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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rcola 2019. 2. 18. 06:40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釋奠)]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


[1]. 황사손은 환구대제, 사직대제, 종묘대제의 제사 주관자입니다. 엄밀하게 구분하면 성균관대의 경우는 정부측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자료가 등재되었는데, 황사손이나 환구대제.사직대제.종묘대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아직 등재되지 않았고, 민간의 백과사전에 환구대제.사직대제.종묘대제가 서술되어 있는 상황임. 그런데 종묘대제의 경우 종묘제례가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되어있고,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문화재재단에서 종묘대제에 대하여 서술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한편 일본이 항복하면서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경성제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어진 상태(그 후신이 서울대라 당연히 한국 영토에 주권없고 학벌없는 적산재산 형태의 국립 서울대에 불과함)가 되었습니다. 국제법상 국가원수들이 서명하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은 상위법이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에 해당됩니다. 상위법 우선 원칙에 따라(포츠담선언에 따라 일본의 주권은 일본 본토등에 한정되고 한국영토에 없어진 형태가 됨), 하위법인 미군정령으로 경성제대 후신을 국립 서울대로 하였어도 하위법이 상위법을 극복할수는 없기 때문에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당연히 한국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는 적산재산 형태의 일본잔재 국립대학일 뿐입니다. 또한 대한제국 당시에도 강압에 의한 을사조약이 국제법상 무효라는 게 대한제국 입장이고 그 이후의 한일병합도 강제에 의한 불법이어서, 을사조약.한일병합 이후에 설립된 경성제대(그 후신이 서울대) 및 기타 왜놈학교.일본 강점기 포교종교들은 원천적으로 한국에 주권없는 불법 강점기 잔재일뿐입니다.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경우, 일본이 왜곡시키고 경학원에서 명륜전문학교로 강등시키고 폐지까지 하는등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상태에서 모진 시련을 겪었으나, 해방후 미군정당시 성균관을 복구키로 하는 법령이 발표되었습니다. 곧 이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김창숙)가 열려 유림들의 결의에 의해 성균관대 설립결의를 하여, 이는 향교에 관한 법률등으로 성균관의 최고대학 기능은 성균관대가 승계하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문묘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되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정통승계는 교육기능에서 성균관대임은 분명하여, 성균관이 별도로 대학설립을 하지 않아왔습니다. 성균관대의 경우 향교에 관한 법률등으로 보호받을때는 실정법으로, 향교에 관한 법률로 보호받지 못하는 시기에는 관습법 형태로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으로 이어져왔습니다. 이에 반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경우는, 해방당시부터 상위법인 포츠담언에 따라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는 일본 강점기 잔재(한국 영토에 주권은 없는 적산재산 형태의 국립 서울대에 불과함)로, 지금까지 대중언론에서 그 뒤의 카르텔을 형성시켜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세를 넓혀 사설 입시기관등에서 성균관대(국사에서 가르치는 성균관의 정통 승계 대학)에 도전해오고 있습니다.             


일본 강점기를 거친 해방한국에서 성균관대와 유교의 기득권은 대중언론의 도전과 달리, 정통 스타일로 교과서등을 통한 학교교육(국사 성균관, 세계사 유교, 윤리 유교교육, 한문.국어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 물론 조선성명 복구령이나 설날.추석의 유교명절 제사.세배, 대보름.추석의 달맞이같은 유교 종교제의, 한식.단오.칠월칠석.동지같은 유교명절의 지속, 24절기 사용의 지속, 문중별.가족별 제사등이 한국인의 유교적 전통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침체되고 인도는 영국 식민지로 살아가고, 신대륙의 미국은 영국식민지에서 독립한 이민자들의 나라로 존재할때(서유럽이 세계를 지배할당시), 쓰여진것으로 판단되는 세계사의 경우[세계사 뿐 아니라, 영.미권에서 이어지는 라틴어 교습,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되는 라틴어, 학교교육의 영어 및 제 2외국어, 수학, 지리(국토지리, 세계지리), 정치.경제, 사회문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음악.미술등 학교교육에서는 여전히 서유럽 학자들의 이론이 교육되고 있습니다]를 보면 수천년동안 세계적 역사를 가진 중국의 위상을 강하게 반영시켜서 교육시켜오고 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인 황하문명, 세계종교 유교, 중국의 전통적 대학들인 태학.국자감(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 교황제도등도 세계사의 중요 교육내용들임), 세계의 4대 발명품으로 중국의 종이.화약.나침판.인쇄술등을 교과서를 통한 한국 학교교육은 가르쳐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유교가 타격받았지만, 세계사를 통하여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는 그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다시 중국이 공자대학당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같은 유교 전통명절을 공휴일로 하는등 자기들의 유교 전통문화 보존에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 공산화로 인한 세계종교 유교의 타격은 아직도 상당히 남아있습니다만...


