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2020년 09월

18

발길을 따라 전남 영암. 부춘정(富春亭)

영암 부춘정(靈巖 富春亭)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4호. 2005.06.13. 영암읍 망호리 206(배날리길 58) 영암 부춘정(靈巖 富春亭)은 영암읍 망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사로서 청암 강한종(姜漢宗)[1549~1622]이 교류 및 학문 연마를 위해 지은 정사(精舍)이다. 강한종은 무과에 급제한 후 평양 판관 겸 병마절제사를 지내고 임진왜란에도 참전하였다. 광해군 때에 난정에 상소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귀향하여 지금의 위치에 부춘정을 마련하고 학문의 장으로 삼았다. 진주강씨(晉州姜氏)가 후정 마을에 입향한 때는 1541년경이며 입향조는 강한종의 부친인 강달령(姜達齡)[1522~1584]이다. 이전 세거지는 강진 성전면 금흥리이다. 부춘정에 관한 내용은 강한종의 현손인 강필문[1622~1683..

14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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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따라 전남 해남. 공룡박물관

해남. 공룡박물관.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937 (공룡박물관길 234) 해남 우항리는 지난 1992년 한국자원연구소의 지질학 연구조사중 공룡발자국이 최초로 발견된 이래 해남군의 발굴노력에 의해 1996년 기초조사, 1997~1998 종합학술조사를 진행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천연기념물 제394호 해남 우항리 공룡 익룡 새 발자국 화석산지 이곳은 단순한 화석지로서만의 가치뿐만 아니라 지질사의 무수한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해남군에서는 이러한 자연유산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우항리 공룡화석 자연사유적지라 명명하였다. - 백과사전 -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로 만든 일억년의 부활이라는 공룡조형물이 방문객을 반긴다. 공룡의 뼈대. 고생..

11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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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따라 전남 해남. 정명식 가옥(鄭明植 家屋)

솟을대문. 대문 앞에 자동차가 가로 막고 있어서 바르게 촬영할 수가 없었다. 해남 정명식 가옥(海南 鄭明植 家屋)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8호.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291 (우항길 127-1) 정명식 가옥 안내문.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지방 상류주택으로 지금은 사랑채와 행랑채만이 남아있으나 원래는 안채와 사당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이참판 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행랑채의 평면은 방이 앞뒤 두 줄로 나란한 형태(일자형)이다. 중앙에 솟을대문을 내었는데 문 위의 투각(透刻)된 문양장식이 눈길을 끈다. 사랑채 역시 일자형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네모모양의 기둥을 올린 민도리 집이다. 대청마루와 ..

07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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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따라 전남 진도. 삼별초 궁녀둠벙

삼별초 궁녀둠벙 안내판과 정자. 삼별초 궁녀둠벙. 진도군 향토문화유산 제4호. 지정일: 2001년 10월 30일.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1029-11. 삼별초(배중손)가 추대했던 왕족 출신 승화후 왕온(承化侯 王溫)은 지금의 의신면 침계리에 있는 '왕무덤재'에서 붙잡혀 '논수골'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전투 중에 피난 중이던 여기. 급창(女妓. 及唱) 등 궁녀들은 창포리에서 만길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만길재'를 넘다 몽고군에게 붙잡혀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언덕을 따라 내려가 지금의 둠벙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이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할 당시 3천 궁녀가 부여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과도 매우 흡사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 뒤 비가 오는 날이면 이곳 둠벙..

04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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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따라 전남 진도. 용장성 홍보관.

용장성 홍보관 전경.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산성길92 (용장리 106) 필자가 방문한 날짜가 2020년 8월 30일로써 임시 휴관 안내서가 붙어있어 홍보관 내부로 출입할 수가 없어 지난 2013년 5월 17일에 촬영했던 것 중에 골라서 올립니다. 이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다음 기회에 다시 들려 홍보관 내부를 상세히 촬영하여 올리겠습니다. 2013년 당시는 용장산성이라 표기했었는데 근래에 용장성으로 바뀌었습니다. 홍보관 내부 안내도. 전시실. 13세기로의 여행. 시대별 정리해놓은 안내도. 삼별초 대몽항쟁의 의의. 여몽연합군의 공세. 여몽연합군의 침입로 유적지에 남겨진 흔적들. 용장성의 지형도. 산성에서 출토된 귀면와. 산성에서 출토된 도자기. 온왕릉과 금갑진성. 영상실. 영상실 내부. 2013.05...

