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프란치스카 로마나/연합회 첫성녀 생애

올리베따노 2013. 2. 19. 16:04

오늘 올리베따노 수도자들에게 주는 성녀 프란치스카의 메시지

 

2008년 7월 4일, 몬떼 올리베또 대수도원 유기서원자모임 강의
Sr. Sarah Lacheré(르 벡, 성녀 프란치스카 로마나의 봉헌자 수녀원)

 

제가 오늘 전하는 말씀은 교황님께서 젊은이들에게 주시는 말씀도 아니고 하늘에 계시는 성녀 프란치스카에게서 직접 받은 계시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녀의 딸로 성녀 곁에 머물러 살면 그분의 영적 메시지와 그 메시지가 오늘날 지니는 의미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정말 오늘 우리 세상에, 그리고 오늘날 수도자들에게, 특히 우리 올리베따노 연합회 젊은 수도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아요. 현재 그분은 우리 연합회가 모신 유일한 성인이신데, 그러므로 당연히 그분은 우리 영적 여정에 있어서 큰 가르침을 주실 수 있는 분, 말하자면 우리 어머니요 영적 스승이십니다.

 

 

1. “제가 여기 있습니다” (“Me voici”) : 순명

 

“봉헌되고 선사되고 바쳐지고 남김없이 자신을 쏟아 붓는 삶을 사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되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자신을 되돌려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계획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더 좋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 계획에 늘 열려 있으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어렸을 적부터 하느님께 바치는 삶을, 그것도 은수 성소를 갈망했건만, 성녀는 열 두살에 부모님의 뜻으로 혼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녀는 혼인의 부르심에 “예, 제가 원합니다” 하고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성 알렉시오의 전구로 기적적인 치유를 얻게 되지요. 이때 환시에서 성 알렉시오가 성녀께 “낫기를 원하니?”라고 물었습니다. 성녀는 “예, 그게 하느님의 뜻이라면 낫기를 원합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성녀의 일생 전부가 주변의 상황에 대해,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 하인들과 이웃들의 요청에 대한 “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425년 8월 15일(41세) 성녀는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현재의 성녀 프란치스카 로마나 수도원) 공동체의 봉헌자가 됩니다.

봉헌을 하는 장면을 그린 벽화  

 

그때 성녀는 봉헌 증서를 통해 “저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저를 봉헌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봉헌은 성녀가 처음부터 계획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성녀는 열심한 이 수도 공동체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고백 사제로 안토넬로 수사님을 모시게 되었고, 그곳의 전례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매주 수요일 그곳에 가서 기도하며 지내곤 했던 것입니다. 어떻든 이렇게 해서 그분은 혼인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큰 집안의 마나님으로서의 자기 삶에 성 베네딕도의 규칙서를 지혜롭고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1433년 3월 25일 함께 봉헌한 자매들은 자신들의 봉헌을 공동체 생활로 확장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이 요청을 받아들여 성녀는 토르 데 스페키Tor d’Specchi 수녀원을 창설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스스로 창설한 이 수녀원에 자신은 입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혼인한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녀원을 창설함에 있어 성녀는 “�모든 일을 의논해서 행하라”(3장)는 규칙서 말씀대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물론, 천상과 지상의 당신 수호자들(천상에 셋, 지상에 셋)의 인도를 받아들이셨습니다. 토르 데 스페키 공동체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이었습니다. 거기 입회하는 자매들은 여전히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의 봉헌자 신분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1436년 5월 20일 남편이 타계하자 성녀는 비로서 공동체에 입회하기를 청원합니다. 그때 52세셨습니다. ‘늦깎이 성소’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처음부터 “예, 원합니다” 라시던 그 순명 정신이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의) 봉헌으로 이어져서 결국 이렇게 심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대담한 영성을 지니십시오. 하느님께 전부를 바치면 그분은 전부를 되돌려 주십니다. 툭 트여 막힘없는 영성을 지니십시오. 하느님께 ‘전부’를 청하십시오. 마치 소화 데레사께서 그리 하셨듯이, ‘전부’를 선택하십시오.”

성녀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치유도 하고 빵도 많게 하고 없던 곡식과 포도주도 생기게 하셨습니다. 나아가 많은 수도자들을 성소의 위기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예컨대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의 히폴리토 수사님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우리 인간의 역량을 초월하는 것이라 해서 놀랄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께 전부를 드리면 그 백배를 되돌려 받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성녀의 환시들을 살펴 보자면 그분이 얼마나 대담한 청원을 바치곤 하셨는지 놀랍습니다. 그분은 아기 예수님을 당신 품에 안기도 하시고 예수님의 옆구리 상처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너무 큰 은혜를 청하신 나머지 하늘나라 사람들에게 욕도 얻어먹고 하시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결코 고통 자체를 추구하는 침침한 영성의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로 보아서는 그러기가 쉬웠는데도 말입니다. 그분은 고통을 즐긴다든지 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 영성의 세계는 빛과 기쁨, 그리고 삶의 생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컨대 1431년 2월의 환시에서 그분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하늘과 땅의 모든 성녀들과 함께 춤추며 하느님 사랑의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십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의 상처(오상)을 묵상하실 때는 늘 그 상처가 마치 환하고 다사로운 빛의 심연처럼 묘사됩니다.


2. “당신(타인)을 위하여”(pour toi) : 연민

 

“연민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십시오. 형제 자매들의 좌절과 가난을 깊이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지니십시오.”

