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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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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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국외예술

2009. 5. 31.

 

성직자의 길을 열망했던 반 고흐

 

한때는 광산촌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해 정열을 불태웠지만 그의 운명은 캔버스를 떠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빛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희롱을 화폭에 담고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빛과 그림자가 소용돌이치는 화면을 통해 숱한 사람들의 비어 있는 내면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태양의 화가 반 고흐, 영혼의 화가 반 고흐의 그림에는 삶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진한 애착과 영혼을 꿰뚫는 투명한 관조가 넘쳐 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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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lhttps://www.youtube.com/watch?v=Ooi2yP_v9IM

 

가수 Don Mclean이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를 읽고 난 후

이 그림(Starry Night)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노래로

1972년 빌보드 차트 12위 곡인 이 노래를 반 고흐에게 바쳤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박물관에서 이 노래가 매일 연주되었고

반 고흐의 그림붓 세트와 함께 악보가 박물관 밑에 타임캡슐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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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북쪽에 위치한 그루트 준데르트(Groot Zundert)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테오도루스 반 고흐)는 목사였다. 그의 어머니(코르넬리아 카르벤투스)는 1857년에 그의 동생을 낳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 테오도루스라고 이름 지었다.

 

1864년 빈센트는 부모와 떨어져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가난으로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하여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당시 빈센트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청년으로 인정받았다. 1873년부터는 빈센트의 동생인 테오도 브뤼셀 지점 구필화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1873년 3월 빈센트는 헤이그를 떠나 구필화랑 런던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영국에 머물렀으며 1875년부터는 파리지점에서 일하였다. 빈센트는 런던에서 부터 신비주의에 빠져 화랑 일을 소홀히 하였다. 빈센트에게는 오로지 하나님 밖에 없었으며 그는 결국 화랑에서 해고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