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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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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 .SGI

2016. 2. 17.

 

 

[청년에게 드린다]

 

초조해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합니다. 나무도 한달이나 반년만 보면 얼마나 성장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 30년이 지나면 몰라볼 정도로 큰 나무가 됩니다. 하물며 신심은 일생 아니 삼세(三世)를 위한 것입니다.

- 또 부처라고 해서 괴로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부처는 괴로움을 잔뜩 떠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 세계 일체중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조금 기원했는데 금세 좋아지면 신심은 깊어지지 않습니다. 참된 인간혁명도 숙명전환도 할 수 없습니다. 어본존이 일부러 고생시키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원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이 바로 인간혁명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에서 도망치지 말고 그 괴로움을 정면으로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숲을 빠져나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쓸쓸하면 그 쓸쓸함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쓸쓸함과 슬픔을 유흥 따위로 속이면 안 됩니다. 소모해 버리면 안 됩니다. 참고 또 참아 자신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운명은 밖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그대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빛나려면 불타올라야 합니다. 불타오르려면 번뇌라는 장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청춘 시절의 괴로움은 즉 빛입니다.

 

 사명, 무엇에 목숨()’사용(使用)하는가’. 나는 어떠한 ()’을 받고 우주에서 왔는가(使)’, 파견되었는가.

- 불법은 전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이라고 봅니다. 각각의 생명은 그 큰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가 일어나면 ()’, 그 파도가 우주에 녹아들면 (使)’입니다. 생도 사도 우주와 일체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려면 전 우주가 찬성하고 전 우주가 협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전 우주가 축복하며 보내준 생명입니다.

- 생명의 존귀함은 평등합니다. 생명에는 서열이 없습니다. 생명에는 각기 개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생명도 전 우주와 똑 같이 존귀합니다. 전 우주의 생명과 일체이고 무게도 똑같습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목숨은 모든 재보(財寶) 중에서 으뜸가는 재보다.”(어서 1596, 통해)

목숨은 전 우주의 재보로도 살 수 없다고 부처는 설하셨다.”(어서 1059, 통해)

하루의 목숨은 전 우주의 재보보다도 존귀하다.”(어서 986, 통해)

그러므로 절대로 자살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폭력을 휘두르면 안 됩니다.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 안 됩니다. 남을 괴롭히면 안 됩니다. 존귀한 생명에 상처 입힐 자격 따위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자신은 왜 태어났는가. 청춘 시절은 그것을 탐구하는 시기입니다.

청춘은 2의 탄생의 때입니다. 1의 탄생이 육체의 탄생이라면 청춘 시절은 참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때입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그래서 고민합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처럼 발버둥 칩니다.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발버둥 치면서 기원하고 생각하고 배우고 벗과 대화를 하고 지금 해야 할 일에 부딪쳐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반드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사명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스위스의 철학자 힐티는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본디 많은 고통을 참고 견뎌낸 사람들로 국한된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참된 기쁨과 전혀 다른 단순한 쾌락을 경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참된 기쁨을 알 수 없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 “인생의 행복은 어려움이 적다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어려움을 늘 승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훌륭히 극복하는 데에 있다.”

모든 어려움을 유유히 이겨내는 데에 인생의 행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불법의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와도 통하는 인생관입니다.

 

삶이 어쩐지 울적할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무언가에 속박되어 있다고 느낄 때, 모든 것이 수동적일 때, 어쩐지 방황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럴 때일수록 수동적인 일념을 바꾸어 , 이 길을 관철하자!’ ‘오늘의 사명을 관철하자!’고 정하면 그 일념에 참된 이 옵니다. 꽃이 핍니다.

 

관철한다는 것은 우리로 말하면 제목을 올리자, 한 사람 또 한 사람에게 불법을 말하자는 실천입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구체적인 길을 알고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지금 시대는 모두 고생을 피하려고 합니다. 고생하는 것을 시대착오처럼 생각합니다. 또 고생하면 손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고생은 전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지금부터!’입니다. 불법(佛法)도 현당이세(現當二世)의 정신을 가르칩니다.

가치 있는 인생 특히 가치 있는 청춘을 여는 것은 지금까지 어떠했느냐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하는 힘차고 적극적인 일념입니다.

 

청춘 시절에 정신을 철저히 단련하고 자신을 끝까지 연마하면 그것을 토대로 어느 시기에 이르러 정신면에서도 물질면에서도 꽃을 피웁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올바른 궤도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요. 성적이 나쁜 사람, 집단 괴롭힘을 당한 사람, 배신당한 사람, 실패한 사람, 병이나 경제고로 괴로워한 사람이 오히려 그 만큼 남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지 말아야합니다. 지지 않으면 괴로워한 만큼 장래 반드시 커다란 꽃을 피웁니다.

인생은 마지막 몇 년 동안에 어떤 행복을 느꼈느냐 로 결정된다.”

 

사회에서 안 되면 40대가 되면, 50대가 되면, 70대가 되면 하는 식으로 늘 큰 뜻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금세에서 못하면 내세에서 하겠다는 영원한 생명을 응시하면서 달관했을 때 불법이 됩니다. 가장 큰 뜻을 품어야 불법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발버둥 치면서 제목을 올리고 1밀리미터, 2밀리미터라도 좋으니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끝가지 살면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어느새 정글에서 빠져 나온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괴로워한 만큼, 제목을 올린 만큼 인생은 깊어집니다.

그것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영양소입니다.

 

하나는 불평을 일삼으며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리고 패배하는 삶입니다.

-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동정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손해를 입고 뭐라고 해도 변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 또 하나는 환경이 어떻든 자기 길을 스스로 열겠다는, ‘지지 않는 혼을 불태우는 삶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스스로 정할 문제입니다.

 

나폴레옹은 환경은 무엇인가? 환경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입니다.

 

환경에 휩쓸리기만 하면 여러분 인생의 주인공은 환경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보잘것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인생을 결정하는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대저 정토(淨土)라 함도 지옥이라 함도 밖에는 없느니라. 오직 우리들의 가슴속에 있느니라. 이것을 깨달음을 부처라 하고 이에 미혹함을 범부라 하며”(어서 1504)

행복도 지옥도 모두 자기 가슴속에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기기 위한 신앙입니다. 또 불법은 이기기 위한 법칙입니다. 무언가를 위해 투쟁하고 무언가를 향해 전진한다. 이것이 행복의 본질입니다.

                                                                                     -  이케다다이사쿠 SGI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