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신 세계/[선사님 법문]

카치나 2012. 11. 11. 02:41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한 패륜아가 체포되었다. 일류 대학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아온 모멸감과 권위의식 때문에 전부터 죽이고 싶었다는 그의 진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황금만능의 풍조에서 오는 인간성의 상실이며 자본주의의 맹점이기보다는 생명의 귀함을 경시한 임신중절 수술의 인과응보가 아닌가 생각된다.


  인구의 과대한 팽창을 두려워 한 탓에 낙태 수술의 합법화를 추진하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다. 그 당시는 세계적인 추세로 카톨릭 교황청에서도 찬반양론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었다. 다행히 교황청의 불가(不可)하다는 현명한 의지로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임신중절은 한마디로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살인 행위이다. 생명의 시작이 의학적으로 확정된 어느 시점이 무슨 문제이든가! 그것은 틀림없는 살인 행위이다.


  등산길에 만나는 부인들은 대부분 중단전인 가슴에 어린이의 영(靈)이 빙의(憑依)되어 있다.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하면 본인도 모르게 의식이 집중되어 운기가 활발하게 되는 탓에 영(靈)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부인들이 유별나게 더 아픈 까닭은 유산(流産)의 후유증에서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낙태경험이 많은 부인은 어린이의 영(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평생을 괴롭힌다.

  원한에 찬 빙의령(靈)이 육신에 자리를 잡으면 경혈과 경락을 서서히 막아 기혈(氣血)의 순환을 방해하게 된다. 그러면 기운이 쇠(衰)하여 이것저것 병이라고 이름 하는 온갖 질병들이 나타난다.


 며칠 전 방문했던 카톨릭 신자인 부인의 경우에도 간경(肝經)의 기문혈에는 산월(産月)이 가까워 수술한 어린애 영혼과 또 초기에 지운 어린애의 영혼이 빙의(憑依)되어 있었다.

  외모도 깔끔한 미인형의 부인이 두터운 안경너머로 넘겨보는 시선이 부자연스럽다. 시력에서부터 심장과 신장 결석까지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한쪽 눈의 시력은 영영 돌아오지 않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신혼시절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애기를 몇 번 지운 탓이라며 죄책감보다는 수술 후유증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불교의 윤회설과 카르마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였다.

 그러자 “성당에서 진행하는 ‘유산된 어린이를 위한 미사’에 기도와 미사예물을 빠짐없이 하였는데 그것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까? ”하며 되물어온다.


  빙의령이란 전염병처럼 바깥의 오염에서 전염되는 것이 아니다. 전생이나 현생에서 맺은 원한이 시공을 초월하여 윤회하면서 본인에게만 따라다니는 카르마의 본체인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육식을 금(禁)하는 이유가 아무리 하찮은 동물의 영(靈)이라도 자기 자신의 영혼의 등급을 떨어뜨린다고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력을 위해 먹는 혐오식품의 동물령(動物靈)은 일반 가축에 비하여 악령의 파장이 높아 오랫동안 육신에 잔류하여 온갖 병을 일으키는 세균처럼 따라다닌다. 하물며 같은 인간의 원귀(寃鬼)는 그 방해하는 파장이 본인의 생명까지도 빼앗아 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영가천도란 법력이 출중한 맑음의 스승이라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으로 화려하게 제사를 지낸다거나 기도를 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중절수술로 인하여 건강이 악화된 부인은 애기들의 영혼을 천도시킴으로서 마음의 멍에에서 벗어나고 건강도 따라서 좋아질 수 있다. 건강이 좋아진다는 사실은 빙의령이 천도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습기 찬 곳에 곰팡이가 자라듯 언제나 양명한 햇빛과 바람이 항시 필요하다. 기복(祈福)의 신앙보다 원인의 제공자가 되지 않도록 생명을 중시하는 사랑과 자비가 생활 속에 깃들어져야 할 것이다.

 

                                                                                                                            [삼명선사 법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