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묵상

찐스 2009. 10. 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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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찐스 2009. 5. 31. 20:25

일본 기독교 역사,

박해와 비전


처음으로 기독교가 들어온 것이 1549년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신부)이였다. 당시 세력가인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받아졌는데 70년후 기독교가 금지될때까지 80만명의 신자로 불어났다. 당시 일본의 인구가 1500만에서 2000만으로 생각한다면 놀라운 숫자의 크리스챤이였다.
일본은 죠몽시대에 선조숭배라는 독특한 영혼순환개념을 형성하게 되면서 매우 독특한 민족성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 러나 이러한 사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전래 70년만에 80만명이나되는 신자로 부흥된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그후 전대미문의 기독교 박해를 통하여 일본은 두번 다시 일어설수 없을 정도로 기독교가 파괴되고 말았다.
당시 기독교 박해의 이유를 여러가지로 생각할수 있지만 기독교 국가인 서양제국의 침략을 두려워한것과 기독교가 세상의 지배력을 최종적으로 부정한것에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즉 기독교가 들어옴으로 인하여 당시 일본문화와 사상이 와해되고 국가 지배체제가 붕괴되고 나아가 일본 정체성 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였다.

역사로 본 일본인
박해로 인한 순교자가 20-30만명정도 나왔다는 것은 당시 크리스챤 3명중 1명이 순교를 당한샘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볼때 일본 크리스챤들도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일제군국시대 신사참배에서는 한명의 순교자가 없었는가? (간접적으로 순교한 사람들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저항해서 순교한 사람은 없음) 그 이유는 도꾸가와 막부의 철저한 기독교박해의 정책에 있다고 할수 있다. 세계교회사에 그 예를 볼수 없을 만큼 잔인한 박해가 무려 300년 계속 되었는데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 박해 때문에 일본인의 심성이 현재의 일본인처럼 이상하게 변해버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박해의 5가지의 방법
1) 테라우게제도 : 모든 주민은 종교와 관계없이 절에 소속 되어야 했다. 등록한 절에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증명을 받아야 했다. 이 제도가 무려 300년동안 계속되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이러한 습관이 남아있다.

2) 종문 개명 : 테라우게제도와 함께 지역별로 종문개명장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을 여기에 기록하게 되었다. 절의 허가가 없이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게 하였고, 이러한 기독교 박해 정책에 의해서 불교도의 국가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3) 후미에(그림밟기) : 매년1회 마리아나 그리스도의 초상을 밟게 함으로써 기독교인을 적발 해내려는 것이였다. 이 제이처럼 잔인한 박해가 없었다. 어떤 선교사는 고문과 박해로 말미암아 신앙을 버리고 불교도가 되어버린 자들도 있었다

4) 5인조제도 : 농민들 5가구를 한조로 조직하여 세금 범죄등을 감시하고 기독교를 감시하는 제도로 서로 감시하여 밀고와 연대책임을 지게하였다. 일본인의 심성이 깊이 상처받은 제도였다. 일본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혼내(마음)와 다테마에(외면)가 다르다. 희노애락의 표정이 없다고 표현되는 것이 이로 부터 생겨났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5) 기리시단(크리스챤)류족 개명 : 만약 기리시단이 발견되었을때 그의 친족들도 기리시단과 동일하게 보고 남자의 경우 7대까지 여자의 경우 4대까지 일반인들과 구별하여 특별감시하에 두었다. 무라하찌분 이라고해서 장례식이나 화재가 났을 경우만 제외하고 사람들과의 접근이나 교제를 금지시킨 제도이다. 사회로부터의 완전 따돌림. 이웃과 일절 교제가 단절 된다는것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에 있어서는 매우 가혹한 형벌이 아닐수 없다. 흔히 이지메(따돌림)라고 하는것이 바로 이 형벌에서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다. 이때의 영향으로 오늘까지 일본인의 심성에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비젼

세계기독교 역사상 이 처럼 박해당한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웁게도 쇄국정책이 끝나고 다시 서양인들이 들어왔을때 일본에는 기리시단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가꾸레 기리시단 이라고 하는데 숨어 지낸 크리스챤들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무려300년 동안 몰래 신앙을 지켜왔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볼때 일본은 분명히 복음의 씨앗과 순교의 피가 뿌려진 나라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씨앗을 추수하는 기쁨을 우리세대에 주실것으로 믿고, 오늘도 희망속에서 일본선교의 가능성을 되새겨본다 (퍼온글)

출처 : 붕심(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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