필자는 1962년생으로 아버지.어머니가 모두 양반입니다. 호적.주민등록.족보에 올릴 수 없이 아버지와 내연관계를 가져오던 유모도 있는데(일본 강점기 초등학교 3학년 중퇴정도의 유모학력), 필자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대수롭지 않게 보던 유모의 행태가 필자를 당황하게 하는 수준까지 겪어봤습니다. 유모의 뜨개질 재주로 부녀자들을 모아 수편물을 유럽.미국.일본등에 수출하던 국내 수출업체들을 많이 접해보았습니다. 수출지상주의 당시였지요. 일본을 통하여 수출하던 국내 수출업체와 거래하던 필자 집안에, 유모의 정신세계로 일본이 남기고 간 일본 불교가 스며들기도 하였습니다.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이 시중에서 발호하는데 그럴만도 하였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파평윤씨 양반 후손이고 어머니도 분명 양반집안인지라, 설날.추석의 유교 명절 및 조상제사의 유교전통은 유모와 상관없이 이어져왔습니다. 일본 불교의 지속은 한국이 일본 강점기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와서 그런것입니다. 일본 강점기를 청산하지 못해온 해방 한국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각종 왜놈학교 후신 대학교들, 왜놈학교 후신인 중.고교들이 주권없이 시중에서 발호해 온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과서를 통한 학교 교육은 필자[윤진한. 1962년생, 성균관대 1983학번. 전주 신흥고를 1981년 졸업하고 지방 국립대 법대를 다니다가 다시 대입시험을 봐서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주간) 1983학번이자 성균관대 퇴계 장학생이 되고 1988년에 졸업하여 LG.쌍용등에서 근무한 경력]가 중.고교를 다니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국사 성균관, 세계사 유교, 윤리 유교, 한문.국어의 삼강오륜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성립한 유교입니다. 동아시아 유교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수천년 역사와 전통은 유교 명절과 중국의 한자사용, 24절기, 유교 최고대학(중국.한국의 태학.국자감, 베트남도 국자감이 있던 나라임)등 아주 많습니다. 일본은 막부시대에 기독교에 대항하며 전 주민을 절에 등록시킨이후 불교국가로 전환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중언론이 아무리 도전해도 교과서를 통한 학교교육을 능가할수는 없습니다. 이에 필자는 교과서를 통한 학교교육을 반영하여 한국의 대학을 판단하고 Royal대학을 확인하여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문필가이자 사상가로...    


해방후 미군정당시 법으로 복구시킨 성균관(성균관대로 정통승계). 일본의 항복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국내 주권이나 학벌은 없어왔음. 누구나 등록만 하면 신문을 만들 수 있던 시대의 대중언론에서 출발하여 지속적으로 성균관대에 대항해 온 서울대.연세대.고려대(또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카르텔일뿐! 한국의 Royal대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임. 그리고 성대 다음 교황윤허 예수회의 서강대도 Royal대 예우입니다.



[2].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1]. 해방 후 미군정 당시의 성균관 복구과정 법령과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교육부문의 성균관대 설립과정. 해방후 최고대학 교육기능은 성균관대, 제사기능인 석전(釋奠)은 성균관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름.  


해방후 미군정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이 대거 귀국하였을 때 전국 유림대회가 열렸는데, 고문에 이승만.김구선생, 위원장에 독립투사이신 유림 김창숙 선생이 추대되어 미군정이 복구시키기로 한 성균관에 대자를 더 붙여 성균관대 설립(복구형태)등을 결의합니다. 


