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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祈願)의 방법 -기원이 모든 것의 근본(根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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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 .SGI

2010.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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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祈願)의 방법 -기원이 모든 것의 근본(根本)★   

池田선생님은 “광선유포(廣宣流布)를 기원하든, 자신의 숙명전환(宿命轉換) 및 여러 가지 소원을 기원하든, 단지 어본존(御本尊)을 믿고, 한결같이 기원해 간다. 그 실천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 일점에서 본다면, 다른 것은 모두 지엽(枝葉:중요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기원하는 것이 근본이며, 다른 것은 지엽(枝葉)이 되는 것이다. 단지, 근행(勤行)하고 제목(題目)을 부르고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 것이 아니라, 신심강한 기원이 중요한 것이다.

¤ 祈願은 구체적이라야 이루어진다.

「기원」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池田선생님은 -기원은 구체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확실하게 일념을 정해서, 구체적으로 기념해간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어본존에게 감응하여 「事의一念三千(사의 일념삼천)」의 법리(法理)에 따라 우주(宇宙)의 모든 차원의 움직임이 기원의 실현을 위해 회전을 시작한다. 묘법(妙法)을 믿고, 행(行)하는 자의 기원(祈願)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것도 기원하는 사람의「강한 일념(一念)」이 있을 때 만이다. 「강한 일념은 목표로 하는 바가 명확하고 구체적일 때에만 생긴다. 」고 말씀하시고 있다.

「이렇게 되면 좋겠다.」「이렇게는 안되나?」라는 약한 일념으로 창제(唱題)를 해도 기원(祈願)으로는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주세요」라고 하는 추상적, 관념적인 기원도, 진짜의 기원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명확한 결의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서 제목을 부를 때만이 강한 일념(一念)으로 「기원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행선지와 계획을 정해서 전진을

牧口선생님은 자주 “목적은 수단을 낳는다. 애매모호한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이 명중할 리가 없다”고 지도하셨다. 결의(結義)와 목표(目標)가 애매한 신심(信心), 활동(活動)에서는 결코 명확한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행선지」를 정해, 언제까지 간다는 「계획(計劃)」을 세워서 「행동(行動)」 해야만 예정대로 목적지(目的地)에 도착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에 갈까 헤매며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행선지가 정해져도 언제까지 갈 것인가, 구체적(具體的)인 계획을 세워 행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목적지(目的地)에 다다를 수 없다. 목적지를 향해 출발해도 도중에 "힘드니까"라며 지겨워지거나,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라고 포기해서 전진(前進)을 멈추어 버리면 중도반단(中途半端: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으로 끝나 버린다.

신심(信心)의 실천(實踐)에서도 「언제까지」「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행선지 」와 「계획」을 정해서 「행동한다」-기원하고 움직일 때만이 「목적지에 도착」-결정한대로의 「결과(結果)와 공덕(功德)」이 나오는 것이다.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대충 걸어서 돌아오는 것은 「산보」이다. 결의(結義) 와 목표(目標)가 애매한 신심(信心)의 자세(姿勢)는 「산보신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이 「변하는 목표」-해결해야할 것, 숙명전환 해야할 것, 변혁해야만 하는 것, 실현하고 싶은 것 등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며, 그리고 난 후에, 자신이 변하기 위한 「활동(活動)」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활동(活動)의 결의(結義)와 목표(目標)를 정하고, 자신이 변하는 목표가 애매하면 활동의 결과가 나와도, 자기자신이 변하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하기 때문이다. 「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멋대로 행동한다면 「숙명(宿命)의 폭주족」이 된다.

또한 결의(決意)하고 목표(目標)를 정해서 실천(實踐)을 시작해도, 도중에서 그만두어 버리면 결과(結果)는 나오지 않는다. 결의한대로 실천을 해야만 명확한 실증(實證)이 생긴다. 「결의(結義)」의 「지속(持續)」이 「실증(實證)」을 낳는 것이다. 그리고 공덕(功德)의 「체험」을 쌓아올릴 때만이 「신심은 깊어진다」 는 것이다. 「활동체험(活動體驗)」 밖에 없으면 「信」은 깊어지지 않고, 오히려 「不信」이 되기 싶다.

¤ 강한 기원(祈願)은 불가능(不可能)을 가능(可能)케 한다.

