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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지혜 -여래수량품 제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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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 .SGI

2008. 3. 28.

 

 

 

法 華 經 의 智 慧 - 如來壽量品 第16  -池田大作 (이케다 다이사쿠)


人生은 길다. 맑은 날도 비가 오는 날도 熱風(열풍)의 날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든 信心만 있다면 最後에는 전부 功德으로 된다. `永遠한 生命'을 믿으면서 이 一生을 살아가는 것이다

一生을 勝利하여 永遠한 生命을 證明하는 것이다. 그것이 法華經입니다. 壽量品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大生命力으로 살아가는 것이 壽量品의 마음입니다 永遠하고 宇宙大의 `크나큰 生命'의 實在(실재)를 밝힌 것이 壽量品입니다 그 `크나큰 生命'을 現實의 내 몸에 顯現(현현)하는 것이 壽量品의 實踐입니다 如來壽量이란 `如來의 永遠한 壽命' - 그 大生命力을 내 몸 위에 용현하는 것입니다

壽量品이 說하는 `永遠한生命' -그것은 無限한 生命力, 無限한 智慧, 無限한 慈悲를 갖추고 살아있는 宇宙生命 自體입니다

도다 先生任은 그것을 `부처는 生命이다'라고 깨달았던 그대로 입니다

이 `永遠한生命'이 妙法이며 宇宙 根源의 法으로 日蓮大聖人은 이것을 南無妙法蓮華經 라고 이름 하셨다. 生과死도 이 `永遠한生命'의 不可思議한 作用이며 現代社會의 온갖 苦惱(고뇌) 근저에도 이 生死의 괴로움이 있습니다 壽量品의 `永遠한 生命' 이야말로 이 生死의 괴로움을 治癒(치유)하는 良藥(양약)입니다

大聖人은 末法에 들어와서는 爾前(이전)과 迹文(적문)은 出離生死(출리생사)의 法이 아니며 本門壽量의 一品에 한하여 出璃生死의 要法(요법)이니라 (御書1022쪽)고 말씀 하셨다

壽量品에 觀해서는 每日 勤行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基本을 大綱(대강)을 살펴보자 湧出品(용출품)에서 娑婆世界(사바세계)의 大地로부터 菩薩(보살)이 출현 합니다 이 智勇(지용)의 菩薩들을 `釋尊(석존)은 어떻게 敎化해 왔는가' 하고 彌勒(미륵)이 질문 합니다. 이 물음을 받아 壽量品의 說法이 시작 됩니다 釋尊이 깨달음을 연지 십 수년 밖에 안 된다 언제 敎化했을까? 彌勒의  의문이지요 그 답이 壽量品 서두에 說해지는 久遠實性(구원실성)입니다 그때까지의 爾前. 迹文에서는 始成正覺(시성정각) --今世에 成佛했다--입니다

今世에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本來 부처였다 모두 놀랐다 속았단 말인가 始成正覺이라는 임시의 (迹,적)을 열어 久遠實性이라는 眞實한 (本,본) 을 나타냈기에 發迹顯本(발적현본)이라 합니다

釋尊의 成佛을 나타내는 비유가 五百塵點劫(오백진점겁)의 비유입니다 아찔해지는 이야기이다 爾前經에서는 `娑婆世界는 煩惱(번뇌)의 穢土(예토)이며 부처가 사는 國土는 淨土(정토)라고 說했다 西方의 極樂淨土(극락정토)나 東方의 淨琉璃世界(정유리세계)등 이라고 그런데 壽量品에서는 `이 娑婆世界가 久遠實性의 부처가 常住하는 淨土'라고 `娑婆卽寂光'(사바즉적광)의 法理입니다

`永遠한 大生命'에 눈 뜨게 하는 것입니다 `大聖人 佛法은 永遠한 生命을 깨닫는데 究極(구극)의 目的이 있습니다  生命의 永遠함을 내 몸으로 體得(체득)하는 데 있으며 이를 絶對的 幸福(절대적 행복)이라 합니다  그것을 確立하려고 信心하는 것입니다

도다 先生任은 말씀하셨다 末法의 깨달음이란 御本尊을 믿는 일이다 信心 즉 깨달음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가정 일로 괴로워하며 주위를 원망하면서 불평만 했다 그러나 信心에 눈뜨고 佛法을 배워 不幸의 原因이 내게 있음을 알고 자신의 人間革命에 挑戰하여 信心이 깊어지고 敬愛가 깊어지면서 괴로움을 훌륭하게 解決할 수 있었다라고

그 體驗(체험)을 통하여 `自身의 一念이 바뀌면 일체가 바뀐다' 이것이 一念三千(일념삼천)입니다 今世에 부처의 敬愛(경애)를 열어 이 一生으로 `永遠'이 決定되는 것이 一生成佛(일생성불)입니다

壽量品을 배운다는 것은 부처의 眞髓(진수)를 배우는 것이고 生命의 眞髓를 배우는 것이며 自身의 `眞實된 모습'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無明(무명)이며 迷惑(미혹)이며 괴로움 입니다 암흑의 世界입니다 거기에 `希望의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壽量品입니다 그것을 `人間革命'이라합니다

