우상(偶像)의 모습은, 인간의 몸을 근간으로 황소(bull)의 머리를 하고 두 팔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었답니다. 일명 '밀곰'(Milcom)<열왕기상(1Kings) 11 5>이라고 하며, 몰렉(Molech) ()을 섬길 때 어린 자녀(young children)를 희생제물(犧牲祭物) 삼아 불태우는 인신 제사(人身祭祀)가 드려지는<역대하(2Chronicles) 28 3, 33 6> 등 혐오(嫌惡)스럽고 부패(腐敗)한 제의(祭儀)로 유명했답니다<예레미야(Jeremiah) 32 35>. 


    솔로몬(Solomon) 때에 결혼 동맹(結婚同盟)으로 인해 들어온 이방 여인(異邦女人)들을 통해 유입된 몰렉Molech) 우상(偶像)은 이스라엘(Israel)을 오염(汚染)시켰고, 예루살렘(Jerusalem) 근처벤 힌놈(Ben Hinnom)’의 골짜기에 그 제단이 설치되기도 했답니다<열왕기상(1Kings) 11 5, 7>. 이 같은 범죄(犯罪)는 결국 솔로몬(Solomon) 이후 통일 이스라엘 왕국(United Kingdom of Israel)이 분열(分裂)되는 결과를 낳게 된답니다<열왕기상(1Kings) 11 9~13>.

    한편, 율법(律法)에는 이런 가증스런 우상(偶像)이 야훼(Yahweh) ()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 규정하면서<예레미야(Jeremiah) 18 21>, 그것을 숭배(崇拜)하는 자는 반드시 처형(處刑)하되 칼(sword)로 쳐죽이도록 명령하고 있답니다<예레미야(Jeremiah) 20 1~5>.

     

    그럼에도 북()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유대 왕국'(Kingdom of Judah) 12대 왕 아하스/아하즈(Ahaz)<열왕기하(2Kings) 16 3; 역대하(2Chronicles) 28 3>, 14대왕 므낫세(Manasseh)<열왕기하(2Kings) 21 6, 역대하(2Chronicles) 33 6> 시대에 특히 자기 아들들(sons)을 번제물(燔祭物, burnt offering)로 바치는 등의 몰렉(Molech)  숭배가 심했답니다. 훗날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 16대왕 성군(聖君) 요시야(Josiah) ()은 종교개혁(宗敎改革)을 하면서 몰렉(Molech) 제단(祭壇)을 철폐했지만<열왕기하(2Kings) 23 10~13>, 완전히 근절되지는 못했답니다.

     

    이후에도 가나안(Canaan) 땅 안에서 인신 제사(人身祭祀)가 사라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선지자들은 가증스런 우상 숭배(偶像崇拜)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였답니다<예레미야(Jeremiah) 32 35, 49 1; 에스겔(Ezekiel) 16 20; 스바냐(Zephaniah) 1 5>. 그리고 야훼(Yahweh) ()의 준엄한 심판(審判)이 임하여 이스라엘 왕국(Israel王國)은 결국 패망(敗亡)하게 된답니다<열왕기하(2Kings) 17 7~41>.

     

     

    야훼(Yahweh) ()도 인신번제물(人身燔祭物, human burnt offering)공양(供養)받다.

     

    그러나 이스라엘(Israel) 수호신(守護神, guardian deity) 야훼(Yahweh)도 인간번제물(人間燔祭物, human burnt offering)을 공양(供養, offering)받은 기록이 성경(Bible) 창세기(Genesis) 22 3~13절』과 『사사기(士師記, Book of Judges) 11장』에 나옵니다.

    야훼(Yahweh) ()은 아브라함(Abraham)의 외아들 이삭(Isaac)을 번제물(burnt offering)로 올리라고 명령(命令)했습니다<창세기 제22 2>.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들고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순간, 야훼(Yahweh)의 천사(天使, angel)가 나타나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고 명령합니다. 야훼(Yahweh) ()에 대한 아브라함(Abraham)의 신앙심(信仰心)을 인정하여 아브라함(Abraham)의 아들 대신에 숫양을 번제물(燔祭物, burnt offering)로 받았습니다<창세기 제22 10~13>.