프란치스카 성녀는 수많은 정치 종교적 분란에 휩싸인 당대 역사와 함께 호흡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남자들은 전쟁터로 끌려가거나 포로가 되거나 죽거나 하기가 다반사지요. 이런 상황에서 성녀는 유복한 집안의 안주인으로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집안의 곡식과 포도주, 장작 등 모든 것을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아낌없이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인 나눔보다 더중요한 것은 시간과 말씀과 경청의 나눔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속 마음을 들어주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바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절망과 의심과 반항과 복수심에 휩싸인 사람들이 속을 터 놓을 수 있는 말상대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와 희망, 신앙과 사랑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분이 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은 이런 극적인 상황의 한복판에서였고, 그것은 삶의 상처와 병과 절망을 치유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특별히 여성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불임 여성들, 임신부들, 갓 태어난 아기들 등 삶이 주는 선물의 모든 영역에서 봉사하셨습니다. 자신이 세 아이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 관한 모든 것이 그분의 마음을 깊이 건드렸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특히 교회의 일치를위해 늘 기도하십시오.”

성녀는 교회의 참된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두, 세파당으로갈라놓았던 당대의 열교 현상(1379-1418)에 깊이 상심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당신 고백신부이던 마테오티 신부를 교황 에우제니오 4세에게 보내 화해의 길을 걷도록, 추기경들과 의견일치를 이루도록 호소하는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일치를 갈망하시는 성녀께서는 오늘 우리도 교회의 일치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사는 나라들과 도시들, 공동체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3. “당신(타인)과 함께”(avec toi) : 친교

 

“친교의 사람이 되십시오. 늘 타자에게 열려있고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모든 타자 중 으뜸 타자, ‘절대 타자’이신 하느님께 그리 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고립된 섬이 아닙니다. ‘한 몸’(unum corpus) 영성을 몸으로 실현하십시오.”

 

성녀는 당신의 가정 생활에서 몇 가지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그분은 당신 남편에게 마지막까지 충실하셨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당신이 세우신 토르 데 스페키 수도원에 입회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자식들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을 늘 따라다니던 수호천사가 7살에 페스트로 죽은 당신 아들 에반젤리스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막내 아들 바티스타가 죽을 무렵 어머니를 불렀을 때 망설이지 않고 수도원 밖으로 나가 아들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분이 병들어 1440년 돌아가시게 된 계기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당신 시부모님과의 관계,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였던 시누이 바노차와의 관계, 며느리 마빌리아와의 관계 역시 여러 면에서 수많은 가정에게 삶의 길을 비추어주는 모범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카 성녀는 여러 사람들과 정말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1425년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에서 봉헌을 하신 것도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이들이 수도 공동체를 창설하도록 성녀를 부추겨서 1432년 토르 데 스페키 수녀원이 생기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성녀는 조언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분은 늘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셨고 스스로의 힘으로 무얼 해 나가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토르 데 스페키 수녀원 창설 역시 천상 조언자들로는 성모님, 사도 베드로, 사도 바오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지상 조언자들로는 요한 마티오티(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의 본당신부), 히폴리토(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의 고백신부), 바르톨로메오 수사(산 프란체스코 아 리파 수도원의 프란치스코회 수사) 등 많은 이의 친교 속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랑하기를 좋아하십시오. 여러분의 우정과 인간관계에 충실하십시오. 어머니가 되고 딸이 되고 누이가 되십시오.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고 형제가 되십시오.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가꾸어 나가십시오. 성찬의 사람이 되십시오!”

성녀의 성무일도서

 

프란치스카 성녀는 세상을 하늘과 땅의 많은 이웃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땅의 이웃들로는 가족, 온갖 종류의 가난한 이들, 친구들 등이 있었고, 하늘의 이웃으로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이들 외에도 성 그레고리오, 세례자 성 요한, 성 안드레아, 성 아브라함과 이사악, 성 다윗과 엘리야, 성 루카, 성 예로니모와 암브로시오 등의 인물들이 당신 환시에 등장하십니다. 


   성녀께서 1425년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실 때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 공동체에도 자신을 봉헌하십니다. 수도 공동체는 그분의 봉헌에 특전적 중개 역할을 합니다. 1439년 12월 26일의 환시에서 그분은 탈혼 중에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의 히폴리토 수사님을 방문하셔서 “저는 수사님을 아버지요 아들이자 형제로 받아들입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녀는 오늘의 우리 역시 이 삼중의 인간관계를 맺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가장 큰 소망은 우리가 참된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되고, 참된 형제나 자매가 되며, 나아가 참된 딸이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삼위일체 자체가 지닌 풍요로운 관계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관계가 상호적인 것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정신에서 솟는 행동과 말씀에 응답해서, 히폴리토 수사님은 자신을 성녀와 토르 데 스페키 수녀원에 바치면서 이를 성대한 증서로 기록해 남기셨습니다.
   이 환시에서 성녀는 아기 예수님을 히폴리토 수사님께 넘겨 드립니다. 그리스도를 자매-형제들에게 넘겨드리는 것이야말로 정녕 우리의 가장 심오한 소명입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합시다. 우리는 성녀께서 오늘의 우리에게 남기신 다른 많은 말씀들도 기억할 수 있겠지만, 단지 다음 말씀들만 유념해 두기로 합시다 :

 

“봉헌의 사람이 되십시오!”


“연민의 사람이 되십시오!”


“친교의 사람이 되십시오 !”

 

그리하여 우리 역시 같은 여정을 걷도록 우리 발걸음을 축복하고 격려해 주시는 성녀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

 

“제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당신과 함께!”

 

 

성녀께서 사용하시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