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영토

소오강호 2009. 4. 23. 12:26

 불열(拂涅)ㆍ우루(虞婁)ㆍ월희(越喜)ㆍ철리(鐵利) 등의 부가 있어서 당나라 초기에는 사신을 보내어 중국과 통하였으나, 그 뒤에 발해가 강성해지자 모두 신하로 복종하니, 발해에서는 이들 지역에 군(郡)을 두었다.

신당서

 

 

여진은 대개 옛 숙신씨(肅愼氏)로 대대로 혼동강(混同江)의 동쪽 장백산(長白山)의 압록강 발원지 부근에 살아왔는데, 남쪽으로는 고려와 인접하였고, 북쪽으로는 실위(室韋)와 접하였고, 서쪽으로는 발해(渤海)ㆍ철전(鐵甸)과 경계를 나누었고, 동쪽으로는 바닷가에 닿았다. 여진의 추장은 본디 신라 사람으로 완안씨(完顔氏)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말의 왕(王)과 같은 말이다

문헌통고

 

흑수말갈에서 동남쪽으로 10일 정도 가면 막예개부(莫曳皆部)가 있고, 또 불녈부, 우루부(虞婁部), 월희부(越喜部), 철리부(鐵利部) 등의 부가 있다. 그 땅은 남쪽으로는 발해(渤海)에 닿아 있고, 북쪽과 동쪽은 바다이고, 서쪽으로는 실위(室韋)에 이르는데, 남북은 2000리이고, 동서는 1000리이다. 불녈부, 철리부, 우루부, 월희부는 때때로 중국과 교통하였다

신당서

 

신당서》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발해열전에 이르기를, “발해는 읍루의 동모산(東牟山) 지역을 차지하였는바, 영주에서 동쪽으로 2000리 되는 곳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신라와 접하여 이하(泥河)로써 경계를 삼았고, 동쪽은 바다에 닿았으며, 서쪽은 거란과 접하였다. 땅은 사방 5000리이고, 호구는 10여 만 호이며, 부여(扶餘), 옥저(沃沮), 변한(弁韓), 조선(朝鮮) 등 바다 북쪽에 있는 여러 나라를 모두 차지하였다 

 

 요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동경도(東京道) 요양현(遼陽縣)은 본디 한(漢)나라의 패수현(浿水縣)이었다. ○ 패수는 또한 이하(泥河)라고도 하며, 또 헌우락(蓒芋濼)이라고도 하는데, 물에는 헌우초가 많이 자란다

 

《신당서》 발해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불녈(拂涅)의 옛 지역을 동평부로 삼았는데, 이주(伊州), 몽주(蒙州), 타주(沱州), 흑주(黑州), 비주(比州)를 관할하였다. 철리(鐵利)의 옛 지역을 철리부로 삼았는데, 광주(廣州), 분주(汾州), 포주(蒲州), 해주(海州), 의주(義州), 귀주(歸州)를 관할하였다.

 

거란지리도상에 해주와 포주가 난하동쪽에 표기되어 있다. 그러니 이곳이 철리이다.  

 

 요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신책(神冊) 1년(916)에 발해를 평정하고서 광주(廣州)를 얻었다. 광주는 본디 발해의 철리부였는데, 고쳐서 철리주(鐵利州)라고 하였다. ○ 동경도 광주(廣州) 방어(防禦)는, 한나라 때에는 양평현에 속하였고, 고구려 때에는 당산현(當山縣)이었고, 발해 때에는 철리군(鐵利郡)이었다. 태조가 발해의 사람들을 옮겨서 살게 하고는 철리주를 세웠다. ○ 철리부(鐵利府)에는 자사(刺史)를 둔다. 옛 철리국(鐵利國) 지역이다. ○ 상경도(上京道) 영주(永州) 의풍현(義豐縣)은 본디 철리부 의주(義州)였는데, 요나라 군대가 이곳을 격파하고는 그 백성들을 남루(南樓)의 서북쪽으로 옮긴 다음 그대로 의주라고 하였다.

 

거란의 상경은 난하 상류에 있다. 이곳근처도 철리였다고 한다.요나라와 당나라의 기록을 보면 공통된것이 난하동쪽에 철리가 있다.