     

    아브라함(Abraham)의 이삭(Isaac) 제물<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노'(Domenichino, 1581년~1641년)의 작품>

     

    『사사기(士師記, Book of Judges) 11장』에는, 입다(Jephthah)가, 암몬 족속(Ammonites)이 이스라엘(Israel)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자 이스라엘 자손(Israelites)을 암몬(Ammon)과 싸우게 하고, "만약 야훼(Yahweh) God)께서 확실히 암몬(Ammon) 족속을 내 손에 주신다면 내가 암몬 족속(Ammonites)으로부터 안전하게 돌아올 때 나를 반기러 내 집 문에서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야훼(Yahweh) God)의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燔祭物, burnt offering)로 바치겠습니다."라고 맹세하였답니다.

    입다(Jephthah)가 그의 무남독녀 딸(Daughter)의 목을 잘라 야훼(Yahweh) ()께 번제(燔祭, burnt offering)로 바쳤답니다.<Publiek domein

     

    입다(Jephthah)의 무남독녀 딸(Daughter)을 야훼(Yahweh) 신(神)께 번제물( burnt offering)로 바치다<18세기, 이탈리아 익명(Anonymous)의 작가>

     

    입다(Jephthah)가 암몬 족속(Ammonites)과의 전쟁(戰爭)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외동딸(only daughter)이 그를 맞으러 그 집에서 제일 먼저 나오자 그는 즉시 야훼(Yahweh) God)에게 한 서약(vow)을 후회했답니다. 그것은 입다(Jephthah)가 그의 딸을 야훼(Yahweh) God)께 바치도록 요구했을 것이기 때문에 입다(Jephthah)는 그의 서약(誓約, vow)대로 그의 무남독녀(無男獨女) 외동딸(only daughter)야훼(Yahweh) God)에게 번제물(燔祭物, burnt offering)바치는 의식(儀式)을 행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19세기 미국(美國)의 재야 성서학자(bibliologist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결성된 회복주의 성향의 기독교 교파(branches of Christianity) '여호와증인(Jehovah's Witnesses)'들은 그들이 보는 성경책(聖經冊, Bible) 신세계역(New World Translation)에서는 이 성경구절(聖經句節)을 조작(造作)해서 없애 버렸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의 계승(Succession)

     

    아하스/아하즈(Ahaz)36세에 사망하여 아들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가 그의 뒤를 잇게 되었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는 그의 사악(邪惡, wickedness)함 때문에 그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고 예루살렘(Jerusalem)에 장사(葬事)됐으나이스라엘 왕(kings of Israel)들의 성묘소(聖墓所)에 안치(安置)되지 않았답니다."<역대하(2Chronicles) 28 27>.

    아하스/아하즈(Ahaz)가 주(, Lord) 야훼(Yahweh)의 예배(worship)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한 통찰(insight)은 아하스/아하즈(Ahaz)가 죽은 뒤에 일어난 니산(Nisan)<앗시리아 달력(Assyrian calendar)은 첫 달(first month)이랍니다. 그리고 히브리 달력(Hebrew calendar)에는 전례력(典禮曆, ecclesiastical year) 첫 달(first month)과 역년(曆年, calendar year) 일곱 번째 달(seventh month)<여덟 번째(eighth), 윤년(leap year)>이 있답니다.> (month) 초하루(first day)에 그의 아들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가 제사장(priests)들과 레위 사람(Levites)들에게 성전(Temple) 문을 열고 수리하고 성소(聖所, sanctuary)의 더럽혀진 것(defilements)을 제거하라고 의뢰했다는 진술(statement)에서 발견되었다는데, 그들이 정결하게 하는 일을 시작한 것은 첫째 달 1일이었고 그 달 8일에 야훼(Yahweh)의 현관까지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8일 동안 그들은 야훼(Yahweh)의 온 성전(Temple)을 깨끗하게 해 첫째 달 16일에 그 일을 마쳤답니다<역대하(2Chronicles) 293~20>.

