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국 후백제의 영토

소오강호 2011. 8. 9. 12:30

 

高麗,本扶餘之別種。其國都平壤城,即漢樂浪郡之故地,在京師東四千餘裏。東渡海至於新羅,西北渡遼水至於營州,南渡海至於百濟,北至靺鞨,東西三千一百里,南北二千里

구오대사

고려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닿고 서북으로 요수를 건너 영주에 닿고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에 닿는다. 동서3100리 남북2천리이다.

 

 

 

매국노와 국사학계의 덜떨어진 등신들이 합작해서 만든 후삼국지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라 .........

 

 

 

營州上都督府 隋柳城郡。武德元年,改為營州總管府,領遼、燕二州,領柳城一縣。七年,改為都督府,管營、遼二州,

구당서

영주상도독부는 수나라 유성군인데 무덕원년 618년에 영주총관부를 두고 요주와 연주 2개주를 다스렸다.

 

 

대청광여도 청나라때 고지도

 

《水经注》:“管涔亦燕京之异名也”。《淮南子•地形训》:“汾水出燕京。”燕京山东承阴山余脉,南接吕梁云中,古称晋山之祖。最高峰荷叶坪山在西马坊乡南

수경주에 관잠은 연경의 명승지이다. 회남자에는 분수연경에서 나오는데 연경산은 동쪽으로 음산을 떠받치고  남쪽으로 여량 운중에 접하고  옛말에 진산의 시조라고 한다.

 

燕京山是山西全省山脉的枢纽。史书多称管涔山,惟《太平寰宇记》称作菅涔山

연경산은 현재 산서성 관잠산이라고 한다. 태평환우기에 관잠산라고 했다.

 

중국백과사전에 위와 같이 되어 있다.위의 청나라때 고지도인 대청광여도에 산서성 태원시에 그려진 연경산이 관잠산이며 옛날 연나라 수도의 명승지이다라고 즉 이곳이 바로 연주이다.

요주역시 그 위치가 고대와 지금이 큰 차이가 없다. 즉 당나라 영주관할 요주와 연주를 모두 찾은 것이다. 구당서와 구오대사는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기 때문에 영주의 위치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구오대사가 쓰여진던 시기에는 고구려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고구려국이 820년에 발해 대인수황제에게 병합되었기에 구오대사가 쓰여지던 송나라때는 후고려 후백제 신라 발해 가 존재하고 있었다. 즉 구오대사의 고려는 바로 후고려즉 왕건의 고려이다.

결국 왕건의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기전 동서로3100리 남북 2천리(수서에는 고구려가 동서6천리 남북 4천리라고 써있다)의 비교적 중규모이상의 나라였으며 서쪽끝에 산서성 요주가 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고려 남쪽으로 바다를 건넌 백제땅은 어디인가?

 

北海、北瀆大濟,於洛州

구당서

북해는 북독대제이며 락주에 있다.

 

 

 

洛州領河南、洛陽、偃師、鞏、陽城、緱氏、嵩陽、陸渾、伊闕等九縣

구당서

락주는 하남현 낙양현 등 9현을 다스린다.

 

낙양이 있는 락주일대를 고대에는 바다라고 불렀던 것으로 결국 황하가 바다라는 것이다.

 

海在東;西瀆河西

후한서

바다는 동쪽에 있는데 서독하의 서쪽이다.

 

게다가 동해의 경우 서독하의 서쪽이다.

http://blog.daum.net/sabul358/13937663 청나라고지도

청나라고지도에 대명현에 독하가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서독하는 이곳의 서쪽줄기이고 당연히 한족들이 생각한 동해는 대명현서쪽일대이다.

 

 

즉 고대 황하를 바다라고 생각한 옛 사람들이 고려남쪽에 황하줄기를 건너면 백제가 있다라고 기록한 것이 바로 구오대사의 고려와 후백제의 지리설명이다. 이 황하는 천진일대에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고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른다라고 한 것은 천진시의 옛 황하지류를 건너면 신라땅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금나라와 송나라기록에는 백제와 백제하 라는 지명역시 고대 황하근처에 존재했고 위의 지도상에 고려와 후백제 경계에 존재했다.

http://blog.daum.net/manjumongol/1108백제하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지금 나일강으로부터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기록에는 분명히 강을 통해 돌을 운반해서 피라미드를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사해보니 나일강이 범람할때 수면이 10m나 상승하여 실제로 피라미드바로앞까지 물이 찻다는 것이다.황하도 나일강에 견줄만큼 해수면 상승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황하하류는 굉장히 폭이 넓다. 고대에는 그 몇배 몇십배였을 것이고 이를 보고 고대인들은 바다같다고 하여 바다 海자를 붙인 것이다. 그들의 기록이 증명해주고 있다. 반면 한반도의 강은 어떠한가? 황하나 나일강에 견줄만큼 하류가 거대한가? 중류이상의 줄기가 폭이 거대한가? 네버 노노노노 이다.

 

백제가 대륙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게으름탱이들이여 찾아보기는 했는가? 수백개를 찾았는데 어찌 그대들은 못찾는가? 이도학교수는 구당서에 월주에 백제땅이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직접 절강성 월주 지금 소홍현에 가서 고대로부터 아직도 김치를 담그는 이들을 발견했는데 니들은 무얼하고 있는고? 책상에 가만히 앉아 매국노의 국사책을 펼쳐들고 고려와 백제 신라는 지금 남한땅만하다고 낄낄거리고 있지는 않는가?남한땅이 동서가 3100리인가?

차라리 역사스페셜 작가들한테나 국사책을 쓰라고해라!!! 이 매국노 국개학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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