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 덕산사(德山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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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따라

2019. 12. 4.

 

고창. 덕산사(德山祠)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51-1-24.

지정: 2003년 5월 30일.

관리자: 흥덕향교.

 

 

추모대상.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 1896~1934)
갑운(甲雲) 백인수(白麟洙, 1856~1910)
근촌(芹村) 백관수(白寬洙, 1889~1951) 

 

 

다녀온 날: 2019년 4월 7일.

 

 

전북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 43-2 (도덕길 68)

 

 

 

덕산사는 이 고장 출신 독립유공자 백정기, 백인수, 백관수를 추모하기 위하여

1947년 건립되어 1995년 재건되었다.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는 1896년 전남 부안군 동진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같은 해 8월 동지 4명과 함께 인천에 있는 일본군 시설물을 파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자 만주로 피신하였다.

 

28세 때인 1923년에는 일왕을 암살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관동조선인대학살 사건이 일어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조직적인 아나키스트 활동을 펼쳤다.

 

1930년 이후에는 만주에서 한족총연합회에 참여했으나 만주사변이 발발하여 동지들과 상하이에서 남화한인연맹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섰다.

 

1931년 11월 한국·중국·일본의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고 적의 국경기관 및 수송기관의 파괴·요인 사살·친일파 숙청 등을 목표로 'BTP'라는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배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3월 17일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가 상하이 홍커우에 있는 일본요정 육삼정에서 연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이강훈·원심창과 함께 습격하려다 잡혀 일본 나가사키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갑운(甲雲) 백인수(白麟洙)는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당시 의관벼슬에 있었는데 을사보호조약을 결사반대하며 백성기와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자 "이제 우리 민족에게는 죽음만의 항쟁이 있을 뿐이다. 나라가 없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할 것이냐?"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애국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근촌(芹村) 백관수(白寬洙)는 문경공파조 백인걸 8대손으로 성내면 생근리(生芹里)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수학하고 신문학에 뜻을 두고 동경유학을 떠났다. 송진우, 김병로 같은 인물들과 친분을 두터이 하면서 항일운동을 모의하고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김규식 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했다.

 

그 보다 앞서 기미년(1919년)에 근촌(芹村)은 일본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그 단장에 추대되어 김도연, 라용균, 이광수, 장덕수 등과 긴밀한 연락 끝에 3.1운동의 도화선인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하게 되였고 드디어 옥고를 치르게 되였다.

 

그 뒤에 근촌은 항일문화활동을 위해서 조선사정연구회와 홍문사를 만들어 월간동방논평을 발간하고 태평양회의에 민족대표로 참가했다.

 

또 한편 중앙고보에서 육영에도 힘썼고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그 재임 중에 강제폐간시키려는 총독부와 맞서서 옥중에서도 끝끝내 굴할 줄 모른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인촌(仁村)과 함께 한민당 창당 산파역을 하고 입법의원법사위원장 제헌국회 법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계의 거물이었으나 6·25당시 강제 납북되었다.

 

2010년 현재 관리자는 수원백씨(水原白氏) 갑운공 종중이고 제사일은 음력 9월 15일이다.

 


- 참조: 한국학중앙연구원 -

 

 

덕산사 사우.

 

 

 

 

덕산사 사우가 계단식으로 건립되어 있어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2019.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