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투어/경북

청솔객 2010. 6. 14. 04:00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춘향전"은 한국 최초의, 최고의 로맨스이자 4대 국문소설의 하나로 꼽힌다.

 그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 이몽룡은 소설속에 만들어진 가공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춘향전 계통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세대학교 설성경 교수(문과대학 인문학부)는  

 지난 '99년 11월 일본 및 국내에서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라는 주제의 연구 논문을 통해 공식 발표했는데

그 논문을 통해서 '이도령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成以性: 1595∼1664), 조선조 광해군 ·인조때의 실존 인물이다.

그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았다.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죽고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하 출처 : 봉화군, 문화재청>

 

 

 

 

실제인물 성이성의 행적과 <춘향전>주인공 이도령과의 밀접한 관계는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 그대로 유입된

<필원산어>의 한 대목에 의해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된다고 한다.

 

성이성의 4대 후손 성섭이 지은 "교와문고 3권" 에 변사또 잔치연에서 지은 금준미주시(암행어사 출두시)

금준미주(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락시(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는 시가 발견 되었다고 한다. 

 

 

계서당 대문간채

 

 

성이성(成以性 1595 ∼1664)은 이곳 가평리(현재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출신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 16대손).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승지 안의(安義)의 아들로 1616년(광해 8) 진사가 되었다.

성이성은 청백리로 강직, 개결(介潔), 소신에 의연(毅然)하였으며 상사앞에서도 과감하였다고 한다.

성이성은 문과에 급제한 후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3차례나 어사로 등용되었을 정도로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았다.
사후에 청백리로 선정되고 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계서유고>가 있다.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번지에 위치하는 계서당(溪西堂)은 성이성 선생이 1610년(또다른 문헌에는 1613년)에 건립하여

문중 자제들의 훈학(訓學)과 후학 배양에 힘쓴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한다.

 

 

계서당(溪西堂) 현판

 

 

 정면 7칸 측면 6칸의 입구자( 口)형으로 되어있다. 팔작 지붕의 사랑채(정면3칸, 측면 3칸)와 중간 문으로 연이어져 있다.

지금은 그의 대 후손 성원기(61세)씨가 관리하고 있는데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171호로 지정(1984. 1. 10) 관리되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ㅁ'자형 집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비교적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맞은편 높은 곳 서쪽에 중문간채가 있다. 동쪽에는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고, 사랑채 서쪽의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채가 있다.

 

 

 

 

 

 

 

 

 

 

 

 

 

 

 

 

이곳의 안채와 사랑채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채는 도장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사랑방은 대부분 홑집으로 구성하는데, 이 집은 겹집으로 만들어

안채의 날개집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계서당 사랑채에서 재미 있는 부분은 툇마루 끝부분에 돌출된 간이화장실이다.

그리 썩 좋아 보이는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독특하다.

 

 

 

 

계서당 사당

 

 

동북쪽에 따로 담장을 둘러 사당을 배치하였다.

 

 

 

 

 

 

 

즐감하고 갑니다 한옥이 멋있내요 방촌 드림
새로운 한주 멋지게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잘게시지요
모처럼 한옥을보니 옛날시골에서 살던기억이 납니다
기와집을지을때면 온동네사람들이 모두모여 같이일을 해주곤했는데
잘감상하고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제 고향에는 기와집은 별로 없고 초가만 있었어요.
지금도 기와집을 보면 동경이 갑니다.^^*
ㅎㅎ 봉화네요.
저희 할머니께서는 매일 성도령전 이라는 언문을 읽으셨어요.
할머니께서는 항상 이도령이 아니라 성도령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조모께서 일찌기 다 깨우치고 계셨군요.^^*.^^*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