     

    랍비 문학(Rabbi literature)에서의 아하스/아하즈(Ahaz)

     

    “II Chron. xxviii. 19–25”에 대해 언급한 랍비(rabbis)족에 따르면, 아하스/아하즈(Ahaz)는 자신이 당한 모든 시련(trials)을 무릅쓰고라도 악행(wickedness)을 고집하여 회개(repent)하지 않는 왕(king)이었답니다<Sanh. 103a, Meg. 11a>.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재생(regeneration)의 모든 희망을 파괴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종교(Israel's religion)를 바로 그 토대(foundation)까지 위협한 것이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는 어떤 가르침도 불가능하게 하고, 세키나(Shekinah)<혹은 하나님의 영광(Glory of God)>가 그 땅을 버리게 하려고, 예배당(禮拜堂, chapel, church)들을 폐쇄하였답니다. 아하스/아하즈(Ahaz), 그의 유일한 장점(his only redeeming feature)<Sanh. 104a>으로, 예언자의 책망(prophet's rebukes)에 항상 겸손하게 복종했지만, 얘언자(prophet) 이사야(Isaiah)가 비밀리에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답니다<Yer. Sanh. x. 28b; Gen. R. xlii.>.

     

    아비야(Abijah)<아비(Abi)>주)는 야훼(Yahweh) ()을 믿지 않는(godless) 남편 아하스/아하즈(Ahaz)가 설계한 몰렉(Molech, Molekh)에게 바치는 제물(offering)인 아들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의 목숨을 구했답니다. 아비(Abi)는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에게 도롱뇽(salamander)<불도마뱀(火怪): () 속에 산다고 전해지는 뱀(snake)의 형상을 한 전설상(legendary)의 괴물(怪物, monster)>의 피(blood)로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에게 바름으로써,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가 해치지 않은 몰렉(Molech, Molekh)의 불(fire) 속을 통과할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Sanh. 63b>.

    () :

    아비야(Abijah)는 구약성서(Old Testament)에 나오는 여자(女子) 인물로서, 그녀는 예언자 스가랴(Zechariah)의 딸(daughter)이며, 아마도 스가랴(Zechariah)가 여베레기야(Jeberechiah)의 아들(son)일 것이랍니다<역대하(2Chronicles) 291; 이사야(Isaiah) 82>. 그리고 그 뒤에 아하스/아하즈(Ahaz, 재위 BC 735~BC 716) (King)<()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2 ()>의 아내(재위 BC 732~BC 기원전 716)와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 재위 BC 728~BC 687) (King)<()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 제13대 왕()>의 어머니(재위 BC 715~686). 그녀 아비야(Abijah)는 또한 아비(Abi)<열왕기하(2Kings) 182>라고 불린답니다.


    일부 작가(Some writers)이사야(Isaiah) 714절』의 임마누엘(Immanuel) 예언(prophecy)에서 아비야(Abijah)를 예언(prophecy) 당시에는 알마(Almah) 또는 "젊은 여자(young woman)"로 간주하고 처녀(virgin)가 잉태해 아들(son)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Immanuel)이라고 부를 것입니다!”라고 예언(豫言)한 것은, 르신(Rezin)<아람(Aram), 즉 시리아(Syria) 다메섹(Damascus)의 왕(King)>과 베가(Pekah)<()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 18대 왕()>가 앗시리아의 왕(King of Assyria) 티글라스-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에게 패배(敗北)했을 때 유아인(infant)이 될 아이(child)가 미래의 후계자(future heir) 히스기야/히즈키야(Hezekiah)일 수도 있답니다.


    아람(Aram)<시리아(Syria)> 다메섹(Damascus)의 왕(King) 르신(Rezin, 재위 BC 740~BC 732)과 베가(Pekah, 재위 BC 740년경~BC 732년경)<()이스라엘 왕국(Kingdom of Israel, Samaria) 18대 왕()>의 두 왕국이 앗시리아(Assyria)의 서진정책(西進政策)을 저지하기 위해 동맹(同盟)을 맺고, ()유대 왕국(Kingdom of Judah)의12대 왕() 아하스(Ahaz, 재위 BC 735~BC 716)에게 동맹(同盟)에 참여할 것을 강권(强勸)하였으나 거절(拒絶)당하자 남()유대 왕국(Kingdom of Judah) 를 침공(侵攻)하였답니다<열왕기하(2K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