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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 2018. 4. 5. 10:19




조선판 노사화합, 노주계(奴主契)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양반층을 향한 조선 민초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국가가 민중의 것을 수탈해 갈 뿐, 삶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는 기득권층을 해하려는 움직임이 꿈틀거렸다. 노비나 하층민들은 양반을 살해하려는 목적으로 각종 계(契)를 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력투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노비가 택한 방법은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이 시국에 활약한 것이 드라마 <추노>에서의 추노꾼들이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 조선의 양반들은 골머리를 썩었다. 귀한 재산인 노비가 도망을 치는 것도 문제였지만, 언제 돌변해 낫이라도 들고 달려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양반들은 선택해야만 했다. 더 짓누를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화합할 것인가. 이중 후자를 택한 양반들이 있다. 노비들에게 공동 기금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노주계(奴主契)’가 바로 그것이다. 




근대 노사관계로의 첫걸음

노주계에 대한 내용은 1741년(영조 17년) 여주 이씨 문중의 이희성이 노비 10명과 맺은 노주계 문서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총 벼 네 석을 마련하되 두 석은 이희성이, 나머지 두 석은 노비들이 갹출했다. 양측이 계를 만든 목적은 분명했다. 양반은 기득권층에 대한 노비들의 반감을 달래 그들을 안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노비는 자신들의 생활 여건을 향상하기 위해서였다. 



기금은 주인집 담장을 수리하거나 빈번한 잡역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는 데 쓰였다. 마땅히 노비들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고용해 대신 일을 시켰던 셈이다. 양반이 시키면 노비는 마땅히 따르는 게 조선시대의 주종관계다. 그런데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타인을 고용하게 된 것이다. 노주계는 출생 신분에서 비롯되는 양반과 노비의 관계가 노동에 따라 일정한 임금을 지불하는 노사관계로 진일보하게 되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주인과 노비의 상생 

양반은 자신의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 노비와의 상생을 택했다. 이러한 양반의 혁신적인 결단으로 노비들은 상전을 살해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최소한의 휴식과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노주계와 같은 상생의 조치가 없었더라면 조선왕조는 훨씬 더 빨리 무너졌을 것이다.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최소한의 존중과 상생을 추구했던 노주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기득권을 가졌던 양반들이 노비와의 공동 기금 조성을 주도하고 또 수용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명제가 적인 상식이 된 오늘날,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는 갑들이 있다면, 숙고해봐야 할 역사다.



* 참고 http://media.daum.net/v/20130217075206766



 

서로 상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윤리브리프스
잘 읽었습니다.
나으리님!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