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광의 뉴-드림(지식,쉼터,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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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불교의 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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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 .SGI

2008. 4. 18.

 

□ 사찰 위주로 가야불교 분석

 

은하사(옛 서림사, 금강사)


 ○ 창건 : 김수로 왕 창건

 ○ 근거 : 현판

       장유화상이 수로왕비인 허황옥의 형제이고 그 이름은 허보옥이 라고 기록되어 있다

 ○ 특이사항 : 인도에서 온 장유화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승려이자 인도의  남방불교를 우리나라에 전파한 인물(우리나라최초 불교 유입 근거)

 

장유사 (김해 장유면 불모산)


 ○  창건 :

 ○ 근거 : 장유암 아랫 쪽에는 장유화상이 열반에 들기 전까지 수행했다는 움막터가 남아 있다. 김해시 장유면이란 지명과 장유산 불모산, 장유화상의 사리탑, 기적비등이 그것이다

 

모은암(무척산)


. ○ 창건 :

○ 근거 : 가야 제2대왕인 거등왕이 어머니인 허황옥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은 절이다(가야불교의 성격을 말해주는 유물이 모은암 경내 석굴에 모셔진 낭가(남근)가 그것인데  이 남근신앙은 인도의 밀교에서 흔히 볼 수 있음)

 ○ 특이사항 : 거등왕은 또한 아버지인 수로왕을 기리기 위하여 부은암 (삼랑진)을 짓고 자식을 위하여 자암(김해한림, 봉화산 뒤산이 자암산으로 여기에 자암이 있었다고 전함)


     또한 모은암 위 해발600m 지점인 무척산 정상부에는 천지라는 인공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은 김수로왕이 죽어 장사 지내려하자 지금의 왕릉터에서 물이 자꾸 솟아올라 이곳에 연못을 파자 그 물이 줄어들어 장사 지낼 수 있었다는 전설의 연못으로 아무리 가물어도 이 천지못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칠불사(지리산)


 ○ 창건 :

 ○ 근거 :허황옥의 7왕자가 여기에서 성불해서 붙혀진 이름. 칠불사 대웅전에는 부처님과 함께 허왕후의 7왕자가 성불한 모습이 모셔져 있다


○ 특이사항 : 칠불사 바로 아래에는 영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영지에는 허왕후와 7왕자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구전 되어지고 있다.

    왕후는 자기 곁을 떠난 7왕자가 보고 싶어 오빠인 장유 화상에게   만나게 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번번히 거절 당했다고 한다.그러던 어느날 성불한 7왕자는 어머니의 간청에 못이겨 연못에다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고 한다. 연못에 비친 아들들의 모습을 보고는 허왕후는 발길을 돌렸다고 전한다

 


   허황욱 왕비능(김해시)


 ○ 근거: 허왕후 능침 앞에 서 있는 비석에는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 허 씨릉' 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주태후가 문제다.   보주에서 온 왕비라는 뜻인데 그러면 보주는 어디란 말인가? 보주는 옛날 중국의 한 지명이었다. 중국 후한 때의 역사서인 후한서를 찾아 보았더니 당시 그 땅 이름은 촉 이었는데 그 촉 땅에 살고 있던 토착민들, 즉 남만(南蠻)들이 중앙정부에 대항해서 두 번의 봉기를 일으킨다.  그런데 그 주동자의 이름이 허성(許聖) 이었다. 그러니까 후한 때 보주땅에 허씨 성을 가진 집단이 있었는데,  그들이 첫 봉기를 일으킨 때가 기원후 47년이고 허왕후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때가 기원후 48년 이었다.

           정확하게 역사의 톱니가 들어 맞는 것이다." 인도 아요디아가 멸망한 후 그 후예들이 중국 보주 땅으로 건너가는데  그곳에서 기원 후 47년에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그 여파로 기원후 48년에 허왕후 일행이 가야로 왔다는 것이다.

 :파사석탑(인도 야유타에서 남방불교 유입근거)

 

 


  해은사(김해분성산소재)


○ 근거 : 허황옥과 장유화상이 금관가야에 무사히 도착한 다음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로 지은 사찰이며 전하기는 한반도에 불교가 최초로 들어온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 유물: 봉돌, 남자에게 재복, 여자에게 생남, 석존 진신 사리탑

 

  만어사(삼랑진소재)


 ○ 창건 : 가야시대인 46년 김수로왕이 창건

 ○ 근거: 전설에 의하면 만어산의 옛이름이 자시산이라했는데 근처 옥지라는 연못에 못된 독룡 한 마리가 살면서 못된 짓을 하고 있었는데 수로왕이 자시산에 큰절을 창건하여 그 낙성식에 참석하러 자시산으로 행차를 하던 중 백성들이 몰려와 독룡의 폐단을 고하고 퇴치해 줄 것을 청해서 왕은 부처님께 기원하자 부처님께서 옥지의 독룡을 불러내어 꾸짖자 독룡왈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것이 소원인데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그동안 해꼬지를 하였다고 하고 이제 부처님께서 제자로 받아 주신다면 다시는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하자 너그러운 부처님은 쾌히 독룡을 제자로 받아주었다..이런 소문이 멀리 동해 용궁까지 전해지게 되었는데..그곳 용왕의 아들 역시 평소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것이 소원인지라 못된 독룡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자기도 못될 것이 없다 생각하여 수만 명의 물고기 부하들을 이끌고 이 자시산 와서 제자 되기를 간청하였다..그리하여 자시산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불공을 드리며 불도를 닦게 되어 자시산은 만어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수로왕이 창건했던 절은 만어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만어사 근처에는 물고기 형의 온갖 바위들이 널려 있음

 

           만어산 어산불영

 

            만어산 정상 바로 밑에 있는 신라의 고찰 만어사 앞 널찍한 너덜지대 바윗덩이들을 가리킨다.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너비는 약 100m, 길이는 500m쯤 되며 두드리면 범종의 그것과 흡사한 소리가 남

 

            만어사삼층석탑 (고려중기.보물 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