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자료/이집트 신전

Dorea(דורה) 2014. 4. 27. 06:03

람세스 3세 장제전 제1 탑문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카르낙 신전에 버금가는 신전이 있다면 아마 람세스 3세 장제전- 메디나트 하부ㅡ일 것이다  메디나트 하부의 유래는 신성한 지역에 바쳐 있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란 의미로 이집트 초기 기독교들에 의해 지어진 이름 이다. 메디나트 하부는 태초의 창조신 오그드아드가 묻혔을곳이라 추정하는 곳에 아메노피스1세에 의해 시작 되어 하셉수트, 투트모세3세가 동쪽의 카르낙에 버금가는 신전을 지으려 시도했고, 그후 람세스3세가 신전의 중심인 자신의 장례전(Mortuary Temple)과 주요건물을 지음으로써 수세기에 걸쳐 파라오들이 신전을 덧입혀 면적이 7000스퀘어 미터에 이르는 신전 콤플렉스가 되었다. 람세스 3세는 태양신에게 바쳐졌다. 신들의  나들 이 축제 때 카르낙에서 출발한 테베 3인방 신들은 카르낙을 대신한 신성한 곳인 람세스 3세 신전에 머물면서 하셉슈트의 아문 대 신전과, 하토르 여 신전을 방문하며, 다시소 생을 기다리는 수많은 영혼에게 회생의 힘을 부여한다. 이 신전의 벽면의 부조는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글씨를 새긴 것을 보면 약 20센티미터를 깊이 파서 건축된 신전의 돌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을 보면 쓴 웃음이 나온다.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군사 요새처럼 보이는 것이 누각(pavilion)이 있고 그 양옆에 벽면에 람세스 3세의 정복에 관한 군사적 테마가 있는 부조를 지나 오른쪽에 있는 것이 하셉수트 신전으로 알려져 있는 작은 신전이다. 이것은 최초로 아메노피 스 1세에 의해 세워지고 하셉수트에 의해 완성된 신전으로 후대에 많은 파라오가-투트모세3세, 아크나톤,호렘헵, 세티1세 그리고 프톨레미-그 흔적을 남긴 본래의 신전이다. 이어서 다시 제1탑문이 있고 그곳에   람세스 3세의 군사적인 주제를 부조해 놓았다. 제 1탑문을 지나면 커다란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는 오시리스의 형상을 한 람세스3세가 있고, 그 벽들에도 시리아 정복의 승리부조가 있다. 이 부조를 통해 영국의 고고학 잡지 K T M에 전쟁에 사용된 이집트 군대의 무기와 무기를 통한 살상율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제2탑문람세스 3세의 해양민족-가나안 족으로 오늘의 이스라엘,레바논,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 하던 사람들-을 정복한 내용이 있고, 제2광장은 신전축제에 대해 묘사할 뿐이 아니라 포로들을 신에게 바치는 장면이 깊이 새겨있다.

 

