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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ea(דורה) 2013. 11. 12. 06:17

BBC가 2006년에 120여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완성한 이 6부작 시리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던 로마의 탄생에서부터 지상의 1/4을 점령했던 전성기를 거쳐 쇠퇴 멸망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리얼리티로 로마의 역사를 손에 잡힐 듯이 보여준다.
폭넓고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고증을 거쳐 제작된 이 시리즈는 로마의 대표적인 영웅들을 중심으로 군사적 지략과 잔인성, 정권의 찬탈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탄탄한 출연진, 스펙터클한 전투 신을 통해 로마 제국 600년을 관통하는 6편의 흥미진진한 로마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이 프로그램은 전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고 선 굵은 역사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 자칫 딱딱하게 흐르기 쉬운 역사 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시에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시리즈는 영국 BBC를 비롯,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 한국 EBS 등에서 방송한 바 있다.

제1편 : 카이사르의 선택
제2편 : 네로 황제의 최후
제3편 : 유대인의 반란
제4편 : 그라쿠스의 군중 혁명
제5편 : 콘스탄티누스 대제
제6편 : 로마의 몰락


제1편 : 카이사르의 선택
고대 로마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카이사르일 것이다. 그는 부패한 귀족들의 손에 놀아나던 공화정부를 뒤엎고 스스로 종신 독재관에 취임, 사실상 제정 로마의 첫 황제가 되는 위업을 이룬 위인이다.

힙겹게 갈리아 정벌을 마친 카이사르는 공화정부 원로원과 대립하다가 결국 원로원의 명령에 불복하기로 결정하고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 마침내 정적을 휩쓸고 로마를 차지하게 된다. 한때 막역한 정치적 동지였던 폼페이우스 장군과 맞서게 되면서 겪는 고뇌, 오른팔이었던 부관 라비에누스의 배신, 병력의 열세로 결국 패할 수밖에 없었던 디라키움 전투, 그 고난을 넘어 결국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 군을 물리치고 로마에 재입성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제2편 : 네로 황제의 최후
네로는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잔혹하고 엽기적인 행각도 서슴치 않는 폭군 중의 폭군이었다. 그는 특히 로마 대화재 이후 원대한 도시 재건 계획을 세운 뒤 그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몸부림쳤는데, 그 뒤에는 예술과 아름다움을 지상 최대의 가치로 삼는 그의 심미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황제로서의 체면도 내팽개친 채 백성들 앞에서 노래하고 시를 읊는 공연을 펼쳤고, 심지어는 반란사태에 직면하자 노래로 적을 감동시키고 굴복하겠다며 창녀를 구성원으로 하는 군대를 편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살아서 신이 되고자 한 그의 야망은 기아와 굶주림에 지친 로마 백성들의 원성 앞에 물거품처럼 녹아버리고 결국 원로원에 의해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어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다. 한때 황제로 제국을 호령했던 그는 숨을 곳을 찾아 헤매다가 한낱 불쌍하고 가련한 한 인간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제3편 : 유대인의 반란
서기 66년 유대 지구에서 로마 통치에 항거하는 대규모 반란이 벌어진다. 네로 황제의 눈 밖에 났던 장군 베스파시아누스와 그 아들 티투스는 반란 진압의 책임을 맡지만 갈수록 거세지는 유대인의 저항을 제압하지 못한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반란 세력 안에서도 내분이 일기 시작한다. 제사장이자 혁명 정부의 지도자인 하난은 독립 보장을 조건으로 로마와 협상을 시도하려 하지만, 과격한 반군 지도자인 요한은 결사항전을 외치며 막아선다.

이 와중에 베스피아누스가 네로에 이어 황제로 즉위하면서, 아들 티투스가 반란 진압을 총지휘하게 된다. 티투스는 갈릴리 전투에서 포로로 잡아온 유대인 지휘관 요세푸스를 내세워, 유대인 최후의 보루 예수살렘 공세에 나선다.


 

제4편 : 그라쿠스의 군중 혁명
이야기는 카이사르의 시대를 넘어 로마 공화정 시대 말엽으로 돌아간다. 일반 선거로 국정을 운영하는 로마의 민주 공화정 시대는 5백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바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라는 청년 정치가의 개혁 시도 때문이었다.

로마의 오랜 숙적이던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라쿠스는 전쟁 이후 소작농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평민들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호민관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그는 귀족들이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농부들에게 재분배하는 법안을 제안해 통과시키지만, 이로써 부패한 원로원 사이에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다.

원로원은 그라쿠스가 공화정을 와해시켜 독재 군주가 되려 한다고 음해하고, 그라쿠스는 원로원의 계략과 민중의 오해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제5편 : 콘스탄티누스 대체
4세기 초반, 로마제국은 역사상 최대의 위기 가운데 하나에 직면했다. 제국 서방에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 동방에 리키니우스와 다이아 등 네 명의 황제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기 때문이다.

제국을 하나로 통일하고자 했던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뒤 동방의 황제, 리키니우스와 동맹을 맺고,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처음으로 공인한 밀라노 칙령을 공표한다. 하지만 리키니우스가 다이아를 무너뜨린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리키니우스마저 쓰러뜨리고 제국의 유일한 황제 자리에 오른다.

로마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업적이, 로마 황제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널리,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그 덕분에 기독교가 오늘날 서구세계의 주요한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6편 : 로마의 몰락
5세기 초반, 로마 제국은 로마인들이 야만족이라고 부르는 북방 부족들의 침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사납기로 유명한 훈족이나 반달족은 같은 야만족이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었다. 작은 부족인 고트족은 이들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나 결국 로마제국의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계속 도망쳐왔다. 이들의 지도자인 알라리크는 로마 국경 내에 부족을 위해 새로운 터전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트족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가 이를 지키지 않자 알라리크의 군대는 로마 외곽에 진을 치고 로마를 포위 공격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년 후인 410년, 결국 알라리크와 고트족 군대는 로마를 약탈하게 된다. 알라리크의 로마 약탈은 로마제국의 종말은 아니었지만 몰락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백년도 채 안 돼, 서기 476년 마지막 황제가 퇴위당하면서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