世界를 바꾸기 위해서는 自身이 바뀌어야 합니다 根本은 生命觀에, 生死觀에, 自己觀에 있습니다

이 生死라는 問題에 根本的 指針(지침)을 附與(부여)하는 것이 法華經의 壽量品입니다 `生命의世紀'란 `人間革命의 世紀'입니다 壽量品의 `永遠한生命'을 근저로 한 大文明이 꽃피는 世紀인 것입니다


佛敎의 眞髓는 自己自身의 決意와 努力으로 스스로 열어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일어 선다 스스로 바꾸고 社會를 바꾸고 國土까지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一念三千(일념삼천)입니다 觀念論이 아니다 매달려 약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잘났다는 교만한 利己主義도 아니다 自己 속의 커다란 生命力을 萬人속의 커다란 生命力을 自身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佛法입니다

그러한 佛法의 眞髓를 實踐해 왔기에 SGI는 全世界로 佛敎史의 奇蹟(기적)입니다 이 佛法 興隆의 에너지 根源은? 廣宣流布로 前進하는 師弟의 精神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確信합니다 佛敎가 衰退(쇠퇴)했을 때는 師弟의 精神이 없었다 人間釋尊을 잊었을 때 佛敎는 人間의 삶에서 師弟의 길 이 없어져 그 結果 佛敎의 墮落(타락)이며 權威化(권위)입니다 닛켄종을 보아도 佛法을 이용할 뿐입니다 法滅(법멸)입니다 代表的인 전형입니다 釋尊이 깨달은 永遠한法 즉 永遠한 부처는 永遠한 大生命 이었다 釋尊도 久遠原初의 부처를 스승으로 하여 人間釋尊은 人間그대로 부처가 되었다 그것이 久遠原初의 自受用身(자수용신)이며 南無妙法蓮華經입니다 부처는 常住不滅이지만 진지하게 法을 구하고 法을 행하여 상주차설법의 부처를 만날 수 있다고 이것이 양의병자의 비유입니다 永遠한 妙法을 행하여 永遠한 부처를 己心(기심)에서 볼수 있다 이것이 釋尊이 남긴 유훈이다 現實에서 永遠을 보라! 內在(내재)에 즉하여 초월을 구하라! 그 자리에서 宇宙적인 것을 열어라! 이것이 發赤顯本의 마음입니다 人間이 人間 自身을 無限하게 넘어서는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大聖人은 御本尊을 도현하시어 末法의 범부가 妙法을 봉창하여 상주차설법의 부처와 일체가 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御本尊을 수지하고 廣宣流布를 하면 우리들 生命에 상주차설법의 永遠한 부처가 용현합니다 시시각각의 顯本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發赤顯本하는 것입니다 久遠의 大生命을 己心(기심)에 솟아나게 하여 廣宣流布로 前進한다 그 자체가 壽量品을 몸으로 읽는 것과 통합니다 그것을 蘇生시킨 大聖人의 人間主義입니다 大聖人 佛法이야말로 末法 萬年을 비추어가는 人間宗(인간종)인 것입니다


大聖人은 壽量品의 發赤顯本이 없으면 진실한 一念三千이 되지 않는다 그 究極(구극)은 一念三千입니다 나의 己心이 大宇宙와 永遠히 일체임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永遠한法 즉 부처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說明하는 것이 發赤顯本이다 廣宣流布를 위하여 그것이 壽量品의 마음이다 宇宙的 스케일로 今世의 人生을 주시하며 깊은 生命을 自覺하는 것입니다 人類의 生命도 永遠히 계속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면 핵폭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죄업인가를 알게 된다 戰爭은 하지 않고 사이좋게 平和롭고 幸福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 人類가 부처이기에 살인도 환경파괴도 할 수 없다. 이 마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 法華經입니다 平和의 메시지이며 人類의 敬愛를 끌어올려 주는 열쇠입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병이나 가정 苦惱로 信心하기 시작했지만 久遠의 使命을 느끼고 했다는 사람은 없다 그 煩惱(번뇌)를 타고 넘어 確信을 하고 行學이 進展되면서 自身이 過去에 廣宣流布를 맹세하여 今世에 태어났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今世는 짧다 永遠에서 보면 一瞬(일순)이다 今世에 佛界의 生命을! 그러기에 努力하라는 것입니다 利己主義가 아닌 廣宣流布를 위하여 그것이 本門의 信心입니다 九界즉佛界입니다 信心- 佛因이 즉 그대로 佛果인 것입니다 信心 그 자체가 佛界인 것입니다 信心의 一念에 佛因도 佛果도 구족 되어 있습니다 인과일념의 종 입니다 一念三千은 전 宇宙的 스케일입니다 눈앞이 아찔할 정도의 큰 스케일입니다 三世諸佛은 모두 이 己心에 태양을 떠오르게 하여 成佛 했던 것입니다 大聖人은 妙法을 봉창하면 쉽게 부처가 된다고 하는 (御書554쪽)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佛敎의 人間化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佛法인가!

얼마나 훌륭한 우리들 人生인가!

얼마나 훌륭한 寶物을 大聖人은 人類에게 주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