대학관련, 확실하다고 인용할 수 있는 이론은 교과서(참고서포함), 백과사전, 전문사전, 오랜동안 애독되어온 전문 학술서등이 가장 신뢰대상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정설(定說)에 바탕하지 않거나 위배되는 새로운 이론은, 세계사나, 그나라 국사 및 정부입장과 대조하면서, 정설(定說)로는 채택하기 어려운, 새로운 논문.主義등으로 간주하는게 적절한 것 같습니다(학자가 아니면서 문필가.사상가 영역에서 활동하는 필자를 포함하여 누구의 이론이나 주장.主義든간에...).


대학관련, 대중언론이나 시중의 광고용 홍보는 定說이나 학술이론으로 채택해 줄 수 없는 특정집단의 홍보자료로 간주하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현대에 들어 대중언론과 광고의 범람으로, 오랜 권위를 인정받아온 교과서나, 정부 간행물, 역사서, 경전(유교나 가톨릭등)등의 권위가 훼손될수도 있겠는데, 대중언론과 대중문화는 한계가 있는 매체임은 분명하니까, 상업적으로 돈을 버는데 유리한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의 대학.학술.문화.종교등의 기득권은 보호되어야 하겠습니다.   


한국은 公敎育에서 오랫동안 다음과 같이 교육을 시켜왔습니다.

- 다 음 -


1. 한국사 성균관(해방후에 성균관대로 계승되어 6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음),


2. 윤리나 한문(또는 국어의 고전)수업에서 가르치는 유교교육.


삼강오륜(공자님과 맹자님의 가르침)등의 유교교육이 흔하고, 특히 한(漢)나라이후 세계종교가 된 유교(중국, 한국, 베트남,몽고지역에 걸쳐 일찍부터 세계종교가 된 유교)는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나, 설날.단오.추석(한국의 경우 설날.단오.추석등의 명칭이 한국적으로 잘 통용됨)등의 명절을 통하여 수천년동안 동양의 종교.교육.윤리에 체화되어 학교교육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학교 유교교육에서는 하느님(하늘天)을 중시하여 가장 절대적인 원리인 동시에 도덕적인 원리까지 포함하는 존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유교의 인간관은 인간에 대해 만물의 영장이며, 하늘의 기품과 땅의 형상을 가장 완벽하게 부여받은 중간적 존재며, 우주 만물의 이치를 선천적으로 구비하였다는 종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으로 인격완성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세계사 교육:세계사는 서유럽과 교황청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판단됨. 그리고 학술적으로 중국의 황하문명이나 한나라 태학. 유교등도 기득권을 중요하게 인정해온 경향

   1). 황하문명, 유교, 중국 한나라 태학(그 이후의 국자감. 국자감은 청나라때 경사대학당이 되고 이후 북경대로 계승됨)

   2). 에게문명, 로마 가톨릭, 중세유럽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 파리대학등 

    

. 구한말 國外에서 외국세력의 힘과, 한국내에서 유교와의 마찰에 놀란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펴고, 서양의 발전된 과학기술 수용까지 거부하면서 유교를 지킨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가 되었으므로, 근대 중국의 침체기 및 한국의 수난기에, 세계사의 주도세력으로 여러 학자들 이름이 거론되는 서유럽과 교황청의 전통과 자격을 감안하여, 유교나 한국에 필요한 가톨릭 예수회(서강대)임을 강하게 느껴,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국가주권이 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하면 한국의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은 국사에서 가르치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해방후의 성균관대며 서강대는 세계사를 반영하여 국제관습법상 교황 윤허 Royal대 예우입니다. Royal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로 예우.      



2]. 대통령령으로 발행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가 규정하는 성균관대와 서강대.


1. 대통령령과 관련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1979년 9월 25일 대통령령 제9628호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였고, 동 규정에 근거하여 1980년 3월 18일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편찬사업 담당부서를 두었으며, 1980년 4월 10일 제1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12년의 기간 동안 3백여 명의 편집진과 3,800여 명의 집필자가 참여하였다. 27권에 총면수 2만 4748면이고 항목은 6만 5천여 개이고 도판은 4만여 종을 수록하였다.

