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국 후백제의 영토

소오강호 2011. 7. 28. 10:26

 

 

 

 

 

산둥성료성시는 백제의 첫수도 위례성이 있던 곳이다. 후삼국시대 전주라고 불렸던 곳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조선전기의 전주가 지금 제남시일대인데 후백제의 견휜이 말하길 전주는 백제가 처음 도읍한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고려가 원나라에 의해 영토를 많이 상실하면서 지명이 이동했는데 이때 전주의 위치가 동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http://blog.daum.net/sabul358/18107294 지도제공 향고도님

청나라시대 고지도에도 료성시의 동북쪽에 왕성이 있다고 했다. 저기에 왕성을 세운 짱개왕조는 없다. 이곳은 고대의 하남지역즉 황하남쪽지역으로 비옥한 곳이다. 중국사이트를 확인해보니 료성시에는 예전부터 봉황성이 있다고 쓰여있다.

 

 

지금까지 내가 찾은 봉황성이다. 봉황은 왕을 뜻하기 때문에 봉황성은 곧 왕성이다. 고구려의 마지막 평양성이던 베이징시 동남쪽향하현 고성은 지금 천하제일성이라고 적혀있다. 또한 위만의 수도였던 산서성 장치시 남쪽 고평고성은 황성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기자의 수도였던 한단시 영년현 광부고성일대에는 황산즉 황제의 산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시대가 흘러도 대략적인 지명은 남아 있는 것이다.

 고구려 광개토호태왕혹은 장수태왕때 백제영토를 대거 침략하면서 위례성일대까지 진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료성고성은 위례성 바로 앞에 있는 성으로 고구려가 점령한후 고구려성을 쌓은 것이다.

 고구려성의 치는 안쪽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전형적인 고구려성임을 알수 있다. 고려때 증축했을 것이다.

 일부 성문은 고구려혹은 고려양식이 아니다.명혹은 청때 증축했을 가능성이 있다.

 벽돌의 색깔로 보아 2-3번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에 그린 평면도에도 치와 옹성의 유적이보인다.

 

치성의 유적 

 

료성고성복원도 옹성과 치성이 저명한 고구려성임을 알수 있다.

 

 

 

고구려성 특징인 옹성의 흔적

 

옹성과 치성의 특징이 아직도 저명하게 남아있다. 백제 동성황제는 고구려 장수태왕을 밀어붙여서 백제의 땅을 거의 수복했다. 그래서 백제가 북위와 국경이 맞닿게 된 것이고  북위와 백제가 서로 싸우게 된것이다. 양국이 수십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들판에서 대규모로 회전하여 백제가 크게 이기고 들판을 전부 북위군의 시체와 피로 적셨다고 한다.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신라를 핍박했던 백제에 대해 좋게 쓰기 싫었던 모양이다. 남조의 기록에는 상세하게 설명된 기록이 삼국사기에는 고작 간단하게 북위가 쳐들어왔는데 우리가 이겼다라고 썼다. 그리고는 신라가 당나라를 이길때는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했다.

역사서술은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 패배와 치욕의 역사도 사실적으로 써야 후손들이 경계하고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