람세스 3세 장제전 탑문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라메세움 남서쪽1.5km 지점, 농경지가 끝나는 곳에 메디네트 하부의 웅장한 자태가 우뚝 서 있다. 아몬 신이 처음으로 출현한 대초의 언덕 자리에 이 신전을 건설하게 한 이는 람세스 3세 (기원전 1186~1154)이다. 이 유적지는 대체적으로 람세스 3세가 모델로 여긴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 라메세움을 모방하여 세워진 것으로 간주된다. 보존상태가 좋은 메디네트 하부는 ‘도시 신전’의 놀라운 예라 할 수 있다. 파라오의 대신전 외에도 다른 여러 신성한 건물들과 왕궁, 사제들의 거처, 신성호수, 나일강의 수위표, 작업장, 행정청, 선창, 창고, 도서관, 마구간 우물 등은 아직도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6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했으며, 재상이 여기에 자신의 사무실을 두고 법정을 주관했다. 메디네트 하부의 벽에는 부조가 다른 곳에 비해 깊이 새겨져 잇는데 그 이유 는 이곳을 허물어 돌을 다른 곳에 재활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탑문 위 천장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탑문 위 천장 독수리 벽화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탑문 위 천장 독수리 벽화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동쪽 요새문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탑문 안뜰 기둥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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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3세 부부상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Ramses Ⅲ, ?~BC 1156 이집트 테베)는 이집트의 왕(BC 1187~1156 재위)으로 3차례의 큰 전쟁에서 외국의 침입을 막아내어 재위 동안 대체로 국가의 평온을 유지했으나 재위 말년에는 내부 혼란과 쿠데타를 겪었다. 제20왕조를 세운 세트나크트(BC 1190~1187 재위)의 아들로 그가 왕위에 올랐던 시기는 제19왕조 말기에 이집트를 혼란에 빠뜨렸던 내란의 여파가 회복되고 있을 때였다. 재위 5년째 되던 해에 리비아 부족들이 연합해 자신들의 추장 계승에 간섭했다는 구실로 나일 강 삼각주 서쪽 지역을 침략해 들어왔다. 그전에도 리비아인들은 이집트 영토를 침범해와 이집트 제19왕조와 제20왕조 내내 골칫거리였는데 이들은 결국 삼각주 서부지역 전투에서 참패했다. 2년간 평화가 지속되다가 더욱 위험한 적인 해양민족 연합군이 바다와 육지를 통해 이집트를 침공했다. 이들은 소아시아와 지중해 섬 출신 이주민들의 연합군으로서 소아시아의 강대국인 히타이트 제국을 무찌르고 시리아를 황폐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람세스의 육군은 팔레스타인에서 이 침략자들의 전진을 막아냈고 삼각주를 흐르는 복잡한 수로망으로 적함을 유인해 가두었다. 이집트는 이 북쪽 침략자들을 막아냈으나 이들 가운데 두 종족이 가자와 카멀 산 사이에 있는 팔레스타인 해변에 정착함으로써 이집트는 더이상 시리아팔레스타인 지방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뒤 2년 남짓 평화가 지속되었으나 람세스 재위 11년에 리비아 부족들이 새로 연합해 삼각주 서쪽 지역을 침입했고 람세스는 리비아군 지휘관을 사로잡음으로써 이들을 물리쳤다. 이 마지막 전쟁을 치른 뒤 람세스는 이집트 사회를 직업에 따라 계급화했으며 테베 서쪽 마디나트 하부에 자신의 거대한 장제전(葬祭殿), 궁전, 복합도시 등을 세웠다. 또한 테베에 있는 신전 단지인 카르나크에 신전을 몇 개 더 지었다. 무역과 산업을 권장한 람세스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해안지방 푼트에 해양 무역선을 보냈고 시나이의 구리 광산과 이집트 남쪽 지방에 있는 누비아의 금광을 개발했다. 통치기간 중반기가 순조로웠던 반면 재위 말기에 람세스는 통치상의 어려움과 반역 음모에 시달렸다. 재위 28년경에는 하(下)이집트의 고위관리가 부정사건으로 쫓겨났다. 또 1년 뒤에는 테베에서 왕실 묘지를 짓던 일꾼들이 매달 배급되는 식량이 늦어지는 데 항의해 파업을 일으켰다. 중단된 작업은 이집트 전체의 책임을 맡고 있던 상(上)이집트 고위관리가 중재해 겨우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람세스 치세가 끝날 무렵 후궁 1명이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음모자들이 모두 재판받은 것을 보면 이 음모는 발각되어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나 람세스는 이 음모에 의해, 아니면 음모가 있은 직후에 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서상으로는 음모가 있었던 해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왕의 미라에도 아무런 상처가 없다. 람세스는 재위 32년 테베에서 죽었고 왕자 람세스 4세가 왕위를 이었다. (출처- 브리테니커 사전)

 

안뜰 반대편 람세스 3세 동상들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동상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동상들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제3광장과 지성소는 본래는 지붕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벽에는 다양한 주제의-음악도구, 보석, 옛 생활용품 등- 아름다운 부조가 새겨있다. 3광장을 가기 전의 오른쪽면은 해양민족과 연합한 불레셋(오늘의 팔레스타인)을 해전에서 패배시키고 남부 팔레스타인을 장악한 내용이다. 람세스 3세 이후 이집트는 이 지역의 통제권을 상실했고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요단강, 사해를 향해 세력을 확장했으며, 이 지역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과 충돌했다. 이 시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불레셋)의 내용이-사울, 다윗 그리고 골리앗- 성경에 나온다.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람세스 3세 장제전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사자머리의 세크메트 여신 조각상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파괴된 신전 뒷편 열주 기둥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파괴된 신전 뒷편 열주 기둥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파괴된 신전 뒷편 열주 기둥             (출처- http://blog.daum.net/gratuliere/133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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