1988년부터 시안본을 검토 수정하여 1991년에 전권이 출간되었고, 1995년에는 보유편이 28권으로 나왔으며, 일부 개정증보를 거쳐 2001년에CD-ROM 개정증보판이 발간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韓國民族文化大百科事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서술된 성균관대학교와 서강대.


성균관대학교

[ SUNGKYUNKWAN University , ]



이칭별칭성균관대, 성대
유형단체
시대현대
성격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설립일시1398년
설립자김창숙()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개설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에서 시작된다.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연원 및 변천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성균관에 설치된 3년제 경학과()가 성균관대학교의 근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시작이다. 성균관은 제향 기능을, 경학과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여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역사학·지리학·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그 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 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권상실 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으로 개편되어,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주로 문묘()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30년 경학원에 로 교명을 회복하였다.

1946년 유림대회()가 개최되어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기성회가 조직되고 독지가 이석구()가 재단법인 학린사()의 토지를 희사하였다. 이에 김창숙()의 주도로 종전의 명륜전문학교의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김창숙이 취임하였다.

.출처: 성균관대학교 [SUNGKYUNKWAN University, 成均館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서강대학교

[ Sogang University , 西 ]



이칭별칭 서강대
유형 단체
시대 현대
성격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설립일시1960년 4월
설립자게페르트(Theodor Geppert)

정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신수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연원 및 변천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하였다.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었고, 예수회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신부의 주도로 1956년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발족되면서 대학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학장에 킬로렌(K. E. Killoren) 신부가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경제학과를 두었다. 1963년 독어독문학과·생물학과·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964년 국어국문학과·화학과를 설치하고 제1회 졸업생 62명을 배출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사립학교법」에 따라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으로 개편되었다...

. 출처: 서강대학교[Sogang University, 西江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조선.대한제국은 어디까지나 유교국가였고, 신흥종교들인 동학혁명의 천도교, 일본강점기에 피어난 야사위주 단군신앙의 대종교는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및, 한국유교를 토대로 약간의 변형을 가한 신흥종교들인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일본이 강제로 포교한 불교적 일본신도, 일본 불교(산속에 혼자 사는 한국 조계종의 대처승려와 달리, 일본 불교계 승려는 결혼하는 대처승제도가 나타남), 일본이 포교한 일본 기독교는 일본의 항복과 함께 한국영토에서 그 주권이 없어진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는  중국의 침체기 및 중국의 왕조정치 단절시기이기도 하며 중국의 민주공화국 체제가 발현되는 과정을 겪던 시기입니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로 존재감이 없던 때입니다. 각종 교과서에는 서유럽 학자들의 이름과 학설이 주로 나타나며, 교황제도, 서유럽 국가들의 지배력은 오랜 역사와 문명을 가지는 중국의 황하문명, 유교, 태학.국자감, 중국의 세계 4대 발명품(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과 함께 교과서에 그 역사적 과정을 드러냅니다. 2차대전이후 중국내전에서 중국의 장개석 정부가 모택동의 공산당에 패퇴하여 대만으로 이동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유교와 왕조정치시대에 사셔야 했던 공자님의 위상이 프롤레타리아 위주의 공산당노선에 박해를 당하는 불행함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수천년 인류역사를 담은 세계사의 역사와 전통 및 중국의 문명과 역사, 서유럽(에게문명, 로마제국과 서 유럽의 교황제도.기독교, 볼로냐.파리대학같은 대학교육, 서유럽 국가들의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의 문명과 역사.전통은 지금까지 아시아와 유럽의 구대륙 역사를 가진 여러 국가들의 수천년 기득권을 이해시키고 유지시켜주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이 다시 공자학당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등 전통 유교명절을 공휴일로 삼고, 유교와 공자님에 대한 평가도 역사와 전통을 함께 수용하는 최근의 행태는 긍정적 신호입니다. 필자는 수천년 인류 역사를 담은 세계사나 한국사의 학술적 내용과, 오랜 세계종교 과정을 가져온 유교, 기독교(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 가톨릭등) 및, 중국의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되어옴),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  역사는 인류가 교과서에서 삭제하지 않는 한 그 역사와 전통.기득권들이 쉽게 변하지 않는 학교교육을 경험해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사에 나타나는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나,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교황 윤허를 받고 설립된 서강대같은 Royal대 학벌도 변할 사유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한국의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은 성균관대입니다. Royal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로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 영토에 주권.학벌이 없습니다.      