日蓮大聖人은, 아무리 세상이 혼란(混亂)하더라도, 각각을 법화경(法華經), 십나찰(十羅刹)이여 도와주소서라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듯, 마른땅에서 물을 짜내듯 강성하게 기원하며 - 아무리 사회가 혼란할지라도, 여러분의 일을 법화경(御本尊)과 십나찰(十羅刹(諸天善神))에게 도와주십시오라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듯이, 마른 땅(사막)에서 물을 뿜어내듯이 강성하게 기원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셨다.

당시 대성인(大聖人)은 사도유죄중으로, 가마쿠라에 남겨진 제자(弟子), 단나(檀那)에 대해서도 탄압의 폭풍이 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신도의 중심으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던 시죠깅고의 신변을 마음으로부터 걱정하여 흠뻑 젖은 나무에서도 불을 피워 보인다. 말라빠진 사막과 같은 대지에서도 물을 짜내어 보이 겠다고 하는 강한 일념(一念)으로 여러분의 일을 어본존(御本尊)에게 기원(祈願)하고 있습니다.라고 강하게 격려해주시고 있었던 것이다. 문하를 생각하는 어본불(御本佛)의 대자비(大慈悲)가 강하게 전해져오는 어문이다.

¤ 묘법(妙法)에 南無(귀의)할 때 무량(無量)의 지혜(智慧)와 힘이 나온다.

또한 이 어문은 "어본존(御本尊)을 대하는 기원(祈願)이라고 하는 것은 일대사(一大事)의 때(중대한때)에는 이러한 일념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가르쳐주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池田선생님은 이 어문에 대해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낸다. 마른 대지(大地)에서 물을 낸다. 이것이 일념(一念)의 힘이다. 묘법(妙法)의 힘이다. 신심(信心)의 힘이며, 전진의 힘인 것이다. 일반적으로도 「절대로 이긴다」 라고 정한 쪽이 이긴다. 이 일념(一念)이 한없는 힘을 끄집어낸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커다란 곤란(困難)과 간단히 해결 되지 않는 고민(苦悶)에 부딪쳐 어떻게도 안 된다라고 할 때에는 어본존에게 기원(祈願)하는 수밖에 없다 라고 정하고 - 극단적인 것 같지만 「무리한 일이지만」 「무리한 것이야말로」 - 어본존에게 「해결해 주십시오」 라고 강하게 기원하는 것이다. 기원의 일념이 강하면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쩐지 무리한 것 같다」 라고 생각하고 기원하는 것은 「御本尊 不信 」이 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 池田선생님은 또 『기원(祈願)하고, 노력(努力)하고 「어본존에게 맡긴다」 라고 하는 대확신(大確信)이 중요하다. 마음으로부터 묘법(妙法)에 南無(귀의)하면 무량(無量)의 지혜(智慧)와 힘이 나온다. 불가능도 가능(可能)하게 되어 간다. 어디까지나 기원이 근본이다. 기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방법론(方法論)으로 가게되는 경우에는 공전하여 길이 막혀버린다.』 라고 지도하시고 있다.

묘법(妙法)에 「南無(귀의)」 한다는 것은 「생명(生命)을 맡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즉 어본존(御本尊)에게 「기원하고 맡긴다」 라고 하는 것이 「南無(귀의)」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어본존에게 귀의(南無)한 때에는 無量한 智慧와 왕성한 생명력(生命力)이 용솟음쳐,「불가능도 가능」케 되는 것이다.

- 신심(信心)하고 있으면서도 「큰일났네, 어떻게 하지」라고 방법론(方法論)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공전으로 앞이 막히기만 하겠지요. 그것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고 「헤매고 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심으로 해결하려고 정하고, 실천(實踐)하는 것이 신심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인 것이다. 일단, 방법론을 전부 버리고 기원할 때에 길이 열리는 것이다.

¤ 신심(信心)이 약하면 대공덕(大功德)을 받을 수 없다.

日蓮大聖人은 「부인(婦人)의 기원(祈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법화경(法華經)을 의심(疑心)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도 신심(信心)이 약하기 때문이겠지요(중략)- 기원(祈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화살이 강해도 활(活)이 약하고, 대검(大劍: 좋은 칼)이라도 쓰는 사람이 겁쟁이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코 법화경(法華經)의 탓이 아닙니다.」 라고 하셨다.

