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0. 5. 13. 22:53

 

나는 교육부의 등교수업 일정이 확정되기 이전에 학생들을 등교시켜 대면수업을 실시하였다는 그

고등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첨부한 사진은 보도 사진과 매우 흡사한 외관을 지닌 모 고등학

교의 사진이 눈에 띄어 보였을 뿐이다. 만약, 그 고등학교라면, 나는 그 고등학교가 광진구에 있으

리라고 생각하였고, 용산구로 이전한 사실은 몰랐다.

 

예전에 어린이회관 북서쪽에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이 있었던 것으로 막연히 기억한다. 하여튼,

와는 상관이 없고, 내가 그 학교를 홍보할 어떤 사연도 가지지는 않고 있다.

 

틈을 내어 어머니에게 (사랑의) 장미꽃을 전하는 딸들도 있고, 틈을 내어 night club 을 전전하는 고

등학생 딸도 있다. 그들의 취향이니, 그에 대해 언급하려 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로 인하여 다른 사

람을 해하였다면, ‘상해죄(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하겠지만 아직까지 밝

혀진 심각한 피해자는 없는 것 같다.

 

어느 고등학생의 이태원클럽 출입.pptx


 
 
 

서북의 바람

Kay 2017. 12. 5. 17:19

 

문화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인식이 서로 다르다. 삶에 대한 인식은 죽음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므로, 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대별하여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문화가 있고, 죽음에 대해 배타하고 거부하는 문화가 있다. 죽음, 특히 자살에 대하여 잘못의 인정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있고, ‘잘못의 부정으로 인정하는 문화기 있다. 서로 다르고 반대적 인식이다.

 

얼마 전, 2017 12 3일 이른 밤, 서해와 낚싯배와 급유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고, 그 사고의 결과 낚싯배의 선장 등 15명은 죽었다. 사고에 관련한 급유선의 선장 외 1명은 경찰에 체포되었다. 모두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면, 낚싯배의 선장 등 죽은 사람은 선인(善人)이고, 급유선의 선장 등 산 사람은 악인(惡人)일까? 죽은 사람은 피해자(被害者)이고, 산 사람은 가해자(加害者) 일까?

 

현재로써 나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도 검토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불법과 적법에 대한 엄정하고 냉철한 수사가 선행(先行)되어, 각 잘못이 누구에게 귀책(歸責)되는지 밝히고, 이에 따라 상당한 벌의 가하여야 한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살아있다면 당연히 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하고; ()을 받아야 할 사람이, 이미 죽어 그것은 집행할 수 없다면, 그것이 집행불가(執行不可)의 사유가 될 수는 있지만, 면책(免責)의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간 차가운 바다에서, 사고로 인한 사람들의 구조에 힘쓴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선박사고 _ 서해 _ 171205.pptx

 

낚싯배의 불법행위.pptx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죽음에 대해 관심 있어 하시는 것 같아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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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www.uec2018.com

 
 
 

서북의 바람

Kay 2017. 12. 3. 18:44

 

2017 12 3 06:12 (혹자는 06:09 라 말한다)에도 서해에서 비슷한 낚시 배 사고가 있었다. 33

6톤급의 급유선(명진15)과 충돌한 그 낚싯배(선창1)에는 선원 포함 22명이 탑승하고 있었다니 (13

사망), 사고가 난 낚싯배의 배수량은 약 10톤으로 여겨진다.

 

하여튼, 사고가 났다. 구조가 우선이다. 그런데, 알려진 사고의 위치는 정규항로 또는 그에 매우 근접

한 곳이었다. 사고의 가해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좀 더 구체적인 조사에 의해 가려지리라 생각하지만, 감성에 의한 섣부른 판단은 잘못되기 쉬우니,

심하여야 한다.

 

 

 

선박사고 _ 서해.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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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사고 _ 서해.pp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