[4] 환구대제, 사직대제, 종묘대제. 


1]. 환구대제


왕이 하늘을 받드는 둥근 제단(환구단, 圜丘壇)에서 하늘을 다스리는 신인 황천상제(皇天上帝), 해ㆍ달ㆍ북두칠성ㆍ별자리 28수ㆍ천둥ㆍ바람ㆍ구름ㆍ오행 등 16신위에 제를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이 의식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유산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선대 왕에 대한 제향을 올리는 종묘대제(宗廟大祭), 땅과 곡식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중요무형문화재 사직대제(社稷大祭)와 함께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국가 의례다.

환구대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자(天子)만 할 수 있고 중국만이 천자(天子)의 나라라는 명(明)나라의 압력으로 세조 이후에 폐지되기 전까지는 조선의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가적 제천의례였다. 이후 1897년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부활시켰지만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제가 환구대제를 폐지하고 환구단의 제단을 허물어버린 뒤 호텔을 세우면서 터를 잃게 되었다.

한편, 광복 이후 종묘대제와 사직대제는 복원됐으나 환구대제만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8년 11월 27일 그 과정이 기록된 <고종대례의궤>를 고증해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 위치한 환구단 터(사적 157호)에서 100여 년 만에 환구대제가 복원됐다.


. 출처: 환구대제(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2]. 사직대제


2000년 10월 19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천()·지()·인()에 대한 국가의 제례로 원구제()·사직제·종묘제()가 있었다. 그중 사직제는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과 농작의 풍년을 좌우하는 곡식의 신인 직신()에게 드리는 제례로, 궁중제사() 중 대사()에 속하여 사직대제라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온 사직대제는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조상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56)와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했던 중요한 의식이었다. 또 사직은 국가의 주권을 상징하는 정신적인 지주이기 때문에 한 나라를 세우면 정부 주도로 사직단()을 건립하고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사직대제의 절차·제물·복장·음악·무용[] 등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조선 전기에는 1474년(성종 5)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 따라 거행하였고, 후기에는 1783년(정조 7)에 작성된 《사직서의궤()》에 따라 유교적 의례로 거행하였다. 한편 대한제국 때에는 1897년 사례소()에서 편찬한 《대한예전()》에 따라 황제의()로 거행되었다.  

이러한 사직대제는 매년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 그믐날 밤에 거행되어 왔었는데, 1908년(순종 2) 일제의 강압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복원한 이래 해마다 개천절에 서울 사직동 사직공원에 있는 서울 사직단(사적 121)에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주관으로 봉행해오고 있다.

현재는 대체로 대한제국 때의 의례를 따르고 있는데, 제물로는 소·돼지·양의 생고기와 포(), 각종 곡식을 진설한다. 길례()의 일종이므로 주()·악()·무()와 폐()를 드리고 초헌()·아헌()·종헌()의 삼헌례()로 진행된다. 제례복으로 초헌관은 구장면복(), 제관은 금관조복()을 갖추어 엄숙하게 의식을 이끌면서, 국가의 주권을 상징적으로 표출한다.

사직대제 기능보유단체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며, 기능보유자로 이건웅()이 있다.


. 출처: 사직대제[社稷大祭] (두산백과)


3]. 종묘대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종묘제례는, 역대 임금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서 나라의 으뜸가는 행사였다. 조선시대에는 춘하추동의 첫달과 그해 12월 섣달에 대제를 올렸는데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가 1971년부터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 의해 복원, 1975년 5월 3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있다. 2001년 5월 18일 종묘제례악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종묘대제에는 종묘제례가 봉행되며, 각 제사 의례에 맞추어 경건한 분위기를 더욱 고양시키기 위한 음악과 무용으로서 종묘제례악이 따른다.