02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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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따라 전남 진도. 용장성(龍藏城) 구, 용장산성.

고려항몽충혼탑(高麗抗蒙忠魂塔) 진도 용장성(龍藏城) 지 정 일 : 1964년 6월 10일. 지정번호 : 국가지정 사적 제126호. 규 모 : 산성일원 (19,921㎡) 관 리 자 : 진도군. 소 재 지 : 진도군 군내면 용장산성길92 (용장리 106) 안내번호 : 061-540-3084. 진도 동북방의 벽파 나루와 서낭산의 주변에 솟은 산지와 안부(鞍部)를 따라 연장 12km이상의 거대한 도성지가 있다. 용장리와 벽파리의 거의 전체를 감싼 고려 시대의 석축과 토축으로 된 나성(羅城) 형식의 산성으로, 현재 해발 264m의 용장산 좌우의 능선을 따라 약간씩의 석축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에 용장사지(龍藏寺址)와 행궁지(行宮址)가 남아 있다. 성벽은 서벽이 망바위를 지나 토성으로 이어져 벽파진 북쪽의 ..

31 2020년 08월

31

발길을 따라 전남 진도. 남도석성(南桃石城)

남도석성(南桃石城) 남문 전경. 전남문화재 사적 제127호. (1964.06.10)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294번지. 남도석성은 고려 원종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석성이라고 전한다. 고려시대 고종 이후 시작한 왜구의 침범이 연해 지방을 노략질함으로써 충정왕 2년 (1350)에는 진도의 관부와 백성들은 내륙 영암지방으로 옮겨 조선시대 세종 19년(1437년)까지 피난생활을 하다 다시 귀향한 것이다. 이들 수군진들의 축성 연대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불리한 경상도 및 전라좌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1488년 (성종 19년)에서 1490년(성종 21년)까지 3년 간에 걸쳐 축성되고 전라우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연산군 - 중종 연간..

28 2020년 08월

28

발길을 따라 전남 진도. 배중손 사당(裵仲孫 祠堂)

배중손 사당(裵仲孫 祠堂) 전경. 전남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15-9. 배중손(裵仲孫, ?~1271)은 고려 무인정권 말기의 장군으로 원종 11년(1270년) 삼별초 반몽(反蒙) 봉기의 지도자(장수)로서 진도와 제주도를 거점으로 고려의 정통 정부를 자임하면서 반몽고 항전을 지속한 인물이다. 본 사당은 1999년 10월에 세워졌다 한다. 현재의 배중손 사당은 삼별초 배중손 장수가 남도석성 전투에 패한 후 굴포 해안 쪽으로 이동하다 당시 바다 뻘밭이었던 이곳에서 최후를 마친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일제 이전부터 이곳에 마을 당(堂)이 있었고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는 농악을 치고 배중손 장수와 삼별초군 그리고 고산 윤선도제를 모셔왔고, 1959년「사라호」태풍으로 당(堂)이 허물어져 방치해 오던 중 굴포 출신 ..

26 2020년 08월

26

발길을 따라 전남 진도. 왕온의 묘(王溫)의 (墓)

왕온의 묘 주차장에 최근 건립된 정자. 왕온의 묘. 주소: 전남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 산45번지. 왕온(王溫)은 원종 11년(1270)에 고려와 중국 원나라 사이의 전쟁이 끝나고 강화로 피난하였던 왕실이 개경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던 삼별초의 배중손· 노영희 등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고려 원종 12년(1271)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 삼별초가 크게 패하자 아들 환(桓)과 여·몽 연합군의 지휘자 홍다구(洪茶丘)에게 살해되었다. 김용규가 지은 진도군 읍지『옥주지』에 왕온의 기록이 나오며,『진도군지』에 의하면 왕온의 묘는 왕분치(王墳峙)라 한다고 한다. 왕온 무덤은 흙으로 높게 쌓은 긴 타원형의 모양이며, 봉토 주위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돌을 둘러쌓았다. 고려시대 삼별초군이 왕으로 추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