시죠깅고에 대해서, 「부인인 니찌간뇨의 기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법화경(어본존)을 의심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신심(信心)이 약(弱)하기 때문이다.」 라고 지도하시고 있었던 것이다.

- 기원(祈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신심(信心)이 약하기 때문

'이렇게 신심(信心)하고 있는데도, 왜 기원(祈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라고 의심(疑心)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공덕(功德)이 나오지 않는 것은 결코 어본존(御本尊)의 탓이 아니라 자신(自身)의 신심(信心)이 약(弱)한 탓이라고 반성(反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라고 해도 「어떤 일념으로」 열심히 해왔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신심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라고 의무적(義務的), 형식적(形式的)으로 타성에 젖어하고 있다면 진짜의 공덕(功德)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부인이, 백만번 창제(唱題)를 하고도 실의에 빠져있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백만번 창제를 하는 것이 목적(目的)으로 되어, 의무적으로 창제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아무 것도 「祈願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목(題目)을 올리고 있는데,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고 오히려 어본존(御本尊)을 의심(疑心)하게 되어 실의에 빠진 것이다. 그후 발심(發心)한 부인은 결의(決意)와 목표(目標)를 명확히 하여 기원하던 중 오래된 고민이 순식간에 해결되어 있었다.

¤ 信없는 唱題는 참된 唱題로 되지 않는다.

니찌간상인은, 「(어본존)을 믿지 않고 묘법(妙法)을 봉창(奉唱) 한다는 것은, 제목(題目)을 올린다고 말할 수 없다. 「제목(題目)을 올리면서도 올리지 않는다.」 라고 말할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신심(信心)이 없이 그저 형식적(形式的)으로 제목(題目)을 올리고 있는 것은, 「제목(題目)을 부르고 있어도 제목(題目)을 부르고 있지 않는 것이 된다.」 라는 엄격한 지적이다.

池田선생님은, 「막연하게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기원(祈願), 의무적(義務的), 형식적인 근행(勤行). 창제(唱題)- 그것은 신심(信心)의 타성(他姓)이 나타난 것이다. 타성의 신심은, 타성과 공허의 회전을 낳는다. 관념적인 또는 전진하지 않은 기념(祈念)으로는 명확한 결과(結果)는 나오지 않는다. 광포(廣布), 일가(一家)와 자신(自身)의 일에 관해, 끊임없이 명확하게 구체성 있는 기원을 쌓아간다. 거기에 묘법유포(妙法流布)의 진전도 있으며, 숙명(宿命)도 타개되어간다.」 고 말씀하셨다.

일념(一念)을 정한 구체적이고 강한 기원으로 항상 공덕(功德)을 받으며 성장, 전진(前進)해 가는 용기(勇氣) 있는 신심을 해가고 싶다. 마음을 정하지 않은 타성(他姓)의 신심이나, 형식적. 의무적인 근행(勤行). 제목(題目)은 공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확실히 해두자.

¤ 얼만큼 제목(題目)을 올리면 좋은가

자주 어느 정도 제목을 올리면 좋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만큼 제목(題目)을 올리는 가는, 자신이 결정(決定)하는 것으로, 남이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자신이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만큼 제목(題目)을 올려가자 라고 정하고 실천(實踐)해가야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백만번 제목을 이라고 지도 받고 있지만, 그것도 형식적, 의무적으로 올린다면 좋다고 할 수 없다. 제목을 위한 제목이 되거나, 제목하고 있어도 구체적인 기원이 없으면 진짜의 공덕(功德)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정해서 끝까지 지속(持續)해 가면 결과(結果)가 나온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자라든가', '인천에 가자'라고, 우선 행선지(行先地)를 정하지 않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서울에 가자'라고 목적지(目的地)를 정했으면, 언제까지 갈 것인가 계획(計劃)을 세운다. 언제까지 도착할 것인지, 계획이 정해졌으면 거기서부터 어떠한 방법(方法)으로 갈까를 정한다.

가장 빨리 도착하는 것은 비행기로 김해 공항에서 약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KTX로 가면 약 3시간, 새마을로 가면 약 4시간이 걸린다. 자동차로 가면 고속도로로 5-6시간은 걸린다. 걸어서 가면 약 10일 이상 걸린다. 어떤 방법을 선택해도 그 방법을 관철해 가면 반드시 서울에 도착할 수 있다. 기원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