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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정학교(香壽 丁學敎): 그림 / 수석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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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국내예술

2011. 11. 25.

정학교(丁學敎: 1832∼1914)는 조선 말기의 서화가로 본관은 나주(羅州). 일명 학교(隺喬, 또는 鶴喬). 자는 화경(化景 또는 화경(花鏡)) 호는 향수(香壽)·몽인(夢人)·몽중몽인(夢中夢人). 사군자와 서예에 능하였던 학수(學秀)의 형이다. 벼슬은 종 4품인 군수를 지냈다고 하나 정확한 경력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민영익(閔泳翊)·이하응(李昰應)·윤용구(尹用求) 등과 서화로써 교유(交遊)하였고, 안중식(安中植)과 함께 장승업(張承業)의 작품에 대리 낙관을 많이 하였으며 괴석도(怪石圖) 그림에 특히 뛰어났고, 글씨는 전(篆)·예(隷)·행(行)·초(草)에 모두 능하였고 광화문(光化門)의 편액을 썼다고 합니다.

 

그의 괴석도들은 담백하면서도 예리한 필치로 바위의 특성이 간결하게 포착, 표현되어 있으며, 유작(遺作)에는 대개 제발(題跋)이 들어 있는데, 청수상의죽석도(淸壽相倚竹石圖)·기암고용도(奇巖孤聳圖) 등에서는 한말  문인·묵객들의 서화풍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수석(壽石)은 인공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자연의 모습에 자그마한 자연석으로 산수의 온갖 풍경을 연상시키며, 형상의 기묘함을 나타내고, 회화적인 색채와 무늬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미감을 발산하는 돌을 말함입니다.

 

대자연의 풍경을 뜰 안에 조성하는 축경조원(縮景造園)을 일본에 가르친 사람이 백제 사람 노자공(路子工)이며, 이로써 일본에서도 분경(盆景)과 수석의 시초가 싹트게 되었다. 한 개의 작은 자연석을 애완해 온 태초의 기록은 약 3000년 전에 펴냈다는 중국 최고(最古)의 지리서인 서경(書經)의 우공편(禹貢篇)이나, 주대(周代:BC 1121)의 시경(詩經)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또 중국 당(唐)·송(宋)·명대(明代)에도 애석해 온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신라 때에 승전법사(勝詮法師)가 괴이한 돌의 무리들을 모아놓고 불경을 논의하고 강연했다는 기록을 비롯하여 조선 전기 강희안(姜希顔)의 저술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수석을 누리는 경지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으며, 민화(民畵)나 고서화에도 수석을 누려온 기록이 가끔 나타나고, 특히 추사(秋史)·다산(茶山)이 돌을 완상(玩賞)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비원 창경원이나 운현궁에 정석(庭石) 수십 점이 배열되어 그러한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 정석들에 대한 내력과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궁궐과 호사가들의 정석 괴석들을 살펴보면 유별나게 길쭉하게 치솟은 큰 모습을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은 음양(陰陽)의 이치를 품고 있으며, 단조롭게 비쭉 치솟은 형태는 양이면서, 골이 패인 양상은 산수미를, 아래쪽에 깊이 패인 구멍은 음을 상징하여 전체적인 음양의 조화를 결속시켰습니다. 이러한 전래적인 애석 기풍은 한국 특유의 전통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