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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성인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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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성 베네딕도/생애

2013. 2. 19.

성 베네딕도 성인의 생애

 

 

 

 

성 베네딕도 성인께서 수도승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수도승의 삶을 선택하는 이유들과 크게 다를것은 없었다.


성 베네딕도(480-560년경)는 중부 이탈리아 누르시아의 한 명문가에서 태어나에서 태어났다.

 

 

 

 

 

 

성 베네딕도는 로마에서 수학하던 중 도시생활의 혼란과 방종에 환멸을 느끼고 광야로 나아갔다.


성인은 처음에 엔피데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수비야꼬에 정착했는데 그는 3년 동안을 동굴에서 지내면서 로마누스라는 또다른 은수자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았다.

 

 

 

베네딕도 성인이 은수처로 삼던 벼랑의 동굴과 그 위에 세워진 수비아꼬 수도원

 

 

그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면서부터 비코바로의 수도자 공동체의 원장으로 초대되었지만
엄격한 규칙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살해의 위협이 있자 다시 수비야꼬로 돌아왔다.
그후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므로써 수비야꼬는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로 변하게된다.

 

                                          몬테 올리베또 대수도원 벽화

 

베네딕도는 자기의 생활을 지금까지의 은둔 생활에서 공동 생활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는  일치, 형제애, 끊임없는 전례 생활을 위해 하나의 ’대수도원’에 여러단체의 수사들을 모으기로 했다.

 

 

 몬떼 까시노 아래에서 바라본 수도원 모습

 몬떼 까시노 수도원 입구

 몬떼 까시노 수도원의 성 베네딕도 석상 -맞은편에는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있다.

몬떼 카시노 수도원의 내부정원

 

마침내  몬떼 까시노에 정착함으로써 이곳이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게 만들었고,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수도 규칙"을 썼다.

 

규칙서를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성 베네딕도 - 몬떼 올리베또 대수도원 벽화

 


점차로 발전된 규칙은 전례를 통한 기도 생활,공부,육체 노동 그리고 한 사람의 아빠스 아래서
공동 생활을 할 것을 명시했다.

몬떼 올리베또 대수도원 벽화

 

성 베네딕도는 남자를 위해 수도원을 세워 규칙을 작성했을 뿐 아니라
여동생 스콜라스티카 및 그의 동료들의 부인들을 위해서도 수도회 규칙을 정해주며
정신적,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스콜라스티카는 오빠보다 먼저 죽었으나 생전에는 서로 도와 완덕의 길을 걸었다.
베네딕도가 수사들의 아버지라면 그녀는 수녀들의 어머니가 되어 다같이 자애로써 그들을 인도했다.


베네딕도는 547년 3월 21일 몬테카시노에서 승천했다.


그날 그는 성당 제대 앞에서 신발을 신은 채 서서 팔을 벌리고 기도하면서 선종했다고 한다.


여러 지방에서는 8세기말 부터 7월 1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해 왔으며,
교황 바오로 6세는 1964년 10월 24일에 성 시릴과 메토디오와 함께 성 베네딕도를 유럽의 공동수호 성인으로 선언했다.


 성 베네딕도는 몬테카시노를 비롯한 12개의 수도원을 세우고 규칙을 만들었다.


그의 규칙서는 전 유럽에 걸쳐 많은 수도자들의 지침이 될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까지도 <성 베네딕도의 규칙서>를 수도회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수도원들이 많다.

 

올리베따노 연합회(한국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수녀회), 솔렘 연합회, 수비아꼬 연합회, 몬떼까시노 연합회, 오틸리아 연합회(한국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툿찡 포교 베네딕도 대구 수녀회, 서울 수녀회), 까말돌리 연합회, 실베스트로 연합회, 발룸브로사 연합회 등이 있다.
* 시토회와 엄률시토회(한국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회)는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따르지만 베네딕도회에는 속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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