제례는 다른 제사와 마찬가지로 유교식 절차에 따라 지낸다.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로 시작하여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천조례(), 잔을 올리는 초헌례·아헌례·종헌례에 이어 음복례가 행해지고,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례()를 갖춘 후에 축()과 폐()를 망료() 위에 불사르는 것으로 끝난다.

종묘제례악은 우리 고유의 음율로 왕조의 창업과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모든 행사의 순서에 맞추어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엄숙한 제사 의례 만큼이나 장엄미가 돋보이는 음악으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크며 동양에서도 드물게 남아 있는 고전음악이다. 국립국악원이 전수하였으며 중요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출처: 종묘대제[宗廟大祭] (두산백과)


[5]. 황사손(이 원). 서울신문 2019.01.20, 이 기철 선임기자 보도기사에서 인용.


1]. 신문 보도기사에 나타나는 황사손. 백과사전등에는 황사손이란 칭호나 그 이름이 아직 나오지 않고, 환구대제, 사직대제, 종묘대제는 민간 백과사전 종류에 나옴.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57·본명 이상협) 대한황실문화원 총재는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종 사망 100주년 소회를 묻자 “만감이 든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인 이구 황태손(皇太孫·황제의 적장손)이 타계한 이후 양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맡았다. 또 조선시대 왕이 직접 참여한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조경단대제, 조선왕릉 제향의 ‘초헌관’으로도 참여한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오전 6시 30분쯤 사망했다.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채 안 돼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사망해 일부 역사학자와 법의학자를 중심으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됐다. 이런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고종의 후손인 이 총재는 이 독살설을 정설로 보고 있다. 그는 “고종 황제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 식혜, 커피를 마신 지 30여분 만에 시해됐다”며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이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다”고 견해를 밝혔다. 고종이 억울하게 죽으면서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의 공분을 일으켰고, 고종 장례일을 계기로 3·1 만세운동이 터졌다는 것이다...


출처: 서울신문 보도기사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121027021&wlog_tag3=naver


. 필자의견:  3.1운동이나 고종의 독살설등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2]. 현재 황사손(이 원)은  조선시대 왕이 직접 참여한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등의 초헌관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기사는 밝힙니다. 한편 교육기능의 성균관대와 분리된 성균관의 석전[釋奠:필자가 설명하면 선성(先聖)이시자 문선왕(文宣王)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 석전은 문묘제사라고도 함]에 관련된 사항인데, 고려시대 국자감 문묘와 조선시대 성균관 문묘의례에는 국왕이 참례하기도 했다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전자대전은 밝힙니다. 


[6]. 석전관련 고려.조선시대 문묘의례에 대한 설명.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나타나는 고려.조선시대 문묘의례에 국왕이 참여했다는  내용


...석전의 연원은 중국 고대에서 볼 수 있다. 우리의 통일 신라 시대에서는 유교 사상을 국학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공자와 그 제자들의 화상을 모셔 와 추모하기 시작했다. 그 전통이 고려 시대의 국자감 문묘와 조선 시대의 성균관 문묘 의례로 이어져 국왕이 참례하기도 했다. 조선조 말기까지는 공자를 비롯한 133위를 모셨으나 1949년 전국 유림 대회의 결의로 중국의 유현 94위는 매안하고, 동무·서무에 모신 우리나라의 18현은 모두 중앙의 대성전으로 옮겨 봉안하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7]. 한국 콘텐츠 진흥원의 문화컨텐츠 닷컴이 밝히는 제관의 종류.  '국조오례의' 에 의하면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경우는, 사직(社稷).종묘(宗廟).영녕전(永寧殿).문소전(文昭殿).선농단(先農壇).문묘(文廟) 등으로 국한되어 있다고 합니다.


1].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00년에 문화관광부 산하에 설립된 ‘문화산업지원센터’가 확대 발전한 것으로 음악,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주요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종합 지원체제 구축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2001년 8월에 재단법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 확대되었고, 2002년 10월 17일에는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에 의한 특수법인으로 발전하였다. 2009년에 기존에 설립된 한국게임산업진흥원,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등과 함께 한국콘텐츠진흥원 안으로 통합, 재편되었다.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韓國─振興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 콘텐츠진흥원의 문화콘텐츠 닷컴이 밝히는 제관의 종류.


