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미스테리

소오강호 2011. 8. 16. 17:35

퇴계 이황이 올린 ‘한낮의 태백성은 병란의 징조’라는 제목의 상소가 있다. 1545년 명종 원년 중훈대부 이황은 일본 국왕의 사신 외에 왜인을 거절하기로 한 중종의 결정에 대해 재고할 것을 청하는 소를 올린다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는 것은 병사(兵事)의 상징이니 변방을 방비하는 모든 일은 별도로 조치해야 할 것입니다. 근래 여러 차례 사유(赦宥)가 있었으므로 형옥(刑獄)에는 아마도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인데 재변이 이와 같으니 무슨 잘못 때문인지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상하가 공구 수성(恐懼修省)하는 것일 뿐입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명종 즉위년 을사(1545,가정 24) > 8월11일 (신축) 영의정 윤인경, 좌의정 유관이 명종에게 대답한글

 

고대에 별을 보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나는 그저 아무 근거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낮에 태백성이 나타나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인조 4년 병인(1626,천계6) > 12월 22일(경신)

 

 

밤에 남방과 간방에 불빛 같은 기운이 있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인조 4년 병인(1626,천계6) > 12월 24일(임술)

 

 

흰 무지개가 해를 가로지르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인조 5년 정묘(1627,천계7) > 1월 16일(갑신) >

 

정묘호란 직전 태백성이 낮에 보이고 이상한 일이 하늘에 일어났다.

 

접반사 원탁(元鐸)이 치계하기를,
“이달 13일에 금(金)나라 군사가 의주(義州)를 포위하고 접전하였는데 승패는 모릅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인조 5년 정묘(1627,천계7) > 1월 17일(을유) >

 

후금의 홍타이치는 겨우 3만명의 기병으로 인조에게서 사실상의 항복을 받아냈다. 홍타이치의 전략은 상당수가 그의 동생 도르곤이 세운 것이다. 몇년뒤 역시 겨우 3만의 기병으로 명나라수도까지 포위하여 명나라왕 숭정을 공포에 질리게 한다.

 

 

 

 

유성이 헌원성(軒轅星) 위에서 나와 천봉성(天棓星) 아래로 들어갔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인조 14년 병자(1636,숭정9) > 12월 7일(정축)

 

도원수 김자점이 적병이 안주에 이르렀다고 치계하자 이에 대해 논의하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인조 14년 병자(1636,숭정9) > 12월 13일(계미) >

위의 내용은 병자호란때의 상황이다.

고대에 태백성이 낮에 보이고 유성이 갑자기 떨어지면 큰 일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신기하다.

 

 

한국전쟁 나기 3개월전 병화성이 붉어진것을 알아내시고 미리 아버지에게 조언해주신 어른이 계셨는데 당시에 아버지가 젊으셔서 반신반의하다가 공무원이시던 아버지가 빨갱이들에게 쫒기어 죽을 고비를 넘기셨죠. 병화성이 붉어지면 전쟁납니다.
하늘에 징조가 보인다는 옛말이 진짜 기록에 있으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별점을 무시하면 안될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