. 제관종류


제관은 제사 과정에서의 역할에 따라 헌관, 조제관 및 기타의 제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제관


원칙적으로는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제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사 과정에서의 역할에 따라 헌관, 조제관 및 기타 제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헌관은 초헌 . 아헌 . 종헌관과 배향공신헌관 . 칠사헌관 등 신주에게 술잔과 폐백을 드리는 사람을 말하고, 조제관은 헌관들이 제사를 진행할 때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한 관원을 말한다.

기타 제관은 제사 과정에서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고 제사에 참여하는 문무관, 종친, 헌관 특히 국왕이나 세자를 호위하는 역할을 하는 무관과 근시 등을 통칭한 것이다.


. 헌관


헌관은 제사 과정에서 술잔을 올리는 제관들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술잔을 올리는 순서에 따라 초헌관(初獻官).아헌관(亞獻官).종헌관(終獻官)으로 나뉘어지며 초헌관은 그 제사에서 대표격인 사람이 맡도록 되어 있다.

국가 제사에서 친제(親祭)할 경우에는 국왕이 초헌관이 된다. '국조오례의' 에 의하면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경우는, 사직(社稷).종묘(宗廟).영녕전(永寧殿).문소전(文昭殿).선농단(先農壇).문묘(文廟) 등으로 국한되어 있다.

만약 국왕이 주제자로 초헌관이 될 때는 아헌관과 종헌관은 정1품 이상이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부득이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왕세자나 대신을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 초헌관


초헌관(初獻官)은 신위 앞에 제주를 드리는 세 사람의 헌관 가운데 첫 번째의 헌관으로 종묘, 사직 등의 친제(親祭)에는 국왕이 하도록 되어 있고, 섭사(攝祀)에는 정1품인 영의정이 담당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국왕은 대신이 섭행을 거행할 경우라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다. 즉 대향의 경우에는 제사 하루 전에 초헌관에게 향(香)과 축(祝)을 전달하는 의식을 시행함으로써 제사에 대한 경건함을 보이고, 간접적으로 제사에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국왕은 제사가 시작되기 전에 원유관과 강사포를 갖추고 궁궐에서 출발하는데, 종묘 근처에 설치된 재궁에 들어가 의식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린다. 의식이 시작되면 면복을 갖추고 종묘로 들어온다. 예의사의 인도를 받고 근시의 시중을 받아 어세위에서 손을 씻고 초헌관으로서 각 실에 이르러 왕과 왕후 신위에 술잔을 올리고 이후에는 자리로 가서 기다린다. 모든 의식이 끝나면 재궁으로 들어가 기다렸다가 환궁한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8&cp_code=cp0237&index_id=cp02370045&content_id=cp023700450001&print=Y



* 첨부자료.


해방후 미군정 당시의 성균관대와, 한국 영토에 주권이 없던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의 관계는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어, 다음 자료를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학술적.연구적인 측면에서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1. 미군정령 제 194호 6조(1948년)는,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381


2. 영상역사관, 1954 대한뉴스 제46호,이승만대통령 내외분,문교부장관등 참석, 공자님탄생 기념식


http://blog.daum.net/macmaca/2367


3. 을사조약이후, 일본 불법 강점기에 대항해 온, 을사조약 무효 이론(국내법과 국제법)을 현행헌법과, 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조선.대한제국의 성균관이 해방후의 사립 성균관대로 승계되어 600년 역사를 가짐)의 의견까지 연결해서 살펴봄.   

http://blog.daum.net/macmaca/2026


4. 미군정당시 등록된 성균관대(교육기구)는 국사교육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과 같은 개념임. 성균관대(교육기구)는 국사교육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대학. 미군정당시 제사기구는 성균관으로 분리되어 현재까지 이름.

http://blog.daum.net/macmaca/2136  


5.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6. 국사 편찬위의 해방이후 성균관에 대한 견해. 그리고 성균관대.  

http://blog.daum.net/macmaca/2321



7.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8.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9.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